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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프리뮤직 색소폰 주자 강태환

낯섦을 건너 뛴 자유의 소리

1998년 MBC-TV가 국내의 거장급 예술인들의 현재를 밀착 취재해 방영했던 ‘우리 시대의 명인’팀은 강태환(58)에게 취재 허락을 얻어 내기 위해 방송 3달 전부터 매달려야 했다.

TV라는 매체가 하나의 화면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 지루한 반복을 거듭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그 공세를 어쨌든 피하려 애썼다. 그는 “다짜고짜로 애원하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여느 사람들에게 그의 연주는 낯섦 또는 경이로 다가온다. 색소폰 음색의 놀라운 변화 때문이다. 때로는 클라리넷 같은 유려한 소리를 내다가도 오보에 보다 더 메마른 소리를 낸다. 또한 그 긴 호흡도 놀랍다.

그의 색소폰은 소리가 끊기는 법이 없다. 콘서트에서는 보통 2~30분 이상 소리를 끌고 가기 일쑤다.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해 경이의 시선을 보내는 세상에 대해 그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네드 로덴베르크, 존 존 등과 함께 세계적인 프리 재즈 색소폰 주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언론과의 접촉은 되도록 피하려 한다”며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에다 결가부좌를 틀고는 시종일관 꼿꼿이 앉아 연주하는 모습 덕으로 그에게서는 선적인 경지가 느껴진다.

8월 30일 그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일상적으로는 만나기 힘든 새로운 경지의 연주로 서울 부암아트홀에 모인 마니아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일반 학생 외국인 등 50여명의 관객이 감상했던 ‘작은 공간 열린 소리 2002’라는 콘서트였다. 모처럼의 본격 프리 재즈 콘서트였다.


소리로 나누는 대화

국내 최초의 프리 재즈 그룹이었던 ‘강태환 트리오’가 5년만에 모여 갖는 공연이었다. 6순의 나이에도 경주용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괴인 드러머 김대환, 트럼펫의 달인 최선배 등 오랜 동료에 그가 가세한 그날의 공연은 전위성과 실험성의 기치를 내건 예술이 세월의 저항을 어떻게 견뎌냈나를 입증해 보였다.

일반인과 학생 틈틈이 그의 공연을 열심히 쫓아 다니는 외국 관객도 으레 몇 명 보였다. 그들의 음악에는 박자도, 조성도 없다. 스스로 이름 붙인대로 ‘프리 뮤직’이다. 음악이라기 보다는 ‘소리’에 가깝다.

음악적 속박을 벗어낸 음악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느낀다. 더 귀 기울이면 세 연주자는 길항하거나 서로 얽혀 들어 가면서 일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싸움이 됐다가도 대화가 되기도 한다.

1998년부터 참가해 오고 있는 전주의 산조 축제 역시 비슷한 자리다. 이 자리에서는 국악을 하는 전주의 향토 예술가들과 일본 등지의 프리 재즈 음악가들이 함께 모여 즉흥 음악을 만든다. 이 자리의 관객은 화가, 명상연구가, 언론인 등 30여명이다. 그처럼 그의 음악에는 수많은 관객의 환호는 없다. 탄생부터 그러했다.

1978년 실험예술의 상징적 무대인 공간 사랑에서 출발해 1986년 해체하기까지 그들 셋이 펼쳤던 76차례의 공연은 ‘한국적 프리 재즈의 탄생’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5년 한국의 재즈로는 처음으로 일본에 초청된 그들은 동경 등지를 공연하며 재즈 강국이라며 은근히 뻐기던 일본의 콧대를 한국적 프리 재즈로 눌렀다. 서양에서 생긴 재즈가 동양적이고 명상적 선율로 일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기를 얻었다 해서 똑 같은 것을 계속 우려먹을 수는 없었다. 바로 그것이 즉흥 음악가의 자존심이다. 그룹 해체를 제안한 사람이 강태환이었다. “더 이상 새로운 걸 할 수 없다면 그만 두어야 한다고 다들 내심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전위의 정신은 기존의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더 이상의 새로움이 없으면 소멸한다.

그들은 미련 없이 해체했다. 이후 김대환은 흑우(黑牛)라는 호를 달고 경주용 오토바이 운전과 서예에, 최선배는 트럼펫과 하모니커 연주에 주력해 오고 있다. 신천지를 연 동지 사이였지만 이들은 이번처럼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아는 젊은 팬들이 기획한 콘서트 자리를 제외하고는 별로 만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의 음악적 성과를 복제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묵계다.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은 그를 쭉 주목해 온 일본의 재즈였다. 사토 마사히코(피아노)와 다카다 미도리(타악) 등 세계적 재즈 교과서에 중요 인물로 서술되고 있는 일본의 전위 재즈 뮤지션들이 제의해 1990년에 프리 재즈 그룹이 탄생했다.

한국어 이름인 ‘동그라미’가 그 그룹이다. 지금껏 서양인의 발음편의를 위해 ‘톤그라미’라는 서양식 표기를 달고 독일 재즈 축제 실황인 ‘메르스 페스티벌’ 등 두 장의 즉흥 음반을 일본 크라운 레코드사에서 발표했다.

1, 2분의 테마에 20여분의 즉흥으로 프랑스의 재즈 전문지 ‘노트’로 부터는 “살아 있는 행복한 순간을 체험케 하는 따스한 연주”라는 찬사를 따냈다. 몰려든 관객 앞에서 벌거벗고 싸울 자신이 없으면 해 낼 수 없는 즉흥의 세계, 립 싱크나 카피 같은 포스트 모던적 창작 기법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음악이다.

그는 섣불리 흉내 내기조차 힘든 테크닉의 소유자이면서도 과시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순환 호흡(circulation breath)이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양 볼을 백파이프의 공기 주머니식처럼 부풀려 공기를 저장한다.

그렇게 모아진 공기를 조금씩 내뿜으며 불 수 있으므로 소리가 끊기는 법이 없다. 전통적 연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 혼자 개발해 낸 이 주법을 출발점으로 겹음 연주, 짧게 끊어 연주하기 등 고난도의 기교를 개발해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 특수 주법 중 아무 것 하나만 구사하더라도 특출 난 연주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내 음악은 즉흥적 개성음악”

그러나 그는 잘라 말한다.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론이다. 그의 하루는 잠 깨고 난 뒤 테크닉 수련, 잠 들기 전 작품 구상으로 나뉜다. 하루 전체가 곧 음악이다. 문제는 그 음악 현상을 담아 둘 틀이 없다는 것이다. “내 음악은 즉흥 음악이다. 아니, ‘개성 음악’이란 말이 더 가깝지 않을까?”

개성적이어야 살아 남는 즉흥의 세계는 곧 진실 게임의 세계다. 격렬한 기싸움이기도 하다 일순간 조화의 선율로 들어선다. 강태환은 “타인과의 즉흥 연주란은 공격성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즉흥 연주의 대전제를 말했다.

그는 “복제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이 시대 세계의 음악 무대는 클래식, 민속 음악, 록 할 것 없이 즉흥의 비중이 점점 더 커져 간다”며 “개성 없는 음악은 굳이 돈 내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세계적 추세를 전했다.

최근 국내 가요계에서 문제가 됐던 립 싱크 같은 것은 상식 이하의 짓이라는 것이다. “국내 음악인들은 다듬어진 무대에만 너무 길들여져 있어 즉흥 연주에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는 우려다.

일부의 절대적 열광과 다수의 극단적 무관심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그는 ‘컬트적’란 말을 원론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대중 앞에 서기를 극히 꺼리는 그지만 가끔씩 큰 무대의 부름에 응하기도 한다. 김덕수 사물놀이도, 국악관현악단도, 서울 시립 교향악단 등 서양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그는 ‘타인과 어울릴 줄 아는 컬트’의 존재를 입증해 보였다.

그는 “내 음악에 싫증을 잘 느끼는 내가 살아가는 법은 먼저 내가 변하는 것”이라며 “변해야 할 때 그렇지 못 하면 기분만 우울해져 식구들에게 짜증만 내기 일쑤”라고 말했다. 잘 참아 준 식구들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새로운 주법을 개발하느라 생계를 위해 다니던 야간 업소마저 그만두었을 때도 자신을 믿어 준 식구들이 고맙다. 현재 극단 뮈토스 단원인 연극배우 강화정(32ㆍ딸)과 지하 연습실을 번갈아 사용한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9/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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