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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 최희섭, 성공신화

‘최희섭, 리글리 필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Wrigley Field, Choi)’

2002년 9월 4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서 한국 야구사가 새로 씌어졌다. ‘빅맨’ 최희섭(23)이 한국인 야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기 때문.

최희섭은 박찬호(텍사스), 조진호 ,이상훈, 김선우(이상 보스턴) 김병현(애리조나), 봉중근(애틀랜타) ,서재응(뉴욕 메츠)에 이어 8번째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한국인 선수가 됐고 아시아 출신 야수로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신조 쓰요시(샌프란시스코), 다구치 소(세인트루이스)에 이어 4번째 메이저리거가 됐다.

최희섭은 이날 밀워키 브루워스와의 홈경기에서 9_1로 크게 앞선 7회초 1루수 프레드 맥그리프의 대(代)수비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두번의 수비 기회를 깔끔히 마무리한 최희섭은 7회말 2사 시카고 컵스의 4번 타자로 대망의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지역 언론에서 장래 시카고 컵스를 대표할 간판타자로 점 찍혀왔던 만큼 최희섭이 들어서자 컵스의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최희섭을 환영했다.

최희섭은 첫 타석에서 아쉽게 삼진을 당했지만 데뷔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 장래의 4번 타자 자질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최희섭의 첫 안타, 첫 홈런, 첫 타점은 메이저리그 다섯번째 경기인 9일 세이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나왔다.

대타, 대수비로 출장하다가 첫 선발 기회를 잡은 최희섭은 0_2로 뒤진 7회초 첫 타석에서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상대 선발 제이슨 사이먼타치의 초구 직구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31m짜리 대형홈런을 뽑아냈다. 대형타자의 자질을 유감없이 과시한 것이다. 최희섭은 “팀에서 바라는 것이 홈런인 만큼 한방을 노리겠다”며 다부진 의욕을 보였다.


타고난 체격ㆍ파워, 고교때부터 주목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야수 최희섭은 1979년 전남 영암에서 최찬용(53), 양명순(49)씨 사이의 2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가쪽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람한 체격 덕택에 전남 희종 초등학교 시절에는 육상 단거리 선수를 했었다. 지금도 100m를 12초대에 끊을 정도다. 최희섭의 야구인생은 광주 송정초등학교 5학년 시절 시작됐다.

이후 광주충장중_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에 진학하는 야구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고교 1학년 때는 투수로도 활약하며 최고시속 14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기도 했었지만 2학년 때부터는 방망이로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2학년 때인 96년 1년 선배 김병현과 함께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고 3학년에 올라간 97년에는 황금사자기 준우승, 대통령배에서는 최다홈런왕을 차지했었다.

최희섭은 고교시절 남보다 머리 하나는 큰 체격(195㎝ 110㎏) 덕택에 대형 기대주로 꼽혔지만 어이없는 헛방망이질로 ‘공갈포’라는 오명 또한 들어야 했다.

최희섭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고교 3학년 때인 97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엄청난 파워와 배트 스피드로 주전타자로 활약하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팀의 4번 타자감으로 키우기 위해 스카우트를 시도했지만 최희섭은 고려대 조두복 감독의 손짓에 이끌려 결국 고려대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 1학년 때인 98년에는 국가대표로 뽑혀 홍성흔(두산), 강혁(SK) 등과 함께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일궈낸 최희섭은 본격적인 대망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기 시작했다. .


철저한 미국식 관리, 준비된 메이저리거

최희섭의 미국 진출은 99년 이뤄졌다. 시카고로 날아간 최희섭은 컵스와 당시로 거금인 12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4월13일 계약식을 맺었다. 최희섭의 데뷔는 철저한 마이너리그 시스템의 훈련과정 끝에 이뤄졌다.

메이저리그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던 박찬호나 한국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김병현과는 달리 최희섭은 싱글A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최희섭이 데뷔 첫 해인 99년 싱글A팀서 3할2푼1리 18홈런 70타점을 기록하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자 외야수 코레이 패터슨과 함께 컵스를 끌고갈 양대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빅 리그 데뷔가 점쳐지던 2001년은 최희섭에게 시련의 해였다. 손목과 손등부상이 겹쳐 트리플A에 머물러야 했다. 절치부심 메이저리그 데뷔를 꿈꾸던 최희섭은 올 시즌 트리플A에서 2할8푼7리, 26홈런, 97타점을 기록한 뒤 메이저리그 엔트리가 40명으로 늘어나는 9월, 41개월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꿈의 무대를 밟았다.

최희섭의 미국 생활은 ‘야구만을 생각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99년 미국에 건너간 이후 한 차례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샤워도 하지 못한 채 좁은 밴을 타고 이동해야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만을 꿈꿨다.

영어공부도 열심이었다. 훈련시간이 끝나면 가정교사에게 영어 교습을 받았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9월 4일에 최희섭은 능숙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영어 인터뷰를 진행, 현지 기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비 실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7일 메이저리그 세번째 경기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 대수비로 출전한 최희섭은 6회말 세인트루이스의 중심타자 티노 마르티네스가 친 우익선상 2루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해 아웃시키는 묘기를 선보여 공수에서 준비된 메이저리거임을 입증했다.


동양인 파워히티 가능성 열어

90년대 중반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 등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뒤 많은 아시아 투수들이 메이저무대를 밟았지만 타자로 성공한 선수는 지난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스즈키 이치로(시애틀)가 유일한 정도다. 신조나 다구치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이들은 모두 마른 체형의 교타자형 선수다.

아기자기한 기술과 빠른 발을 앞세우는 것이 아시아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전형처럼 여겨졌지만 최희섭 같은 대형 타자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지금까지의 통념을 깨뜨린 것이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최희섭보다 중단거리 타자인 코레이 패터슨, 바비 힐 등이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결국 최희섭만큼 관심을 끈 선수는 없었다. 파워 히터는 그만큼 팬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과 스타성이 있기 때문.

특히 1루수 자리는 마크 맥과이어(은퇴ㆍ전 세인트루이스), 라파엘 팔메이로(텍사스), 토드 헬튼(콜로라도 로키스)등 메이저리그에서도 팀내 간판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희섭이 성공할 경우 아시아 타자들에 대한 미국야구의 편견을 깨뜨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최희섭이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거포의 위력을 보여줄 것인지 야구팬들의 관심을 집중되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입력시간 2002/09/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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