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웨이킹 더 데드

젊은날의 사랑에 다시 흔들릴때

이상에 불타던 젊은 시절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그러나 인생 목표에 대한 빠른 성취 욕구, 삶의 무게, 일상의 반복에 함몰되어 하늘을 찌를듯했던 기개는 언덕 저 편으로 스러진지 오래다. 그 때, 무덤에서 불려나온 듯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

젊은 날, 뜨거운 사랑과 더불어 격하게 토론했던 그 많은 대화를 일깨우는 저 여인은 정녕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뻔했던 바로 그 여인인가. 그녀는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키스 고든 감독의 1999년 작 <웨이킹 더 데드 Waking the Dead>(18세, 비디오는 유니버설, DVD는 콜럼비아에서 출시함)는 앞만 보고 달려온 한 정치인의 준엄한 자기 성찰이자, 젊은날의 사랑과 이상을 향한 애틋한 반추를 담은 빼어난 심리 드마라이다.

격변하는 시대를 거쳐온 개인의 삶과 사회 의무와의 충돌을 이처럼 놀라운 통찰력으로 보여주는 영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내용만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잦은 플래시 백을 통해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긴장을 유지하는 솜씨 또한 빼어나다.

감독 키스 고든은 배우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감독을 꿈꾸었다고 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 밥 포시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하며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기도 했던 그는 1988년, <초콜릿 전쟁>으로 감독 데뷔를 한다.

로베르 코미에르의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데뷔 영화를 대상으로 한 IFPI Sprit Award 후보로 오르는 등 좋은 평을 들었다. 1992년 작 <휴전>은 윌리엄 와서튼의 반전 소설 ‘미드나잇 클리어’를 영화로 옮긴 빼어난 작품으로 그 해 10대 영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6년 작 <마더 나이트> 역시 커트 보네구트의 블랙 코미디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 <반전>과 <마더 나이트>는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다.

<웨이킹 더 데드>는 스코트 스펜서의 소설을 고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화했다. 똑똑한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4년. TV를 보던 필딩 피어스(빌리 크루덥)는 미네아폴리스 외곽에서 일어난 자동차 폭발 사고 소식에 경악한다. FBI는 칠레 군사 독재 정권으로부터 탈출한 두 반체제 인사와 이들을 돕던 미국 여성 사라 윌리엄스(제니퍼 코넬리)가 칠레 정부 요원으로 짐작되는 이들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한다.

미국 정부는 칠레 독재 정권에 대해 손을 쓸 수 밖에 없을거라는 해설이 곁들여진다.

2년 전 뉴욕. 해양 순찰대원으로 복무 중이던 필딩은 히피족인 형이 운영하던 출판사를 찾았다가 사라를 처음 만나게된다. 마더 테레사와 같은 삶을 꿈꾸는 사라와 대통령이 인생 목표인 필딩은 격렬한 토론을 벌이며 사랑에 빠진다. 베트남전에서부터 정부 정책, 제 3세계 문제까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일지만, 둘의 사랑은 그 이상으로 강렬하다.

1982년. 젊고 잘 생긴 독신남으로 지방 검찰국장이 된 필딩은 후견인 이삭(할 홀브록)의 주선으로 주지사 제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삭의 조카딸 줄리엣(몰리 파커)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사이가 된다. 보장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딛고 있는 필딩에게 사라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우린 헤어질 수 없어요. 난 당신과 함께 있어요” 사라가 살아있다는 것인가.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9/16 10:1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