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사랑받는 대통령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나 그를 지지하는 정치인은 대통령제를 사랑해야 한다. 9월 12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만약 대통령의 책임을 맡긴다면 이 나라를 제대로 세우고 경영하는데 신성한 권력을 쓰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돌아갈 동교동 사저(연건평 199평 지상2층 지하1층)가 평당 1,500만원 정도로 공사대금이 30억원에 달한다”며 “비용 조달 과정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설상가상으로 13일에는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이 오랜만에 김 대통령 사저에 대해 비난했다. 유 대변인은 성명에서 “수재가 나고 아파트값이 폭등하는데 호화판 사저를 건축하고 있다니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왜 우리 당이 미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선거를 100일도 못 남긴 지금, 모든 주장의 요약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당 대통령 후보는 호화판 사저가 없는 깨끗한 분”이라는 주장으로 충분할까. 그것으로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까. 해답을 세계에서 대통령제를 제일 먼저 실시한(1789년) 미국에서 찾아 본다.

9ㆍ11 1주년을 앞두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향해 전쟁 선포를 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상돼 왔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과 학자들이 부시의 대 이라크 및 테러 전쟁 결정에 대해 8월부터 벌여오고 있는 반박은 대통령제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엿보게 해준다.

캘리포니아 오크랜드에 있는 ‘인디펜던트 인스티튜트’(진보적인 전쟁 및 대통령제 강화 반대를 위한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로버트 히그스(‘위기와 초기대국가’의 저자)는 8월 28일 진보계열의 잡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에 흥미로운 기고를 했다. “대통령은 내가 무서워 하는 책을 읽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다.

부시는 여름 휴가 중 존스 홉킨스 국제 대학원 및 해군 대학교 교수인 에리올 코헨이 쓴 ‘최고 사령관:전쟁중인 군인, 정치가들의 지도력’를 읽겠다고 공언했다. ‘최고 사령관…’은 링컨, 처칠, 크레망소(1차 대전때 프랑스 수상), 벤 쿠리온(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 어떻게 최고 군사지도자로서 전쟁전문가인 군인들을 지도하고 협력하며 전쟁을 치렀는지에 대해 다룬 책이다.

공교롭게도 전쟁을 치른 뒤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 네 지도자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주요작전에는 적극적으로 군을 지휘했고 군 통수권이 문민인 대통령과 수상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자이며 역사학자인 히그스 교수는 코헨의 문민우위의 국군 통수권 해석을 잘못 된 것으로 본다. 그는 먼저 부시가 미국 헌법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부가 어렵다면 2조 2항만 읽어도 된다고 했다. 대통령이 육군과 해군의 최고 사령관이란 규정은 있지만 전쟁을 시작하거나 선포할 권한은 없는 것으로 명시한 조항이다.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헌법 1조).

히그스는 대공황, 1ㆍ2차 세계대전, 냉전 등이 야기한 경제 불황과 전쟁 위기가 결국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본다.

그는 부시가 전쟁 결정을 내리기 전 ‘전쟁의 비용-무용의 승리’(존 덴슨 편저)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란 결국 국민에게 인플레이션, 빛, 세금, 도덕적 패배를 안기고 개인적 자유를 빼앗을 뿐이라는 게 책의 논지다.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는 링컨과 루즈벨트가 실은 최악의 대통령이었음을 증명한 ‘새로운 대통령제 접근’(존 덴손 편저)도 읽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히그스는 군인이 전쟁에서 죽는 것을 벌레가 군화에 밟히는 정도로 여긴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닮으려 하지 말라고 부시에게 충고한다. “이 시대의 전쟁은 부시대통령, 코헨 교수, 국방차관 월포비치에 맡길 만큼 중요하다고 누구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비꼬는 것이다.

한편 미국 대통령 역사의 권위자인 캘리포니아대학 역사학부 로버트 다렉 교수(‘대통령 찬양-미국 대통령의 실패와 성공’, ‘린든 존슨’, ‘레이건’ 등의 저자)는 히그스와는 다른 시각에서 9ㆍ11 사태 1년후 미국 대통령의 위치를 관측하고 있다.

다렉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위기가 닥치면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심정적으로 합의한 상태”라며 “부시는 완벽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감이다. 그건 비행기를 백악관 남쪽 잔디에 안착시키는 조종술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일거에 바꾸는 마법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통령이 보다 낳은 내일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특히 9ㆍ11 후 그렇다.” 이것이 테러 이후의 미국을 바라보는 그의 결론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9/1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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