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초점] 북·일 '평양의 합창'에 거는 기대

‘평양 발(發) 러브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일본 여성과 북한 남성이 북한을 무대로 역사 의식의 장벽을 넘어 애절한 사랑을 이뤄가는 북한판 ‘러브스토리’가 내년 2월께 평양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일본과 북한의 첫 합작 영화다.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에 따르면 국민영화인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인기 절정에 오른 야마다 요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야마다 감독은 영화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스스로 열렬한 팬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인기감독이다. 그가 만든 북한판 ‘러브스토리’는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날까?

이 해답은 9월 17일 사상 첫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표정에서 엿볼 수 있다.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남북한 관계 및 동북아 정세와 양국간의 다양한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했다.

광복이래 두 나라 정상간에 처음으로 이뤄진 이번 회담의 의제는 그 동안 북ㆍ일 간 실무자 협의 과정에서 거론되어 온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를 비롯, 일제 식민 지배ㆍ전후 배상 등 과거청산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동결 유지, 괴선박 출몰 문제 등으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간에 본격적인 ‘러브 스토리’가 이뤄지기에 앞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현안들에 대해 상징적인 상호 신뢰회복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회담에서 남북대화의 계속적인 진전과 핵, 미사일 등 국제 사회의 현안에 대한 성의 있는 대응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특히 외교 소식통들은 일본인 납치의혹 문제와 관련해 양국 정상은 일정한 의견접근을 통해 2000년 10월 이후 중단되어온 양국간 수교교섭이 재개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과거 청산문제에서도 양국이 한ㆍ일 청구권 협정 당시의 수준으로 상호재산 청구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일본이 경제협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전을 이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들은 두 정상이 국교 정상화 교섭 재개에 합의, ‘공동문서’를 발표할 것으로 보도하는 등 양국간의 ‘해빙 분위기’를 낙관하고 있다.

처음으로 만난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정치적 배경과 통치 스타일, 성격, 나이 등 개인적으로 서로 유사한 점이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 모두 지적(知的)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기질의 성격(혈액형 A형)인데다 나이도 60세 동갑으로 정치적 배경 역시 부친의 후광을 얻었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통치스타일은 더욱 관심을 끈다.

이들은 ‘타협’ 형 이기 보다는 ‘독단’ 형에 가깝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음악과 스포츠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 역시 닮은 꼴이다.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집권 17개월을 맞도록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해 이번 회담 성과가 정권의 명운을 건 도박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외국 자본이 절실히 필요할 뿐 아니라 미국 대북강경책이 완화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김 위원장으로서도 이번 북ㆍ일회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두 국가간의 ‘러브 스토리’는 두 정상의 욕구와 갈망이 상호 충족될 때야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이번 정상회담 성과 역시 양국 정상이 품어온 나름대로의 정치적 의도와 계산이 맞아 떨어질 때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 젖힐 수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09/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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