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은 감옥에서도 '황제'

김태촌·조양은 등 두목들 제왕적 수감생활, 조폭-교도관 컨넥션

“폭력조직의 두목은 교도소에서도 보스인가.”

범서방파 전 두목 김태촌(53)이 수감중인 교도소로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터져 나온 말이다.

법무부는 8월 9일 김태촌이 수감중인 경남 진주교도소 병사동에서 부정 물품이 반입됐다고 밝혔다. 김씨의 병사동에서 발견된 부정반입물품은 현금 90만원과 담배 3갑, 유선 전화기 등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한 제보자에 의해 공개됐다. 제보자에 따르면 김씨는 교도소 내 병사동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자유롭게 이용해 외부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담배 20갑과 현금 300여 만 원을 보관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직원 전용 테니스장을 이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태촌 등 범털, 상상 초월한 ‘대접’

재소자 신분으로 어떻게 이런 상상하기도 어려운 특권을 누릴 수 있었을까. 법무부는 9월11일 김씨의 1급 모범수형자 처우 편의와 관련해 교도소 보안과장 이모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함께 교도관 10명을 근무태만 등의 사유로 정직과 감봉 등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에 앞서 당시 진주 교도소장과 보안과장을 면직조치하기도 했다.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씨는 폐결핵을 앓는다는 이유로 지난해 4월17일 치료 전문 교도소인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진주교도소로 이감될 당시만 해도 행장급수 3급에 지나지 않았다. 수형자의 처우와 관련해 4등급으로 분류되는 행장급수는 등급이 높을수록 전화를 자주 이용할 수 있으며, 면회 횟수도 많아지게 된다.

그런데 진주교도소에서 이감된 후 어떤 이유로 1급 모범수형자로 ‘특진’했는지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중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김태촌이 진주교도소에 호사를 누렸다는 점이다. 돈 없는 ‘개털’ 죄수와는 달리 돈이나 권력이 있는 ‘범털’ 죄수로 대접을 받았다는 얘기다.

항간에 범털 죄수들은 교도소 내에서도 면회나 사식뿐만 아니라 엄격히 금지된 흡연을 하는 등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그렇다면 김태촌도 범털 죄수에 속한 셈이다. 수감자 처우에 대한 조그마한 항의에도 각종 불이익이 따르고 징벌방에 갇히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는 개털 죄수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감옥서도 조직 진두지휘

그런 면에서 현재 외화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도 80년대에 ‘제왕적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조양은이 교도소 내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교도관이 그 수감자를 조씨의 방으로 ‘모시고 갔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조씨는 교도소 내에서 운동권 학생들과 대체로 가까운 편이었다.

현재는 모 일간지 기자이지만 당시 조씨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됐던 K씨도 ‘교도관의 배려’로 자주 조씨의 방을 드나들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번 발생한 김태촌 사건은 각종 이권개입과 살인·폭력을 ‘진두지휘’ 했던 폭력조직 두목이 감옥에서도 보스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또 한 차례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은 여러 차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게는 올해 1월 부산교도소에서도 발생했다. 폭력조직 부두목 김모(40)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자 에이즈 감염자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출소하기 위해 에이즈에 감염된 동료 재소자를 유인해 혈액을 채취해 자신의 몸에 투여했다.

심지어 정액까지 받아 마신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김씨는 에이즈에 감염되기 위해 사용한 면도칼과 혈액 채취용 주사기를 교도관을 통해 전달받았던 것으로 의심됐으나 아직도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특히 에이즈 감염자는 김씨로부터 담배까지 얻어 피웠던 것으로 밝혀져 교도소 안에서도 재소자들이 담배와 칼 등을 마음대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또 전주교도소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교도소 직원 서모씨가 95년 3월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오거리파 부두목 유모씨에게 담배 70개비와 신발 12켤레 등을 건네주고 사례비조로 500 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구속된 사건이었다.


‘공포의 청탁’에 교도관들 쩔쩔

이처럼 조폭 두목들은 교도소 내에서도 원하는 물품을 별 어려움 없이 구하고 있다. 이 같은 부정물품 반입에는 교도관이 개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폭-교도관의 은밀한 커넥션’이 교도소 내에서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매개는 돈이다. 두목급 조폭이 감옥에 갇힌다 해서 그의 자금줄이 끊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교도소 직원을 금품으로 매수, 부정물품을 반입하는 것이다.

폭력조직의 협박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형님’이 잡혀 들어가면 ‘동생들’은 형님의 편안한 ‘큰 집(교도소를 지칭하는 은어)’ 생활을 위해 수발을 들게 마련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교도관은 “두목의 옥바라지를 위해 부하가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교도소 직원을 불러내 회유하거나 은근히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솔직히 체격 좋은 애들이 ‘우리 형님 잘 부탁한다’고 말 한 마디만 해도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현 정권 들어 교도소 환경이나 교도 행정이 많이 개선됐다는 점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들에 따르면, 아직도 수감자와 교도관이 검은 뒷거래를 하거나, 탈법적 폭력이 묵인되고 있다.

이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정부가 이번 김태촌 특혜 사건과 같은 일들을 쉬쉬할 게 아니라 현재보다 선진화된 교정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수감자가 조직폭력배일 경우에는 교도소 직원이 그들에게 협박을 받았는지 또는 은밀한 거래가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지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09/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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