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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작곡가 백병동

[우리시대의 巨匠] 작곡가 백병동

백병동(68)은 지진계의 바늘이다. 미세한 떨림에도 감응하려는 듯 5척을 조금 넘는 그의 육체는 말라 있다. 거기에는 시대의 유행과 타협하지 않고 가장 개성적인 어법을 찾기 위해 분투해 온 자만의 강단이 있다.

그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연립 주택이 허락한 23평의 공간에서 부인과 함께 14년째 살고 있다. 그 14년은 작품 구상이나 곡을 쓸 때면 학교 등지를 전전해야 했던 세월이기도 하다. 집안에 작업실이 없는 까닭이다.

지난해 2월, 25년 동안 몸 담았던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정년 퇴임한 이후는 명예 교수로 위촉돼 후학들과 만난다. 이후 대학원 과정 강좌인 ‘비조성 음악 문헌 연구’를 맡아 오고 있다. 현재 수강생은 9명뿐이다. 언제나 소수의 예술로 존재해 온 현대 음악의 운명을 따르는 듯 소수 정예의 제자다.

“교과서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음악을 ‘현대 음악’으로 총칭하지만, 나는 그 표현을 그리 좋아 하지 않습니다. 현대 음악(modern music)보다는 동시대 음악(contemporary music)이라고 부르죠.” 그러나 그 ‘동시대 음악’은 동시대인에게 외면당하는 음악이다.


‘동시대 음악’ 가르치기에 바친 29년 세월

그 얄궂은 예술을 가르치는 데 그는 29년째 세월을 바치고 있다. 서울대에 오기 전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던 3년이 포함된 햇수다. 가르침의 세월 속에서도 그는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65년 국악기를 위한 별난 현대 음악 ‘실내음악(가야금곡)’으로 시작한 그의 작곡 경력은 올해 8월 뉴서울오페라단의 ‘눈물 많은 초인-인간 박정희’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창작열을 입증했다. 지금까지 독주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칸타타 등 동ㆍ서양 악기를 넘나드는 작품 100여곡이 그의 이름을 달고 탄생했다.

최근작 ‘눈물 많은 초인’은 그의 세번째 오페라 작품이다. ‘이화 부부’, ‘사랑의 빛’ 등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실재 인물을 다루는 휴먼 드라마인 사실을 감안해 그로서도 전위적 기법은 자제했다.

이상의 ‘심청’, 베르크의 ‘보첵’, 펜데레츠키의 ‘콕토의 악마’, 리메의 ‘야콥의 사다리’ 등 현대 오페라의 걸작들에 비한다면 실험성을 상당히 순화시킨 작품이었다.

인기 작가 이인화가 대본을 쓰고 소재가 당대인에게 친숙했던 덕에 이번 오페라 작품은 진작부터 언론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현대음악 작곡 발표회장은 썰렁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에 익숙해 진 사람들에게 낯설수 밖에 없죠.”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최근 줄기차게 이어졌던 초연작 발표 무대가 그 사실을 입증한다. 2000년에는 ‘겨울잔치’와 ‘해조음’ 등 두 편의 관현악곡이 새천년을 알렸다. 이어 2001년에는 국악관현악곡 ‘불꽃이 있어야 불을 붙이죠’가 뒤를 이었다.

시인 이승훈의 시에 가야금과 피리 등 국악가들을 실내악적으로 편성해 연주됐던 이 작품 역시 초연작이었다. 국악의 시조창을 현대음악의 가곡풍으로 치환시킨 이 작품은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인시켰던 자리이기도 했다.

가야금 독주곡을 현대음악적 기법으로 썼던 ‘신별곡’을 만들었던 1972년의 정신은 오랜 세월을 지났지만 조금도 삭지 않았다. 이를테면 ‘눈물 많은 초인’이 그 간단 없는 행보의 증거물이다. ‘윤이상의 아들’로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진정한 현대음악 어법에 목말라 하던 그는 1969년 동료 강석희 김정길과 함께 독일로 추방된 윤이상을 찾아 바다를 건넜다. 아르바이트로 생활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외곬로 비뚤어 질 수밖에 없었던 현대음악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2년이었다. 서양의 기법을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동양 특유의 소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


곡 쓸땐 사회적 영향 많이 받아

“글 쓰는 거나 올챙이 그리는 거나 똑 같죠.” ‘박정희’를 부탁받고 작곡할 때도 그랬다. “옥죄는 마감 시간 안에 내 작품을 쓰자는 마음뿐이었죠.” 철저한 장인적 작업이다. 작곡가인 까닭에 악보에 씌어진대로 악기를 다루면 되는 연주자와는 같을 수 없다.

그는 “곡을 쓸 때는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대사 더듬기’와 ‘세 개의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진혼’이다. 모두 혈기왕성하던 1975년에 씌어진 작품이다.

“심장 밑에 콩팥, 콩팥밑에 양심, 목소리는 점점 잦아든다.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들이 동의어를 수도 없이 반복해 가며 악다구니를 벌이는 광경이 8분 35초 동안 15명의 남녀 성악가에 의해 그려지는 작품 ‘대사 더듬기’이다.

작품 속에는 헐떡대는 소리, 군화발 소리 등 세상사의 악다구니들이 두서없이 몽타쥬된다. 한국의 합창곡에서 오선보로 잡아 둘 수 없는 일상의 육성이 가감 없이 등장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초연 지휘는 나영수).

그러나 당시 총력 안보를 외쳐대던 박정희 정권에게 이 공연은 충분히 불온한 것이었다. 주변의 공연 관계자들은 ‘남산(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정권이 힘없는 음악인들에게 가했던 억압은 당시 언론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 두번째로 무대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여러 현대 음악 중의 하나로만 여겨져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이 제발 저린 꼴만 된 것이다.

원래 백병동은 그 작품에서 제각각 자기 말만을 늘어 놓고 정작 대화는 없는 현대의 인간 군상을 빗대고자 했다. 그러나 때는 1975년. 군부 독재의 시선으로 모든 것이 재단되고 처단되던 야만의 시기였다.

‘세 개의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진혼’에는 개인적 아픔이 배어있다. 두 명의 소중한 사람을 잃어 버린 마음을 그렸던 곡이다. 오페레타 ‘석가탑’의 대본을 써주었던 신동엽 시인이 자신과 함께 또 다른 작품 ‘아사녀’를 만들기로 하고는 타계한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마저 저승길로 떴다.

1960년대 후반에 스케치 해 둔 테마를 끌어 내 완성시킨 곡이 바로 ‘진혼’이다. 척박했던 국내 현대음악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때였다.

‘진혼’을 쓰고 3년 뒤에는 모친도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그가 자연 회귀를 주제로 쓴 곡이 오케스트라곡 ‘산수도’이다. 같은 시기에 나왔던 ‘진혼곡’과 ‘산수도’는 각각 영혼의 울부짖음과 동양적 화평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백병동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증명해 보인다.

그는 두 작품은 가리켜 ‘영혼을 괴롭히는 것’,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대별한다. 그러나 곡을 쓸 당시는 너무 힘들어 어떤 곡이 나올 지 의식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두 노작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밀도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해설따위가 불필요한 것이 음악”

그는 세간의 평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말로 음악하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며 “작곡가의 심정이나 작곡 과정 등을 듣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해설이 있는 음악회가 속속 선보이는 데 대해 그는 음악에는 해설 따위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순수한 음 구조물로서의 음악을 강조하는 그에게는 분명 ‘선비’ 혹은 ‘지사’의 풍모가 겹친다.

그는 쉬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는 쉴 수 없다. 숨 돌릴만하면 작곡 위촉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대작 ‘인간 박정희’를 마친 그에게 서울대 기악과 김현곤 교수가 ‘클라리넷 독주곡’을 의뢰한 것이다. 11월 리사이틀에 발표될 곡이니 한숨 돌릴 겨를이 없게 됐다.

오랜 지기이자 ‘대사 더듬기’의 대본을 썼던 시인 김영태는 시 ‘반지(半紙)’에서 백병동을 이렇게 그렸다. ‘콩나물 대가리만/오선지에 긋는 고슴도치 같은/선량한 양반’이라고.

컴퓨터는 몰라 아날로그적으로만 작업해 온 탓일까, 최근 눈이 흐릿해졌지만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남은 눈으로 오선보에 작곡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2년전 읽은 일어판 ‘제랄드 무어 전기’도 다시 파고 들어 갈 생각이다. 그는 “부수적으로만 알기 십상인 반주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며 “적어도 성악 전공자라면 꼭 봐야할 책”이라고 소개했다. 과거에 이루지 못 했던 일은 여전히 유효한 숙제로 남아 그를 채근한다. 시간에 대한 저항이다.

그는 결혼 초기부터 자식은 두지 않기로 부인과 합의했다. “잘 키울 자신도 없고 애한테 시간 뺏기기도 싫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그렇다면 인습에 대한 저항일 지 모른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9/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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