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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이 문화읽기] 삶의 원천 '고향'

얼마 전에 ‘네티즌 절반 이상 추석 귀성 안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8월 중순에 조사한 것이고 대상 집단도 네티즌 1만 명 정도였기 때문이다.

추석 스트레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방어적인 심리상태가 표현된 조사결과로 보인다. 아마 입으로는 투덜투덜 하면서도 막상 추석이 다가오면 몸과 마음은 고향을 향해가고 있을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귀향 풍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이번 추석 역시 예년과 별다른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설과 추석 때의 귀향은 한국사회의 집단적 무의식과 관련된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다. 집단적인 귀향은 197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에 대한 심리적 보상 방식이며, 한국인들의 몸 속에 여전히 농경민적인 상상력이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기확인의 과정이다.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고향과 가족이라는 가치가 잠재의식 속에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귀향은 돌아갈 곳이 있고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회적 차원의 제의(祭儀)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촌락(村落) 공동체에서 일생을 살았던 옛 조상들은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낭만화된 고향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촌락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자연적인 삶의 리듬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을 해서는 자식을 낳고 길러서 결국에는 조상들이 묻혀있는 곳에 마지막 거처를 마련한다. 촌락은 자연을 닮은 순환의 시공간이며 그 속에서의 삶 역시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적인 양상을 보인다.

반면에 고향은 촌락 공동체의 붕괴와 해체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촌락공동체의 상실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물이자 사회적인 기억이다.

일반적으로 고향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곳, 즉 생물학적인 출생지로서의 고향이다. 다른 하나는 존재의 근원이 있는 곳이며 그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고향이다.

고향이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사회구조의 재편성으로 인한 인구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이농(離農)이나 탈향(脫鄕)과 같은 사회적인 대이동(exodus)이 없다면 고향이라는 이미지는 결코 낭만화되지 않는다. 작가 신경숙은 첫 창작집 <겨울 우화>의 서문에서 고향이라는 낭만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열다섯살 되던 해, 그해 마지막 모내기를 끝낸 날 저녁, 어머니는 내 손을 끌고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나는 가끔 그날 밤처럼 눈을 꾹 감고 뜨지 않는다. …그 신작로, 그 산길, 그 묘지, 그 움막집, 그 성당, 그 다리밑…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자신이 살던 곳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은 태아가 자궁을 빠져 나오는 근원적인 분리(abjection)경험과 유사하다.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의 경험이 역설적으로 고향을 낭만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만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 정지용은 ‘향수’(1927)에서는 고향을 얼룩백이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으로 묘사하면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말했다. 일본에 유학을 하며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하던 시인은, 정작 고향에 돌아오게 되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향’(1932)이라는 작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 높푸르구나.” 시인은 거짓말쟁이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낭만적인 이미지로서의 고향과 냉엄한 현실로서의 고향 사이의 격차를, 시인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은 낭만화된 이미지이다. 그리고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고향의 이미지 때문에 우리는 삶의 한 축을 지탱하며 살아간다.

고향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줄 그 무언가가 반드시 어느 곳에는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한다. 사막과도 같은 삶 속에서 생명의 원천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 속에 고향의 이미지가 실체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향으로 간다.

입력시간 2002/09/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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