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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철도승무원 김영규

"고향길 지켜주느라 고향을 잃었죠"

실향민도 아닌데, 김영규(37)씨는 올 추석도 고향에 가지 못한다. 12년째 결석이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초창기에는 ‘무슨 직장이 그러냐, 관둬라!’ ‘이러다간 애비가 죽어도 제사에 못 올 놈!’이라고 서운해 하던 시골 노부모님도 이제는 아예 그러려니 아쉬움을 접는다. 본능처럼 다들 애타게 고향과 가족들을 찾는 길, 사람들의 고향길을 배웅하느라 정작 자신은 고향을 잃었다.


‘빨간날’이 더 바쁜 여객전무

“몇시간씩 입석으로 서서 가더라도 고향가는 승객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 때문에 회의도 들었지만, 이제는 이 분들이 잘 다녀오시는게 제 몫도 대신해주시는거다, 함께 마음이 즐겁습니다.”

‘열차의 꽃’으로 불리는 여객전무, 이것이 김씨의 직업이다. 서울열차승무소에 근무하는 그는 중앙선을 제외한 전국 각 노선의 열차에 올라 전국을 누빈다. 철도공무원이 된지 올해로 12년째, 그 대부분의 시간을 기차 속에서 보냈다.

국경일이나 명절은 물론 토, 일요일도 쉬는 법이 없다. 오히려 명절이면 명절이라 더 초비상이다. 한번 열차에 오르면 짧게는 4시간, 길면 7시간씩 객차 속에서 지낸다. 사흘마다 한번씩은 밤기차도 탄다. 한밤중에 출발해 다음날 동이 트고서야 종착지에 도착하는 밤샘열차다.

승객들은 자더라도, 승무원은 꼼짝없는 불침번 신세다. 한 차편당 배정되는 승무원은 여객전무와 차장, 단 두명. 한번에 1천명에 가까운 승객의 안전과 편의가 이들 어깨에 걸려있다.

휴가철 북새통을 치른지도 얼마 안됐는데 돌아서자마자 추석 성수기가 닥쳤다. 추석에는 평소보다 엄청나게 불어난 귀성객들을 위해 임시열차도 30% 이상 증설, 그러고도 객차마다 입석까지 꽉꽉 채운 콩나무 시루다.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나마 명절 때에는 승객들의 불평도, 불만도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고향을 찾는 설렘이 승객들의 마음을 바다처럼 풀어놓는 모양이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김씨가 출근길마다 주문처럼 외는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다. 제발 오늘은 아무 탈 없이! 열차승무원들 중에서도 꽤 고참급에 속하는 그지만, 지나간 12년동안 단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언뜻 보기엔 그림처럼 평화로운 기차여행, 그러나 김씨에게는 조마조마한 ‘사고다발지’다.

난생 처음 시체를 만지게 됐을 때부터 진작에 가시밭길임을 알아봤다. 지금까지 네 번이나 시신을 만져봤으니 이제는 베테랑이지만, 맨 처음 겪었던 사고현장은 1년간 육류를 전혀 입에 못 댈 만큼 충격을 남겼다.

문산행 열차에 오른 어느 한겨울 낮, 김씨가 타고 있던 열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사고가 터졌다. 달리는 기차를 보지못한 트럭운전사의 졸음운전 때문이었다. 열차는 급히 멈춰섰지만, 충돌한 트럭은 10여미터 이상을 튕겨날아가 떨어지며 두 토막이 났다.

사고가 나면 현장수습에 대한 책임도 승무원의 몫이다. 떨리는 가슴으로 달려나간 김씨는 운전석에 짓눌려 피투성이가 된 채 즉사한 운전사를 보았다. 처참한 모습의 시신을 보자마자 김씨도 당장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임이란게 그렇게 무섭더라구요. 승무원만 아니었으면 무서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달아났을텐데, 어떻게든 이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겁나고 무서운데도 사고자의 신원을 알아내기위해 직접 제 손으로 그 끔찍한 시신까지 만지게 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사실 이것은 열차승무원들 사이에서는 별 희귀한 이야기거리도 못 된다. 조금만 경력이 쌓인 고참이라면 누구랄 것 없이 갖고 있는 '거짓말 같은' 경험담들이다. 참고로, 열차사고가 일어날 경우 사고자가 입는 인체의 손상 정도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중 가장 끔찍하고 처참한 형태가 된다.

어떤 승무원은 비슷한 사고를 치르면서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중 거의 사고자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만큼 조각이 난 사고자의 시신 중에서도 끝내 머리 부분을 찾지 못해 결국 경찰에게 남은 일을 맡기고 철수했다가 다음날 새벽 출발을 앞둔 열차 기관차 사이에서 두 눈을 부릅뜬 채 끼어있는 전날 사고자의 머리부분을 발견해 기절직전까지 간 일도 있다.

사고수습반이 아니라 김씨 자신이 직접 희생자가 될 뻔한 일도 있다. 수십 명의 부상자가 생기면서 한때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던, 장항선 열차사고가 그것이다. 발단은 장항선과 경부선이 갈라지는 길목인 두정역에서 김씨가 타고 있던 무궁화호와 다른 화물열차가 차례로 선로를 옮겨 타는 도중 일어났다.

Y자 모양으로 두 선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길, 정해진 순서에 따라 먼저 무궁화호가 선로안으로 들어서 달리는 사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화물열차 기관사가 깜빡 졸면서 제동장치가 풀린 상태로 그대로 미끄러져 고속진행중이던 무궁화호를 들이박아버렸다.

순간 무궁화호의 객차 몇량의 차창이 잇따라 완전 대파된 것은 물론 바퀴가 선로를 이탈하면서 열차가 45도까지 기울며 뒤집혔다. 불과 몇초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는 승객들과 함께 날벼락을 맞았다.

충돌 순간 기분나쁜 굉음과 함께 차창이 모두 깨어지는 것을 보았고 실내의 모든 전기시설마저 나가버려 갑자기 암흑천지의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출구의 문도 부서져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지옥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그리고 김씨에게 퍼뜩 떠오른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처음 열차에 오를 때 보았던 임산부 승객이 갑자기 떠오르더라구요. 몸도 불편한데다 아기의 생명까지 달렸으니 제일 먼저 걱정되더라구요. 우선 승객들을 향해서 아주 엄청나게 큰 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아무도 다친 사람들이 없으니 승객 여러분은 절대 겁 먹지 말고 무조건 자기 자리에서 가만히, 꼼짝말고 계시라, 그러면 저희들이 한 분씩 안전하게 내려드릴테니 절대 동요하거나 움직이시면 안된다구요. 승객들이 흥분해 아우성을 치면 사고가 더 커질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구요.

극한상황에 이르니까 실제로 다들 승무원의 지시를 그대로 잘 따라주시더군요. 그리고는 임산부부터 찾아내 내보낸 뒤 다른 승객들도 차례로 내보냈어요. 119 구조대와 병원 구급차가 도착해 환자들이 실려간 뒤에도 저는 객차안의 승객들 물건까지 완전히 다 챙겨드리고 나서야 한 숨을 돌렸지요. 이제껏 살아온 동안 그때처럼 무서웠던 적이 없습니다.”


열차안에선 경찰에 소방관, 간호사역까지

열차 안에서도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난다. 문제가 터질 때면 파출소장, 소방대원, 간호사 노릇이 따로 없다. 때로는 성희롱 문제도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

십인십색의 승객들이 모여있다 보니 공공예절을 무시한 핸드폰 통화나 열차내 시설물을 먼저 쓰려는 사소한 다툼 등 승객들간에 서로 시비가 붙어 싸움이 생기는 일도 적지 않다. 싸움을 말리다 애꿎은 불똥이 승무원에게 튀어 멱살을 잡히거나 상스러운 욕설을 듣는 등, 고래싸움에 수시로 새우등이 터진다.

야간열차마다 예외 없이 등장하는 ‘주사파’들은 특히 요주의 대상 1호다. 술에 취해 곧잘 소란을 피우는데다, 여성승객은 물론 때로는 여성 승무원에게까지 성희롱을 시도하다가 혼쭐나는 경우도 있다. 열차가 출발한 순간부터 종착지에 도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승무원들은 내내 이런 살얼음판에 서 있다.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4년전쯤 경부선을 타고 있었는데 한 50대 중년신사가 설사를 만나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그만 변기에 앉기도전에 화장실 문 앞에서 일이 터져버린거예요. 배설물에 팬티와 바지가 모두 젖어버려 완전히 사색이 된 채 화장실안에서 문도 걸어 잠그고 쩔쩔매고 계시더라구요.

저랑 여객차장이 화장실 앞 통로를 몸으로 막고 망을 봐주는 동안 발가벗고 세면장으로 뛰어가 몸과 옷을 씻는 등, 아무튼 그 분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할 때쯤에는 아무 탈없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내리실 수 있었어요. 내리실 때 얼마나 엄청나게 고마워하시던지 아무리 사양해도 기어코 저희들에게 밥을 사주시고야 떠나시더라구요.

저희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거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승객들은 크게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때 다시한번 느꼈어요. 저희들도 그런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고생도, 어려움도 다 흐물흐물 녹아버리지요.”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도 말썽 고객 못지않게 그보다 훨씬 많은 따뜻한 승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갑작스런 저혈압 증세 악화로 온 몸이 마비될뻔한 할아버지를 보고 자신이 땀 범벅이 되도록 환자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민첩하게 구급대와 연락해 곧바로 병원 치료를 받도록 조치해준 일이 있다.

그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한 남자의 절절한 감사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김씨의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렵사리 철도청 직원들을 샅샅이 수소문한 끝에 김씨의 연락처를 알아냈다는,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뛰고 있는 열차승무원들에게 가장 힘이 솟을 때가 이럴 때다.

경북 봉화가 고향인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알고 지내던 한 역장의 권유로 1988년 철도청에 입사, 봉양역 근무를 시작으로 입환작업, 여객 차장 등을 거치며 1992년부터 열차에 올랐다. 처음에는 공무원에 대한 환상 하나로 멋모르고 시작한 철도인의 길, 뜨거운 자긍심과 보람 한편에는 남모르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주5일 근무제 논란은 ‘딴세상 얘기’

몸도 마음도 쉬기 힘든 직업. 건강문제가 가장 크다. 김씨의 근무기간 중에도 과로사로 열차안에서 목숨을 거둔 승무원이 2명이다.

그외에도 과로로 쓰러져 불구가 되었거나 간신히 살아나긴 했지만 결국 다른 곳으로 전출된 승무원도 있고, 최근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한 이도 있다. 공무원은 공무원이지만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세상에서는 주5일 근무제 논의로 떠들썩한 요즘, 이들은 사명감 하나로 이어온 휴일과 주말 근무조차 그에 따른 별도의 수당조차 따로 적용받는 것이 없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도 남몰래 전직문제로 갈등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같은 현실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떠나는 결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가족의 생계도 생계지만, 무엇보다 열차승무원들만이 맛볼 수 있는 치열하고도 역동적인 기차안 세상의 매력과 승객들과의 보이지않는 애정이 자꾸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밥 먹듯이 ‘외박’하는 자신을 가장으로 둔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면 미안하다기 보다는 차라리 가슴이 아프다. 특히 11살 난 아들은 수시로 ‘아빠는 왜 일요일에도 회사에 가냐’고 물어대 김씨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는 건지 이해하기 싫은건지 요지부동이다.

이 영점짜리 아빠는 오늘도 열차에 오른다. 만년 영점짜리 불효자 넷째아들은 오늘도 열차에 오른다. 그래도 김씨에게는 꿈이 있다. 그간 화물열차에서부터 비둘기호, 통일호 등 열차라는 열차는 모두 거쳤다. 남은 것은 2003년에 개통될 고속전철. 김씨에게는 설레는 신대륙이다.

고속전철에 오를 날을 대비해 벌써부터 컴퓨터와 영어,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평생 철도인을 다짐한 김씨의 즐거운 기차는 아직도 종착역까지 한참 더 길이 남아있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2/09/2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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