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대선구도의 황금분할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대선구도가 3파전으로 굳어가는 양상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신당 창당을 서두르고 있는 정몽준 후보가 추석을 전후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각각 31.6~34.7%, 14.4~21.8%, 27.1~31.4%의 지지를 얻어 전형적인 3자 대결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한동 전 총리나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박근혜 후보 등 군소 주자들은 3자 구도를 깨는 독립변수라기 보다는 종속변수처럼 움직이고 있다.

현재 세 후보의 지지율을 크게 보면 30%대 10%대 20%대로, 소위 ‘황금분할’의 수학적 기초가 되는 ‘피보나치 수열(數列)’인 1,2,3,5,8… 배열을 따르고 있다. 황금분할은 예로부터 ‘자연계의 모양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철학자 플라톤)이고,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드 피보나치(1180~1250)가 수열 공식을 통해 1대1,618이란 분할 비율을 계산해 냈다.

황금분할은 균형잡힌 미를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데, 과거엔 이집트의 파라미드나 부석사 무량수전과 같은 건축물에서, 우리 주변에선 TV 화면이나 담배갑 등의 가로세로 비율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 인간사회에서는 황금분할을 이루려는 인간의 무의식이 개인의 행위나 집단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가까운 예로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투자 심리도 결국 주가의 황금분할을 찾아가려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ㆍ정 후보의 지지를 합치면 이 후보를 앞서는 현재의 지지율 분포도 유권자들이 대선구도를 황금분할 상태로 몰아가려는 무의식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황금분할이라는 게 늘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싫증이나 반발, 엽기적 충동이 황금분할을 깨뜨리는 자연적인 변수라면 인위적으로 이에 도전하는 시도도 있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답보에 고민하는 한나라당이 국정감사 자리를 빌어 터뜨린 4억 달러의 대북 비밀 송금 의혹이나 3자 구도로는 도저히 뛰어넘지 못할 이회창 벽을 허물려는 민주당의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시도도 그런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제도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미국의 후안 린츠 교수는 “대통령 선거의 결정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정치적 국외자’가 손쉽게 진입하고 당선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4선 의원이기는 하지만 아직 당 체제도 갖추지 못한 정몽준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텍사스 주지사를 지낸 것을 제외하면 중앙 무대에 거의 선 적이 없는 정치적 국외자 조지 W 부시 후보가 당선됐고, 기업가 출신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1990년대에 치러진 두 차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80일 안팎이다, 유력한 세 후보로서는 앞만 보고 뛰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후보들의 표정은 다르다. 일찌감치 신발끈을 동여맨 이 후보는 현 정권의 무능ㆍ부패에다 대북 퍼주기 의혹 등을 앞세워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한껏 외치고 있다.

지지율 하락과 ‘반노’세력에 발목이 잡혀 있는 노 후보는 당내 분란을 추스리느라 표정이 크게 굳어 있고 정 후보는 정치적 국외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초조함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선 레이스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후보들은 무엇보다도 평심(平心)을 되찾는 일이 화급하지 않을까 싶다. 이 후보는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에서, 노 후보는 반노세력의 발목걸기, 정 후보는 재벌불가론 등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그 동안 세 후보의 행보에 관한 보도를 멀찌감치 밀어버린 큰 사건들, 북한의 신의주 특구 지정과 북일정상회담,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 남북한철도 연결공사 착공, 북한 응원단의 대규모 부산아시안게임 참가, 대북 4억 달러 비밀 송금설 등 ‘신북풍’ 이 누구에게 어떻게 향하느냐에 따라 후보들의 평심 찾기도 엇갈릴 것이다.

여행가 조슈아 피븐이 쓴 책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은 위기는 대처하기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대선 후보로선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국민을 안정시키고 신뢰를 얻는 게 가장 확실히 살아 남는 길이다. 현재의 대선 구도를 깨는 비책도 여기에 있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2/10/04 11:1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