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뜨는 신세대 마술사 이은결

"마술을 알면 행복이 보여요"

키 크고 조숙했던 소년은 또래의 친구가 없었다.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했던 터에 전학마저 잦아 제대로 친구를 사귈 틈이 없었다. 게다가 부친의 사업이 실패하자 그 아이에게는 혼자서 웅얼거리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제 훌쩍 커버린 그에게는 사람들의 탄성과 환호가 따라 다닌다. 마치 마술처럼.

한국의 최연소 프로 마술사 이은결(21ㆍ동아방송대 방송연예과 2학년 휴학 중)은 어디서건 돋보인다. 초등학교 때는 평균치였던 키가 사춘기를 지나자 187㎝로 커 버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는 언제나 중심이 된다. 비둘기가 장난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고, 애인에게 장미꽃을 선사한 뒤 불을 붙이니 커플링으로 변신한다.

그는 지금 세계 어느 무대든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마술사다. “2001년 일본 국제 마술대회(UGM)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게 출발이었죠.” 이후 2002년 4월 남아공 국제 마술대회에서 그랑프리 수상은 예고편이었다. 7월 뉴욕에서 열린 세계 3대 마술 대회 중 하나인 SAM 대회에서는 100주년 기념 특별상, 고득점상(high score award), 인기상(people choice) 등 세 부문을 석권한 것.


마술은 세상을 즐겁게 해주는 쇼

그리고 그간의 마술 비법을 축약해 ‘눈으로 배우는 마술책’을 펴냈다(넥서스 북스). 마술의 기초인 동전 마술과 카드 마술에서 시작해 가족 마술에서 고급 마술까지 마술의 모든 것들을 집약해 놓았다. 커다란 판형에 유쾌한 내용 등으로 네티즌들에게는 별 다섯개라는 후한 독자 평점을 따내고 있다.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마술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떻게 속이는지 이번에는 꼭 봐야지’하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마술을 하나의 쇼로 본다. 2002년에 생긴 ‘마술동아리 대학연합회’에는 서울대 등 20여개 대학 회원 2,6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마술을 배우려는 이유의 대부분이 ‘여자 친구를 사귀려고’ 또는 ‘친구들 인기를 끌려고’ 등이다.

마술을 생활의 윤활제로 받아 들인다는 증거다. 이은결은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마술이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산업”이라며 “한국도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풀이했다.

SAM 대회에서 그가 구사했던 8분짜리 마술은 2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것이다. 허공에서 돌연 비둘기 7마리와 카드가 나타난다. 카드가 비둘기가 되고 비둘기가 폭음과 함께 카드가 되는 마술이다. 몇 분 공연에 40여 가지 마술이 등장하고 수십가지 소도구가 등장한다.

무대 세팅에만 1시간은 족히 걸리는 이 환상의 쇼는 강한 테크노 음악에 폭탄과 연기 등 강렬한 무대 효과가 동원되는 등 다분히 할리우드식 마술쇼다. 미국식 마술과 차별되는 유럽 마술은 아직도 전통적 색채가 많이 남아 있다.

마술사도 인간이라 실수를 한다. 이은결의 경우는 공연 첫날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그렇다. 그러나 마술사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그 때다. 그럴 경우 객석에게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객석에 어느 정도 능란하게 불러 일으키는가 하는 것이 마술사의 능력이다.

그는 “얼굴이 웬만큼 두꺼워서는 힘들다”며 웃는다. 마술은 마법과 다르며 모든 마술에는 준비된 속임수가 있다는 것이다.

고입 연합고사 직후 찾은 마술학원에서 특수 카드, 특수 동전, 특수 인형 등 도구로 하는 마술부터 시작한 그는 거기서 자신감을 키워갔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던 성격을 고쳐보자는 것이 애초 목적이었다. 덕분에 그는 고등학교의 명물이 돼 갔다. 늦게 등교하다 교문에서 걸려도 가방 안에 든 마술 도구로 갖가지 마술을 펼치다 보면 벌을 면하고 교실로 가는 식이었다.

고 2때는 무대를 집밖으로 넓혔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재미 삼아 펼쳤던 마술쇼가 저의 첫 외부 공연이죠.” 이른바 스트리트 공연이다. 즐거워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직업 마술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마술은 9개의 요소로 나뉜다. 동양에서는 둔갑술 또는 요술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렸지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마술이 발달한 서양에서는 그것이 정교하게 세분된다.

마술사의 손에 있던 물건이 사라지는 소멸술(vanishing),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나는 출현술(appearance), 빨간 펜을 파란 펜으로 변화시키는 치환술(switch), 멀쩡한 카드를 꼬마 카드로 둔갑시키는 축소술(diminish), 반대로 물건을 부풀리는 확대술(magnify), 작거나 크게 만든 물건을 원래대로 돌리는 복구술(return), 1개의 공을 갑자기 3개의 공으로 변화시키는 등의 변환술(flourish) 등 일곱 가지 손 기술은 둔갑술의 기본이다.

이와 함께 관객의 시선을 전혀 엉뚱한 곳으로 유도해 마술사의 손에서 벌어지는 기술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주의분산술(misdirection), 갖가지 눈속임이나 교묘한 비밀(trick) 등 두 가지 방법이 적절히 혼합돼 한 편의 마술이 이뤄진다.


훌륭한 신체조건과 연기력 뒷받침

이들 기술에서 시작하는 마술의 묘미는 고정 관념을 깨는 데 있다. 이쪽 손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카드가 다른 손에서 나온다거나 분명히 없어진다고 했던 물건은 그대로 있고 되레 예상치 못했던 물건이 사라졌을 때의 놀라움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인정 받은 그의 마술은 훌륭한 신체 조건에다 기본기를 숙달하고 연극 배우를 연상케 하는 인상 연기와 마임 덕분에 더욱 빛이 난다.

그러나 그만큼 더 피와 땀을 요구한다. “무대 뒤에서 너무 힘들어요. 기획은 물론 조명ㆍ음악에서 의상ㆍ소품까지 모든 것을 혼자 챙겨야 하죠.” 단 몇 초 동안의 완벽한 환상을 위해 손이 베이고 화상을 입는 것은 보통이다.

그의 당면 목표는 2003년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 마술대회인 피즘(FISM)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자기 수련에 치중할 계획이다.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특징 등을 잘 조화시킨 한국적 마술을 개발하는 데 치중하겠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과 이야기 하다 갑자기 거북선이 나타날 뿐더러 옷차림도 갑옷 등 당시 모습으로 변한다. 그는 “역사 공부와 마술을 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으로 보는 재미있는 마술

이은결은 이번 출간으로 ‘마술의 속임수를 절대 가르쳐주지 말라’는 평소 신념을 저버렸다. 마술은 쉬쉬하며 감추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즐거운 생활 도구라는 믿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책은 현재 www.books4u.co.kr 등 인터넷상의 도서 판매 도메인에서 별 다섯개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다음은 책 내용 중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는 것들이다.


◆빨간색 크레용이 어디로 갔을까?

1.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크레용을 손 안쪽으로 조금씩 감춰 간다. 2.왼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이 그림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라는 등의 말로 왼손으로 아이의 시선을 끈다. 3.동시에 크레용을 무릎 위로 떨어뜨린다. 4.미리 묻혀 둔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다 손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요령:오른손 엄지손가락 손톱 끝에 빨간 색 크레용을 미리 묻혀 둔다)


◆앗, 뜬다!(천원짜리로 하는 차력)

1.길게 접은 지폐를 양손으로 펼친다. 2.왼쪽을 떼니 지폐는 당연히 떨어진다. 3.입김을 살짝 불어 준다. 4.아까처럼 한쪽 손을 떼지만 이번엔 그대로 떠 있다.(요령:지폐의 모서리 부분을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살짝 끼워 두는 것)


◆엄지 손가락이 싹둑 잘려 나가다!

1.왼손 손가락을 쫙 펴고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아 약간 비튼다. 2.앗, 엄지가 두 동강 났다! 잘려 나간 엄지가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3.어느 순간 잘려진 엄지가 제자리로 돌아왔다.(요령: 오른손으로 왼쪽 검지를 잡고 비트는 척 하면서 왼손 엄지를 살짝 아래로 구부린다. 실은 30초만 하면 손가락이 곧 뻐근해 진다. 잘려진 엄지를 다시 갖다 붙이는 듯한 오른손의 연기가 중요하다)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빵

1“어어어…”, 빵이 공중에 든 상태로 2.무서운 속도로 상대를 향해 돌진한다.(요령:포크로 찔러 구멍이 뚫렸던 부분에 오른손 엄지를 살짝 끼운다. 이 상태에서 상대방의 코앞으로 빵을 쑥 내밀면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인다.

이때 당신의 엄지가 상대의 눈과 일직선이 되도록 할 것. 그래야만 빵이 공중에 뜬 상태로 상대의 눈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포크 자국을 따라 방을 재빨리 반으로 나눈 뒤 어리둥절해 있는 상대와 함께 나눠 먹음으로써 이 마술은 끝이 난다. 이렇게 해서 상대는 나와 ‘공범’이 되는 것이다.)


◆마법의 쇼핑 백

1.납작하게 접은 쇼핑 백을 모두에게 보여준다. 2.쇼핑 백을 몸 앞쪽에 놓고 입구를 벌린 다음 손을 쑥 집어 넣는다. “자, 제가 여기다 손을 넣으면…” 3.“앗! 음료수와 빵이 나오네요.”(요령:마술 전에 준비를 해 둔다.

먼저 바지의 왼쪽 벨트 안 부분에 빵과 음료수 등을 끼워 놓는다. 2,쇼핑 백 긴쪽 모서리의 3분의 2정도를 칼로 잘라 둔다. 3.쇼핑 백 안에 손을 넣어 잘려진 곳을 통해 재킷 안에 꽂혀 있는 물건들을 잡아 빼낸다)

고난도의 마술이든 친지들끼리 하는 마술이든, 구경꾼의 눈에 트릭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해 내는 능력이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이은결은 마술을 보여줄 때 그것이 어떤 내용의 마술인지 절대로 미리 알려주지 말라고 강조한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0/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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