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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한국채식동호회 연합 이원복 대표

[인간탐구] 한국채식동호회 연합 이원복 대표

"채식하세요. 강골됩니다"

30여년 전 그는 서울 신촌역 부근 장터에 있었다. 집에서 불과 20여미터 떨어진 거리, 개나 닭의 도살 장면을 본 것도 그곳에서였다. 개장에서 끌려 나오는 순간부터 본능처럼 눈치를 채고는 처절하게 저항하며 끌려가던 영리한 개들, 이 때문에 개 잡는 할아버지는 도살용 망치도 등 뒤에 숨긴 채 개를 끌고 가곤 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끔찍한 과정.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개가 하루가 지나도록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살아 있는 것도 보았다.

또 닭장에서 붙잡혀 나오자 마자 순식간에 주인 손을 거쳐 펄펄 끓는 물 솥에 던져지던 닭들, 정육점으로 운반될 때 보았던 소, 돼지의 피와 고기 덩어리들. 하고 많은 기억들 중에 왜 유독 그 기억들은 지울 수 없었을까.

고려대 경제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이원복(38)씨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밥상에 어른거리면서 더 이상 고기에 손을 댈 수 없었다.

한국동물보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거리활동에도 동참했고, 처음부터 우유와 계란도 먹지 않는 완전 채식 생활을 시작했다.

올해로 17년째, 현재 동물보호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이씨는 약 1만명의 채식동호인들로 구성된 ‘한국채식동호회연합’(www.vege.or.kr)과 한국채식연대 대표이기도 하다. 최근 한 언론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약 80%가 채식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채식은 인류의 삶과 환경을 지키는 일

서서히 달아오르는 채식 열기 속에서, 적어도 이씨는 이제 외롭지는 않다. “처음에는 동물의 권리보호를 위해 채식을 하게 됐지만, 갈수록 우리에게 왜 채식이 필요한 건지 보다 큰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과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서도 채식은 꼭 필요합니다.”

그가 채식을 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신성한 생명을 갖고 태어난 가축들이 인간의 식탁을 위해 희생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유한한 지구 자원이 무서운 속도로 고갈되어 가는 것도 인간의 절제없는 육식문화가 빚어낸 결과 중 하나다.

0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은 식용으로 쓰일 가축들의 사료로 사라지고 있다. 지구의 물 3분의 1도 가축들이 마시는 것이다. 인간이 곡물을 재배하고 먹는데 드는 자원 소비량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이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작은 쇠고기 덩어리 하나를 만드는데 2.5 평방미터의 열대우림이 사라진다.

우리의 밥상에 올릴 조금의 고기 반찬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푸른 숲을 깎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굶주림으로부터 모두 해방되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1분에 23명의 어린이가 굶어죽고 있다.

건강을 생각하면 채식은 더욱 절실하다. 이씨가 지금껏 들어온 가장 흔한 질문은 ‘풀만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씨 자신도 대학시절 처음 채식을 결심하면서 가장 불안스러웠던 문제가 그것이었다. 그 때문에 날마다 도서관에 찾아가 영양학 서적들을 뒤지며 공부했다. 20여권의 책들을 달달 외다시피 독파한 후 얻은 결론은 오히려 그를 열렬한 채식예찬자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동물보호를 위한’차원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자면 채식밖에는 길이 없다’는 더 확고한 답을 얻었다.

“ 흔히들 ‘뭐든 골고루 먹어야지 채소만 먹으면 영양 부족에 걸린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골고루 먹어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는 뜻이지 반드시 육류를 먹어야 골고루 먹는 거란 식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채식 안에서도 모든 영양소를 완벽하게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현미 잡곡밥과 콩류, 신선한 야채, 제철 과일, 해조류, 견과류, 그리고 참깨, 들깨, 은행같은 종실류 등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육식을 하는 것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육류는 고 산성식품. 육류를 섭취하게 되면 체질이 산성화되면서 암이나 고혈압, 당뇨와 같은 성인병도 덩달아 찾아온다는 것이 이씨의 지적이다.

육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 중 이런 것도 있다. 골다공증이라고 하면 대개 우유, 멸치 등을 먹어야 칼슘이 보충되는 것으로 다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유, 멸치와 같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면 이것이 혈액내에서 유황, 인산, 요오드 등 산성 성분을 높이게 되면서 오히려 이를 중화하기 위한 자연작용으로 뼈에서 칼슘이 더 빠져 나오는 결과가 빚어진다고 이씨는 말한다.


채식 석달만에 약골서 강골로

또한 육류는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 심장병과 뇌일혈에도 치명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한국인의 질병 중 사망원인 1위가 뇌혈관계 질환, 2위는 심장계통 질환이라는 사실은 갈수록 늘어나는 육류소비량과 무관하지 않다.

원래 약골이었던 이씨도 채식 석달만에 완연한 변화를 체험했었다. 눈에 띄게 머리가 맑아졌고, 이전 같으면 쉽게 피로를 느끼던 몸이 여간해서는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몸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잦아 항상 부모님의 걱정을 달고 살았지만, 채식을 시작한 후 오늘까지 감기 한번 앓은 일이 없다.

몸도 가볍고, 집중력도 높아졌다. 생활 곳곳에서 정신적인 여유와 참고 견디는 힘이 몰라보게 길러진 자신을 보기도 했다. 대학졸업 후 고등학교 공통사회교사로 10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던 이씨는 재작년 교직생활도 접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외국에서는 어엿한 하나의 대세로 호응을 받고 있다지만,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는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평소 식사는 직접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하거나 채식전문음식점을 이용한다. 부득이 일반 식당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주방에 미리 부탁해 고기와 계란 등 육식성 재료를 뺀 음식으로 먹는다.

적쟎이 번거로운 일이다. 언뜻 보면 육류와 무관해 보이는 밑반찬이나 실제로 채식자가 먹을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김치는 기본적으로 젓갈류가 들어가 있고, 나물국이나 된장찌개에도 멸치 국물, 또는 쇠고기가루를 넣은 조미료가 들어가 있다.

개중에 불친절한 종업원이라도 만나면 ‘주면 주는대로 먹지 웬 극성’이냐는 핀잔과 눈총도 면치 못한다. 이런 불편 때문에 직접 원하는 대로 만들어먹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

이씨는 웬만한 요리 대부분을 채식용으로 만들 수 있다. 양파와 무를 갈아 젓갈을 대신한 채식 김치부터 찌개, 볶음 요리 등 무엇이든 가능하다. 김치 하나만 해도 오이 소박이에서부터 배추김치 등 거의 모든 종류를 다 만든다.

식사보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주위 사람들의 인식문제에 있다. 이씨의 가족만해도 초창기에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부친은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며 날마다 꾸지람이었다. 채식이라는 말조차 쓰이지 않던 1980년대에만 해도 일반 식당에서 고기 재료를 빼달라고 부탁을 할 때마다 자꾸만 되묻는 주인앞에서 채식이 뭔지부터 몇번이고 되풀이해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외톨이 아닌 외톨이 신세가 되기 일쑤였다. ‘혼자 별나게 군다’며 빈정대거나 시비를 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비교적 채식문화에 대해 많이 알려진 요즘에도 이들에 대한 ‘별종’ 취급은 여전하다.

채식동호인들 대부분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가 운영을 맡고 있는 채식동호회연합의 한 여성회원은 자신이 채식주의자인줄 알면서도 일부러 고기 재료를 넣어 조리한 음식을 먹인 뒤 식사가 끝난 뒤에야 약을 올리듯 사실을 말하는 직장 동료의 악의적인 장난에 톡톡히 설움을 겪기도 했다.


별종 취급, 직장 잃고 이혼당한 사람도

채식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잃은 50대 남자분도 있다. 업무상 고객 접대가 잦은 영업직 회사원이었는데, 채식을 하게 되면서 접대 자리마다 이런저런 불편이 따르자 회사측에서 ‘직무유기’라며 퇴사를 종용, 결국 사표를 내고 나왔다.

같은 문제로 이혼한 사례도 있다. 연애시절에는 여자의 채식을 부드럽게 받아주던 남자가 결혼 후 자신의 밥상에도 영향이 미치자 불화가 시작돼 끝내 파국을 맞은 젊은 부부다.

미혼인 이씨의 결혼이 늦어지는 것도 채식에 대해 이해해 줄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계가 걸린 직장을 잃을 정도라면 차라리 채식쪽을 양보하는게 더 현명하지 않겠냐구요? 채식은 단순히 식도락이나 음식에 대한 가벼운 취향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신념과 믿음과 연결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일 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가능한 한 다른 종에 피해를 덜 끼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지요. 단지 먹는 것을 바꾸고 안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대한 문제가 걸린 거지요.”

2000년 6월 다음카페에 채식동호회를 개설한지 약 2년만에 현재 가입 회원수가 9,6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매주마다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관련 정보를 교환하거나 요리강습회를 여는 등 의욕과 활기가 남다른 모임이다.

그 중 우유, 계란까지도 먹지않는 순수 채식자들은 이씨를 포함해 약 10%선, 그 외에는 개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회원들의 채식 동기도 각양각색이다. 이씨처럼 가축 도살 현장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들뿐만 아니라 질병치료 등 건강을 위해 채식에 나선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당뇨병이 심했던 한 50대 회원의 경우 채식 2달반만에 완치된 것을 비롯해 고혈압,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 등 채식으로 치료효과를 경험한 이들이 많다.

채식과 함께 술, 담배를 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강제적인 금주,금연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채식 중 체질이 개선되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절로 몸에서 술과 담배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더라는 것이다.


17년 경험 살려 채식전문잡지 창간

육식 옹호자들의 반론이 얼마나 거세든, 채식의 중요성과 효과에 대한 이들의 믿음과 고집은 흔들림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지난 여름 국내 최초의 채식 전문 잡지도 창간했다.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채식’지로, 지금까지 두 권을 내놓았다. 관련 의학 정보들과 채식요리법, 채식음식점 정보, 동호인들의 경험담 등 국내 채식주의자들의 지상 사랑방 역할을 맡고 있다.

평소에는 미술학원 운영과 출판기획, 기고 등의 생업을 가진 이씨는 이 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획과 취재, 편집, 교정 등 모든 일을 1인 다역으로 해결해 내고 있다. 그가 꿈꾸는 ‘채식의 나라’로 나아가는, 고단하지만 가벼운 걸음이다. 17년간 채식으로 기른 끈질긴 지구력이 바야흐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이 채식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지만,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든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사회도 변할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그 날을 앞당기는데 작으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제 꿈이고 희망입니다.”

글ㆍ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2/10/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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