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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경제서평]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김이수 옮김/부키 펴냄)

저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경제학자다. 그의 칼럼이 국내 언론에 실리고 있고,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한 그의 말이나 글은 ‘권위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는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경제학 교수인 것이다.

이 책은 1995년 가을에서 1997년 여름 사이에 쓴 에세이 중에서 28편을 추려 모은 것이다. 절반 정도는 온라인 잡지인 ‘슬레이트’에 발표된 것이고, 나머지는 ‘워싱턴 먼스리’ ‘포린 어페어스’ ‘뉴욕 타임스’ 등에 게재된 것이다.

따라서 시사적인 내용이다. 정치적 관점과 경제 정책,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기업 다운사이징과 정리 해고, 세계화와 금융 투기, 신경제와 정보 기술, 환경 및 교통 문제와 건강 보험 등 실로 거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또 언론에 발표한 에세이 여서 그 분량이 적다.

짧은 글 속에 무겁고 논란이 많은 현안 문제를 다루다 보니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각 에세이마다 상당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읽기가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일관된 주제가 있다.

‘어설픈 이론가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그것이다. 저자가 밝힌 대로, 미국에서 새로 선출된 의회의 다수파인 공화당 원내총무가 역설한 천박한 넌센스를 반박하기 위해, 또 프랑스에서 새로 선출된 사회당 출신 총리의 온정적이지만 어리석은 생각을 반박하기 위해 쓴 글 등이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다.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저자는 넌센스 경제학을 팔고 있는 잡상인들이 벌이는 유인 상술의 수작-호객을 할 때에는 복잡다기한 분석을 보여 주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나 들려주는 수작-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고 말하고 있다.

또 실제로는 진리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그럴듯한 돌팔이가 위대하고 현명한 이들에게까지도 자기가 지혜의 화신인 양 믿게 하는 경우가 흔하며, 얼토당토않은 경제사상이 일반인들에게는 심오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신봉하는 종류의 경제학을 옹호하는 일을 다른 누군가의 몫으로만 맡겨 둘 수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경제학에 관하여 생각한다는 것, 진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싱크탱크나 조사 연구소, 재단 및 기타 등등을 운영하면서 자기네들 입맛에 맞는 흡족한 경제학설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한줌도 안 되는 부유한 괴짜들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저자의 ‘경제학적 사고’는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다소 어긋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세계화에 관한 입장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저자는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고상한 도덕적 논조는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철저히 생각해 보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본가들이 세계화로부터 득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크게 이익을 보고 있는 당사자는 제3 세계 노동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값싼 노동력은 개발도상국들이 제1 세계의 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며, 이를 토대로 전체 경제에 파급효과를 발휘하는 제조업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선진국의 근로기준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기껏해야 특권적인 노동 귀족이나 생기게 할 따름이지 대다수빈곤층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라도 무직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 기업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크게 부각되는 것은 고학력 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대량 해고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들은 대부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간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보잘 것 없는 일자리에 있으면서 그나마 임금 수준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저소득 계층이고, 이들이야말로 신경제의 주된 희생자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현상을 보는 시각이 여럿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저자는 일상 영어로 1,300단어짜리 글을 쓰는 일은 학술잡지에 발표할 5,000단어짜리 방정식이 들어간 논문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려울 뿐 아니라 시간도 더 많이 걸리지만 이 에세이들을 쓰는 일은 즐거웠고, 그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전해져 독자들이 깨달음과 함께 재미도 얻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에세이들이 시효가 지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쉽게 썼다고 했지만, 그러한 깨달음과 재미를 얻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정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입력시간 2002/10/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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