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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도박… 신의주 특구] 특구 초대장관 양빈, 그는 누구인가

자산 9억달러의 어우야 그룹 회장, 중국내 부호2위

올해 4월15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창군기념일 행사장 단상. 해외 내빈석에 낯설은 동양인 한 명이 끼여 있었다. 이 인물은 평양의 호텔 카지노에서도 가끔씩 목격되곤 했다. 그의 자가용 제트 비행기는 평양 순안 공항에서도 간혹 보이긴 했지만 별 주목은 받지 못했다.

양빈(楊斌). 어우야(歐亞) 그룹 회장. 39세.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 지난해 미국 격주간 경제지 포브스에 의해 중국 내 부호 순위 2위로 선정된 인물. 지난해 자산 평가가치 9억 달러.

양빈 회장은 9월24일 북한 신의주 특별행정구 초대 장관에 임명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적어도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음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는 주 사업 무대인 중국 내에서도 그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중국 일부 언론에 ‘기업 다크호스’와 ‘중국 현대농민’ 등으로 간혹 소개되긴 했다. 하지만 중국의 다른 신흥 기업인에 비하면 그는 거의 감춰져 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김정일에 의해 특별행정구 장관으로 낙점됐을까. 그는 어떤 길을 걸어온 인물일까.

양빈은 1963년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열여덟 살까지 안 해본 고생이 없다”고 말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때 고기는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1년에 학비 3위안과 교재비 2위안조차 내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배워야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나름의 진리를 터득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난징 대로변에서 큰 소리로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쌓은 영어 실력은 해외 유학의 밑거름이 됐다.


천안문 사태때 네덜란드로 귀화

그의 노력은 81년 랴오닝(遼寧)성 해군 2포병학원(대학)에 입학하면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85년 졸업 때 뛰어난 성적을 인정 받아 조교수가 됐다. 전공했던 군사 전략학은 사업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

86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유학기회를 획득하면서 그의 인생은 전기를 맞았다. 그의 유학생활은 궁핍했다. 식당 아르바이트와 짐꾼 등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라이덴 대학 시절 은사였던 미국 하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 토니 사이크는 그를 “약삭빠른 수완가”로 평가했다.

그는 89년 중국에서 발생한 6ㆍ4 천안문 사건을 민첩하게 이용했다. 서방의 반 중국 분위기를 이용, 정치적 보호를 신청해 네덜란드 국적을 얻었다. 귀화 후에는 ‘해외 중국 민주화 운동가’를 자처하며 현지에서 교우관계를 넓혔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민주화 인사는 아니었다. 중국 민주화를 위한 해외 ‘민주연맹진지’ 네덜란드 지부 회장을 잠시 맡긴 했지만, 곧 관계를 멀리하고 사업에 전념했다. 화훼 회사에서 1년간 실습하면서 눈뜬 네덜란드의 ‘농업 기적’은 장차 농업 기업인으로서 그의 기초를 형성했다.

90년대 초 소련 해체와 동유럽의 격변을 보면서 그는 이 지역을 거대 시장으로 주목했다. 그는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 화교를 대상으로 중국산 방직품과 소상품을 판매한 중계 무역상 중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중국 언론은 그의 사업방식을 ‘반 박자 빠른 스타일’로 평가했다.

그는 90년 폴란드에 사상 처음으로 사영기업을 설립했다고 주장했다. 중계무역 2년 만에 끌어 모은 2,000만 달러는 사업의 종잣돈이 됐다. 93년 온실회사와 냉장회사 등 네덜란드 기업 2개를 매입하면서 그의 오우야 그룹은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가족은 부인과 두 자녀. 네덜란드 화교인 부인과 자녀들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4년 그는 모국에서 선진농업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중국에 입성했다. 발을 들여놓자 말자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등 14개 대도시에서 차례로 대규모 화훼 전시회를 열어 중국을 놀라게 했다. 전통적인 농업 대국인 중국을 어떻게 네덜란드와 같은 선진 농업국가로 변신시킬 것인가가 그의 화두였다.

중국에서 초기 그의 주력 업종은 화훼재배와 판매, 식품가공업 이었다. 특히 식품가공업은 축산업을 비롯한 주변 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중국 농촌을 부흥시킬 수 있는 묘약으로 여겼다. 그는 가공식품의 소비시장으로 일본에 눈독을 들인다.

중국 내 사업은 선양(瀋陽), 다롄(大連), 청뚜(成都), 창춘(長春) 등지의 대규모 온실과 냉동회사와 베이징에 설립한 전국 최대의 화훼시장이다. 지난해 온실과 냉동회사의 연매출은 7억 위안이었다. 이와 함께 전국 각지에 설립한 농업기지에서는 지난해 연매출 10억 위안을 기록했다.

그가 최근까지 전력을 기울였던 사업은 랴오닝성에 건설중인 대규모 복합 농업 기지인 허란춘(荷蘭村ㆍ네덜란드 마을)이다. 그는 허란촌은 “단순한 농업기지가 아닌 미래의 테마공원”이라고 규정했다. 98년부터 30만m²에 18억 위앤을 투자한 허란춘은 계획대로라면 올 연말 완공된다. 그는 디즈니 랜드와 해양공원 등을 참고해 건설중인 허란춘을 장차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다.

사업자금 조달은 증시를 통했다. 98년 중국 기업들을 합병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중국 증시에 발을 들여 놓았다. 지난해에는 그룹 지주회사인 어우야 농예를 홍콩 증시에 상장해 간단하게 6억 홍콩달러를 끌어 모았다. 그는 현재 어우야 농예 주식의 7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폭 넓은 인간관계가 성공의 비결

그가 중국 상륙 10년이 채 안돼 거부의 반열에 들게 된 비결은 뛰어난 인간관계 능력이 큰 힘이 됐다. 특히 그는 비공식적 인간관계, 즉 꾸안시(關係)가 사업 성패와 직결되는 중국의 토양을 십분 활용했다.

그는 당 중앙과 지방정부 고위 관리 등 다양한 거물들과 관계를 형성했다. 리란칭(李嵐淸) 당 중앙 정치국 정 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가 중앙 정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지방에서는 랴오닝성의 원쓰쩐(聞世震) 당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성장 등이다. 이중 보시라이 성장은 차세대의 유력자로 꼽힌다.

관계 형성은 지방 지도자들을 통해 중앙 실력자들과 선을 대는 점차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경제발전을 위해 외자 유치에 혈안이 된 지방 지도자들에게 화교 기업가인 그는 ‘귀하신 몸’이었다.

꾸안시를 이용한 사업은 중국 ‘붉은 자본가’들이 애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돈과 권력의 교환(金權交換)’이나 중국판 정경유착인 ‘권력경제(權力經濟)’를 통해 저가 토지불하, 초저리 은행융자를 얻어냈다. 사영기업 상장이 매우 어려운 중국 증시에서 어우야 농예가 상장될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꾸안시 덕분이었다.

꾸안시에 덧붙여 국내 기업보다 외자기업을 우대하는 중국의 정책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의 초고속 성장은 부패와 특혜를 배경으로 했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부패가 중국의 중요한 사업 수단으로 통하는 현실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그는 해외 정치인과도 교제 폭이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의 봅 호크 전 총리가 대표적인 지인이다. 호크 전 총리는 허란춘을 초청 방문한 뒤 “허란춘은 전세계 최대의 식물 세포분열 기지”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비공식 관계와 특혜에 바탕한 그의 경영 방식이 순탄할 수 만은 없었다. 탈세혐의로 올해 7월부터 중국 정부의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관영 인민일보에는 한 때 잠적했다는 보도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만에 홍콩에 나타나 “탈법 사실이 없다”며 투자자 진무에 나섰다.

홍콩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올해 7월부터 어우야 농예의 주가가 70% 이상 폭락했다. 9월14일부터 25일까지는 홍콩 증권감독원이 어우야 농예의 주식거래를 중지시켰다. 당국은 어우야 측이 경영진을 교체하면서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홍콩 언론은 지난해부터 양빈과 그의 사업이 과대 포장됐을 뿐 아니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간헐적으로 내렸다.

양빈은 군사전략을 전공한 사람답게 전략적 안목과 최선의 선택, 민첩한 행동을 경영의 3요소로 주장한다. 아울러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되, 행동하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업 운영을 용을 그리는 일에 비유한다. 직원은 용의 몸통을 그리고, 총수는 최종적으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해야 한다는 것. 그는 보통 직원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는 것이 신조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 기업들이 잘 망하는 이유가 총수의 태만에 있다며 근면을 총수의 필수 덕목으로 꼽는다. 그는 “중국 기업 총수들은 사업을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놀러 다니는 버릇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평양의 카지노에서 자주 목격된 점을 감안하면 말과 행동이 안 맞는 점도 있다.

그는 기업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그 운영은 개념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 기업인으로서 그의 개념은 오락산업을 농업에 접목시키는 것. 그는 인재 영입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실패 경험을 통해 전문가에 의지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재무, 금융, 식물조직배양 등 다양한 분야에 해외 유학파나 검증된 전문가 집단을 포진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계속적인 전문가 유치를 위해 허란춘에 최고급 별장들을 짓는 중이다. 그는 별장을 전문가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산권까지 넘기겠다고 선언했다. 첨단기술과 자본운영을 결합시킨다는 그의 경영노선은 인재가 없으면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와 오우야 그룹은 지난해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중국 내 2대 부호와 전세계 200대 최우량 중소기업에 선정됐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이 같은 평가가 “실력과 성장의 상징일 뿐이지 아직 진정한 부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앞으로 10년이 진정한 부상의 기간이며, 목표는 60세 이전에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목표를 정한 이유는 극도의 노력을 끌어내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구”라고 강조했다.


2년 전부터 김정일 위원장과 교분

그의 추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땅’인 북한을 향했다. 그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이어준 매개체는 꽃이었다. 그는 2년 여 전부터 김일성 주석 묘역에 화훼를 공급하면서 김 위원장과 교분을 텄다. 북한측과 무역 합작사를 차리고 신의주에 카지노장을 열면서 관계는 더욱 진전됐다.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양빈의 구상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그는 김 위원장의 구상이며, 자신은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별행정구를 놓고 그와 김 위원장은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가가 있다.

북한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유럽자본에 매력을 가진 김 위원장이 네덜란드 화교인 그를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어우야 농예의 주가 폭락과 중국에서의 세무조사 등으로 곤경에 처한 양빈 역시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을 수 있다.

신의주 특별행정구가 북한의 획기적인 개방 실험이 될지, 아니면 북한의 ‘깜짝쇼’와 화교 자본가의 거대한 사기극이란 최악의 궁합으로 결론 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배연해 기자 seapower@hk.co.kr

입력시간 2002/10/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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