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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민주주의와 징집

[어제와 오늘] 민주주의와 징집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국군의 날인 10월 1일 오전 서울대, 이화여대, 중앙대 여대생 7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주장하며 국방부 청사 정문 ‘국방부’ 간판에 흰 페인트를 퍼붓는 장면을 보고서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대생들의 ‘병역 거부권 쟁취’시위와 관련, 국무회의에서 조용히 말했다. “병역 의무의 기피는 우리 현실에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 될 수 없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양심적 병역 기피는 군이 대치하는 분단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지금도 70만명의 젊은이가 군에서 생명을 걸고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위학생들에 대해 처벌만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교육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학생들을 잘 설득하라”고 당부했다.

두 장관은 어떻게 학생들을 설득할까 궁금하다. 그보다 먼저 ‘어제와 오늘’(9월 26~10월 3일자)에 난 ‘사랑받는 대통령제’에 나온 로버트 히그스 교수 (‘인디펜던트 인스티튜트’의 수석 연구원, 정치경제학자, 역사학자. ‘위기와 초거대국가-미국 정부의 성장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의 저자)의 징집에 관한 색다른 주장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앨러배마 어번 대학에 있는 미제스 연구소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와 관세장벽 없는 자유무역, 자유시장제도를 옹호하는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셉 미제스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1861년의 남북전쟁을 남부연합이 독립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며 미국은 현재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 있는 중앙집권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비판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다.

이 연구소는 1994년 5월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전쟁의 비용’이란 포럼을 열었다. 20명의 학자가 참여한 이 포럼은 미국이 독립전쟁(1776), 남북전쟁, 미국ㆍ스페인 전쟁(1898년), 제1,2차 세계대전, 그 후 한국 및 베트남 전쟁, 냉전 등을 치르면서 큰 희생 속에 무엇을 얻어 냈느냐가 주제였다. 그 결론은 “무용 무위였다.

국가 부채의 증가, 자유의 억제, 정부의 강화, 대통령제의 제왕화, 고전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주장에 도달했다.

이 내용을 미제스 연구소의 부회장인 존 덴손 어번대 교수가 1997년 ‘전쟁의 비용-무용의 미국 승리’라는 책으로 편찬해 냈다. 히그스 교수도 이 책에 “전쟁이 20세기에 미국을 초거대 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한 초석은 징집제도”라는 논문을 실었다. 논문은 1987년에 출판한 ‘위기와 초거대국가’를 보완, 발전시킨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게 나왔다.

”미국을 오늘의 중앙집권화된 제왕적 대통령제로 만든 초석은 징집제도이다. 징집제도가 없었다면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 군을 파견 할 수 없었다. 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거둬들여야 했고 국가가 빚을 져야 했고 시장을 통제해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고 대통령은 제왕이 되어야 했다. 대통령제는 경제를 지휘하고 조정하는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의 국세(國勢)와 참전 때(1918~19년)를 비교해 정부의 거대화를 추적했다. 1914년에 군은 16만6,000명(전체 노동인구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참전했을 때는 연 참전 인원이 400만명 (노동인구의 10%)이었고 이중 72%인 280만명이 징집병이었다.

조선, 철도, 통신이 국유화되고, 자유기금 채권 발행, 돈을 찍어내는 연방준비위원회 발족, 5,000여개의 각종 동원 위원회가 생겼다. 간첩법이 병역거부 등에 적용되고 벌금 1만 달러나 징역 20년이 선고되기도 했고 언론에 전쟁방해죄가 적용되기도 했다.

1941년 12월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징집이 늘수록 정부의 권력이 커진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1939년 45만8,000명이었던 군에게 1941년 가을에 1,000만명을 소집할 수 있는 징병권이 주어졌다. 전쟁중에 그 중 63%가 징집되어 참전했다.

그 동안 소득세는 부과률이 23~94% 늘어 여지껏 15만명(1940)에 그쳤던 부과 대상자가 50만명(1945년)으로 늘었다. 또 연방준비위 보유 달러는 200억 달러로 1940~1948년에 보유고가 83% 늘었고 구매력 가치하락은 50%였다. 이런 국가권력의 강화는 전쟁을 수행하는 주요 요인인 징집권이 정부에 주어졌고 이 권한이 또 경제를 지휘하고 조정하는 제도로 국민의 동의없이도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방부 청사 앞 페인트 ‘시위’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통일운동에서 한반도 평화운동으로 전환한 김대중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들은 민주주의의 원래의 뜻인 자유와 시장경제를 향해 징집문제가 던지는 반 민주성에 대해 언제든지 설득할 신념과 소신, 정견이 있어야 한다. 교육ㆍ 국방부 장관도 군이 평화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는 징집이 차지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10/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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