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아줌마의 실리골프

만개한 연분홍 코스모스, 뜨끈한 오뎅 국수, 화려한 원색이 아닌 은은한 베이지 셔츠에 카키색 모자,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 완연한 가을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 땅에서 가을은 제2의 골프 계절이다. 파릇한 봄은 겨울 내 녹슨 실력을 갈기 바쁘고, 찌는 듯한 여름은 햇살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가을은 한 해 동안 익혀온 골프 스윙에 대한 자신감이 절정에 오르는 계절이다. 조금만 지나면 한겨울이 찾아온다는 아쉬움도 가을 골프에 대한 애정을 증폭시키는 양념이다.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요즘 필드에는 남자들이 모습이 상대적으로 적은 느낌이다. 오히려 맹렬 여성들이 더 열심히 볼을 두드리는 것 같다. 여성 골프 인구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겠지만 요즘 인도어 연습장을 봐도 새벽부터 연습에 몰두하는 여성 골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선지 요즘 아줌마 골퍼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눈에 띄게 향샹된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사일과 집안 경ㆍ조사를 챙기는 시간을 쪼개 연습하고 라운딩하며 타수를 줄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요즘 아줌마 골퍼 중에는 80대 후반은 꾸준히 치고 다니는 실력자들이 많다.

아줌마 골퍼들 중에는 “남편처럼 주말마다 라운딩 나가면 70대는 치겠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필드에 못 나가는 아줌마 골퍼들이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80대를 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일부 아줌마 골퍼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160m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스코어를 유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줌마 골퍼들은 직접 돈내기를 하지 않고 주로 ‘끝나고 밥사기’ 정도의 내기를 한다. 비록 액수가 큰 내기는 아니지만 아줌마 골퍼들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것도 남자처럼 호쾌한 드라이버에 승부를 거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장점을 살리는 실리적 방법으로 점수를 줄인다.

아줌마 골퍼들은 예외 없이 그린 주변에서 승부를 건다. 어차피 힘이 달려 드라이브 거리가 짧은 상황에서 그린 주변 쇼트 게임으로 점수를 줄이겠다는 다분히 현실적인 전략이다.

80대 중반을 치는 아줌마 골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린 주변에서 웬만한 프로에 맞먹는 쇼트 게임 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남성 아마추어 골퍼들은 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 샷을 할 때 무조건 띄우려고만 한다. 단거리에서 볼을 띄워 핀에 붙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이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클럽도 샌드 같은 단 한가지만 쓴다.

그러나 싱글 아줌마 골퍼들은 그린 주변에서 여러 클럽을 가지고 피치샷, 칩샷, 러닝 어프로치 등 주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한다. 먼 승부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승부를 낸다. 그러다 보니 비록 티샷 거리는 짧지만 점수는 남성들보다 더 좋은 것이다. 연습장에서 보면 30m 거리를 샌드로 피치샷을 했다가 9번 아이언으로 러닝 어프로치를 하는 아줌마 골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점수를 줄이려면 한국의 야무진 아줌마 골퍼처럼 무엇보다 쇼트 게임에 치중해야 한다. 쇼트 게임의 종류는 무수히 많지만 다음과 같은 기본 사항만 머리에 두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기본 피치샷=보낸 거리와 떨어져서 굴러가는 거리가 비슷하다.

2.피치&런 =떨어진 거리보다 한 배 정도 더 굴러간다.

3.러닝 어프로치샷 =7, 8번 아이언으로 로프트의 각도를 이용해 손쉽게 굴리는 샷이다.

이런 기본을 염두에 두고 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면 4, 5타는 줄일 수 있다. 쇼트 게임은 할수록 손 감각이 늘어나 굳이 연습량을 늘리지 않아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앞으로 골프는 어렵게 치지 말자. 대한민국 아줌마골퍼 화이팅!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10/09 17:0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