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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무현 부인 권양숙씨

"남편의 그림자이자 동지예요"

10월 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 보라매공원 옆 시립 남부노인종합사회복지관에 미니버스 한대가 멈춰섰다.

제6회 노인의 날을 맞아 노심(老心)에 호소하러 온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권양숙(55)씨. 그리고 이해찬 정동채 임종석 의원 등 노 후보 일행이 우르르 차에서 내렸다.

복지관장의 안내에 따라 노 후보와 쥐색 바지정장 차림의 권씨가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악마’ 상의를 입은 노인 회원 50여명이 체조를 하다 이들을 맞이했다. 일행과 함께 단상에 오른 노 후보 부부는 관장의 소개에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여 인사했다. 동행 취재를 나온 보도진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노 후보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노무현입니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씨의 모습은 단상에서 사라졌다. 어느 틈엔가 단상 옆으로 슬며시 내려와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왜 내려오세요”라고 묻자 “후보님이 말씀하시는데 제가 피해 있어야죠”라고 답했다.

기자가 본 권씨의 첫 인상에는 이렇듯 (신세대 여성들이 싫어하는 표현이겠지만) ‘순종형’ 이미지가 배어 있었다.

선 채로 노 후보의 연설을 듣던 노인 회원들은 연설이 10분을 넘기자 조금 힘든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이구…저 저” 두 손을 앞에 모은 상태로 노 후보를 쳐다보던 권씨의 입에서 걱정스런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권씨의 걱정 때문일까? 노 후보의 연설은 거기서 끝났다. 권씨는 노인들과 함께 체조를 하는 자리에서도 남편의 ‘강압적 요청’이 떨어진 뒤에야 마지못해 옆에 섰다.


평범하게 살 사람 아니란 믿음 있었다

서예실 컴퓨터실 실내게이트장 등으로 이동하는데 일행의 선두에는 안내를 맡은 복지관장이 서고 노 후보가 뒤따르며 회원들과 악수하거나 담소를 하며 지나갔다. 이동 중에도 권씨는 노 후보와는 멀찌감치 떨어진, 일행 4~5명의 뒤에 처져 고개를 조금 숙인 채로 따라가다가 남편이 신경을 쓰지 못한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혹자는 이를 모습을 보고 “어느 부인이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온 남편을 존중하지 않고 받들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고, “전략적으로 그랬겠지”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을 섬기는’ 듯한 이런 권씨의 모습에는 주종의 개념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연스런 부부애가 느껴진다. 노 후보의 ‘마지막 동지’로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의 한 동네에서 노 후보와 함께 자란 권씨는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25세 때 고시준비 중인 노 후보를 만나 1년여 연애 끝에 1973년 결혼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양가 모두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노 후보 집에서는 권씨의 아버지가 좌익활동을 하다 옥사한 경력이 그의 앞날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에서 였고, 권씨 측에서는 “고시에 합격 못할 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권씨의 어린 시절은 불우한 편이었다. 실명한 아버지가 부역 혐의로 구속된 뒤 할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대창초등학교와 부산 혜화여중을 거쳐 부산 계성여상에 진학했지만 3학년 때 중퇴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내지 못해 졸업을 앞두고 학교 문을 스스로 나서야 했으며, 노 후보와의 결혼 전까지 경리 등의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

권씨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길도 있고, 웬지 이 사람은 그냥 평범하게 살 사람은 아닐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고 당시 심정을 소개했다.

권씨는 노 후보와 함께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국회의원 당선이나 대선후보자 선출 때보다도 젊은 시절 어렵게 농사 일을 도우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 고시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라고 밝혔다. 노 후보 부부 사이에는 아들 건호(29)씨와 딸 정연(27)씨 등 1남1녀가 있다.

권씨의 가족으로는 노모(82)를 모시고 있는 사별한 언니 창좌(57)씨와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 사는 여동생 진애(52)씨, 부산 모 은행 지점장으로 재직 중인 남동생 기문(48)씨가 있다. 권씨와의 인터뷰는 노인복지관 행사가 끝난 뒤 민주당사의 후보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남편은 이 시대 이끌 적임자


- 아까 노인복지관에서 노 후보의 연설이 조금 길어지자 걱정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던데.

“원래 후보님이 (권씨는 인터뷰 내내 노 후보를 ‘후보님’으로 부르며 극존칭을 썼다) 말씀이 좀 많은 편이세요. 어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리 아프다고 뭐라고 하시진 않았는지…”


- 노 후보 대선 출마를 놓고 당초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반대라기 보다는 걱정을 많이 했지요. 솔직히 (경선에서) 1등을 하리란 생각은 안 했거든요. 잘하면 2등쯤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저도 가족 전체의 의견을 따르게 된 겁니다”


- 노 후보를 집에서는 어떻게 내조하고 있는지.

“보통 밤 9~10시에 귀가해 취침 전까지 줄곧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홈페이지를 체크하고 직접 쓰실 것은 쓰고 그래요. 그럼 저는 졸졸 뒤따라다니며 도울 것이 없나 옆에 지키고 서 있죠” (이 대목에서 “아이구 ‘졸졸’ 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라며 양손으로 얼른 입을 가리는 행동을 했다)


- 노 후보에 대해 불 같은 성격이라는 평가도 있다. 가정에서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급한 성격이 있긴 하지요. 하지만 집에서는 거의 이를 나타내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 야단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대부분 아이들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긴 한데, 딱 한번 딸애가 대학교 학과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가정을 제대로 꾸려 나가려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역사학과를 선택토록 권유한 적은 있지요”


- 노 후보에 대한 장단점을 말한다면.

“지나친 솔직함이 장점이자 단점이지요. 너무 솔직해서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도 하는 반면 정치적으로 곤욕을 치르는 일도 종종 생겨요”


- (권씨가) 처음에는 언론 접촉 등을 꺼리다 최근 들어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들 하는데.

“다른 후보 가족들도 그러겠지만 이 시대를 이끄는 가장 적합한 (대통령)후보자로 저도 후보님을 꼽습니다. 그런데 후보가 되신 뒤 여러 이유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계신 게 곁에서 보기에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주세요”


- 부부와 가족간 대화시간이 적을 텐데.

“(노 후보가)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서 YTN 뉴스를 보면서 맨손체조로 일과를 시작하세요. 조찬 약속이 없으면 7시쯤 식사를 하고 나가시고, 아이들이 8시에 나가면 저는 집안 정리를 한 뒤 9시쯤 나갑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식사는 항상 가족이 함께 하는 것으로 돼 있지요. 그리고 일요일 오전에는 주로 집에서 쉬면서 이발도 하시고 그러지요”


- 노 후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모든 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세요. 다만 술자리가 많아 술 드신 다음날이면 늘 황태국을 끓여 드리지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황태가 떨어지는 날이 없답니다”


- 생활비는 어떻게 받는지.

“변호사 개업이후 여태까지 사무실에서 매월 부쳐오고 있어요. 그런데 금액이 적어 젊었을 때는 생활비 인상을 놓고 투쟁도 많이 했지요 (웃음)”


젊었을땐 부부싸움하고 보따리 싼적도


- 노 후보가 ‘젊었을 때 부부싸움을 남들 하는 만큼은 했다’면서 ‘선풍기 목이 날아가는 활극도 있었다’고 하던데.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민망한 듯 망설이다가) 남남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의견을 맞춰가면서 살던 과정에서 사소한 이유로 싸우기도 했었죠” (여기서 기자가 “혹시 보따리를 싸고 친정에 간 적도 있습니까”라고 묻자 “극비인데요. 딱 한번 있었어요”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 시장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선배 정치인 부인들이 가르쳐주더군요. 남편이 공인이 되면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쳐다보고 있을 수 있으니 몸가짐을 각별히 조심하라고요.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 출마이후 남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조심하는 게 생활화됐지요”


- 노 후보가 솔직히 미남은 아닌데, 남다른 매력이 있는지.

(질문이 끝나자마자 “네!” 하더니 “어머 너무 말이 빨리 나왔나요”라고 했다)


- 취미생활을 즐기는 게 있는지.

“저는 뉴스를 빼놓지 않고 봐요. 집에서 아이들이 뉴스중독자라고 할 정도지요. 다른 사람들이 인어공주가 재미있다고들 하던데 별로 보지를 못했어요” (MBC 일일 인기드라마인 인어아가씨를 인어공주로 잘못 말할 정도니 드라마나 다른 오락 프로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 끝으로 역대 퍼스트 레이디에 대해 말한다면.

“육영수 여사에 대해 말씀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지나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의 이희호 여사님도 한국여성으로는 선각자 같은 분이라 존경하고 있지요”

인터뷰가 끝나고 권씨는 “다른 후보 부인들이 너무 예쁘셔서 같이 나오면 비교될 텐데…”라며 “특히 정몽준 의원 부인을 지난번 어떤 자리에서 뵈었는데 너무 젊고 곱더라”며 질투 반 걱정 반 섞인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2/10/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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