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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화향기를 느껴보자

가을의 문화향기를 느껴보자

축제의 계절,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눈과 귀가 '풍성'

하루가 다르게 하늘은 높푸르러 간다. 월드컵이란 커다란 관문을 우리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히 통과해 낸 올 가을, 한반도에는 수확의 기쁨이 넘친다.

10월 2일 낮 12시 20분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광장. 조승미 발레단(대표 김계숙)의 야외공연이 임시 무대에서 30여분간 펼쳐졌다. 인근 직장에서 점심 식사를 막 마치고 온 넥타이 부대 900여명이 여성 6명, 남성 3명의 무용수가 이뤄내는 아름다움에 식곤증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내려 쬐는 초가을 햇살 아래 남녀 무용수가 ‘칼멘’과 재즈 넘버 ‘싱, 싱, 싱’에 맞춰 날렵한 율동을 펼쳐 보였다. 입단 6년차 단원 신현경(35)이 틈틈이 펼치는 해설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980년 선교발레단으로 출범한 이 발레단은 1986년부터 산간 오지의 교회 공연이나 교도소 공연 등 발레 구경을 꿈꿔 보지도 못했을 곳에서 무료로 공연해 오고 있다.

특별한 무대 의상이나 조명도 없이 펼치는 이들의 야외 공연을 두고 여타 발레단들은 “발레 특유의 환상성을 함부로 훼손하는 짓”이라며 부정적 시선을 보이고 있으나, 시민들은 뜻밖의 무대 선물이 즐겁기만 했다.

현재 100여회째 야외 공연을 펼쳐오고 있는 이 발레단은 “어디든 불러만 준다면 눈이나 비를 맞고도 노 개런티로 달려 가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이날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이 15년째 벌여오고 있는 점심시간 무료 공연 ‘분수대 뜨락 축제’중의 하나다. 공연이 끝나자 분수대의 물이 다시 뿜어져 나왔고 구경꾼들은 삼삼오오 무대 위로 올라와 끼리끼리 기념 촬영에 여념 없었다. 진정한 ‘열린 무대’가 연출된 것이다.

10월에는 또 추억의 로커 장계현(10일), 서울시 무용단(16일), 살사 동호회 공연(22일)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02)399-1626~8.


도심에서의 아주 특별한 무대

명동성당에도 문화의 향이 그득하다. 지난 5월 480석의 전문 음악홀로 리모델링해 개관한 명동성당의 꼬스트홀은 올 가을부터 시와 음악이 함께 하는 콘서트를 연다.

‘가을의 시(時), 가을의 음악’.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시인과 대중 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펼치고 있는 ‘문학 카페 명동’과 비슷한 성격의 주말 문화 행사다.

10월 12일 오후 3시, 7시에 펼쳐지는 자리로 출발을 알린다. 이수익, 문정희, 정호승, 김지현 등 중견 시인들이 자기 시를 낭송하면 국내의 1급 클래식 연주자들이 우아한 실내악으로 화답한다.

첫 행사에 참가하는 주자들은 김영갑(클라리넷), 홍성은(첼로), 김준차(피아노) 등 3명의 교수급으로 짜여졌다. 27일 오후 5시에는 두 번째 행사가 치러진다. 신경림, 신달자, 나희덕, 오세영 등 4명의 시인에, 이예찬(바이올린), 강혜정(쳄발로), 배종선(플루트) 등 3명의 교수급 주자들이 펼치는 선율이 따른다.

행사를 기획하고 무대에서 진행을 맡을 음악 평론가 탁계석씨는 “가을밤 정취 속에서 성당의 분위기와 고급 클래식이 어울려 명동 본래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회원권 10,000원(02)583-6295.`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 모르나(Morna)가 이 가을, 한국에 첫 상륙한다. 대서양의 짙푸른 파도를 타고 가는 무역선에 실려 가던 노예의 슬픔에서 탄생한 노래 양식이다.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fado)와 아프리카 리듬이 결합된 이 음악이 태어난 곳은 서아프리카 포르투갈 식민지의 작은 섬 케이프 베르데이다.

바로 이번에 내한할 모르나의 명인 세자리아 에보라의 고향이다. 올해 만 61세로 접어 든 그녀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서양인들에겐 친숙한 이름이다. 1995년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해 발매된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덕택이다. 나아가 당시 가졌던 북미 순회 공연은 마돈나와 재즈 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 등 미국의 인기인들까지 관람해 성가를 떨쳤던 장본인이다.

약소국 출신으로 겪어야 했던 거친 세월들로 단련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열창하는 ‘베사메 무초’는 세계 주류 문화에 대한 일대 반격이었다. 얄팍한 팝에 길들여져 있던 만국인의 감성을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었다.

1992년 발표된 네 번째 앨범 ‘Miss Perfumado’를 접한 언론은 그녀에게 ‘제 2의 빌리 할러데이’라는 애칭을 서슴 없이 달아 주었을 정도다. 10월 23일 오후 7시 30분 세종대학교 대양홀 1588-1555.


대학로 달굴 12일간의 음악축제

이 가을 대학로에는 13색 음악 무지개가 뜬다. 한국과 유럽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펼치는 12일간의 음악 축제 ‘뮤직스케이프 2002‘가 그것. 유럽 재즈에서 한국의 전통 실내악, 국악 록, 블루스 록, 뉴 에이지, 퓨전 재즈 등 평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갖가지 형식의 음악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마당이다.

중견 퓨전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의 연주로 펼쳐지는 이 무대는 퓨전 재즈 그룹 ‘웨이브’,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김준성, 젊은 국악 그룹 푸리 등 한국의 진보적 음악인들이 기량을 겨룬다. 또 메탈 그룹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구악적 록의 세계를, 한상원은 원숙해져 가는 블루스 기타의 세계를 선보인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국내 재즈 베이시스트 전성식은 조인트 음반에서 선보였던 화음을 실연해 보인다.

이밖에 덴마크와 핀란드의 일류급 재즈 밴드 ‘sp-just-frost’와 ‘Jukka Pedro’는 재즈풍으로 변주한 에콰도르의 민속음악 등으로 새로운 즉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10월 11~22일 폴리미디어 시어터(02)2166-2700.


한일 젊은예술가들이 꾸미는 전위예술

이번에는 젊은 예술인들의 참신한 가을맞이 무대다.

남산의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는 차세대 한일 공연예술계에 새 바람을 몰고 올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10월 8~27일 전위 무대예술제 ‘Media±Physical’을 펼친다. 뉴욕 실험 예술의 본거지로 불리는 예술센터 BAM(Brooklyn Academy of Music)이 20년째 펼치고 있는 전위 예술제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이 행사는 올해가 첫 해이다. 원년의 무대에는 한국 3팀, 일본 2팀 등이 실험의 기치를 높이 든다.

극단 풍경의 ‘하녀들’(박정희 연출),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현대 마임 ‘두 문 사이’(임도완 연출), 댄스 컴퍼니 조박의 ‘꼬리를 문 물고기’(박호빈 작ㆍ안무) 등이 국내 참가작이다. 여기에 맞설 일본측 작품으로는 극단 아구아갈라의 신체 언어 무대 ‘극한의 박물관’과 극단 살 바닐라의 ‘상호 작용’ 등 두 파격의 무대가 마련된다.

혁명적 형식의 예술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진지한 답변의 장으로 기록될 이 축제는 본 행사 외에도 다채로운 개막 공연을 마련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유비호, 현대 무용가 김은정 등 한국측 전위예술가들을 비롯, 현대무용가 마코토 마츠시마 등 일본측 예술가들이 펼치는 무대 역시 호기심을 자아 낸다. 매일 저녁 7시 30분(02)325-8150


프랑스 현대무용 ‘901, 902’

프랑스의 현대무용단 ‘라스칼루-남’은 한국 관객을 위한 특별 작품 ‘901, 902’를 들고 온다. 제목은 1995년부터 두 나라를 잇는 대한항공(KAL) 소속 비행기의 고유 번호이다. 무대는 한국과 프랑스라는 이질적 문화가 만나 충돌하고 거부하다 하나 되기까지 다양한 심리적 양태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무용단은 태생부터 다국적이다. 프랑스의 현대무용가 라스칼루와 프랑스에 유학해 무용 수업을 하고 있던 한국의 여성 무용가 남영호가 함께 만든 한불 현대 무용 그룹이다.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으로 세계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폭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소리 없이 이야기해 줄 무대다. 10월 10~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764-8760.

올 가을 축제는 4335번째 맞는 10월 3일 개천절이 도화선이었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하루 열린 ‘개천절 경축-2002 세계 지구인 축제’와 3~6일 서울 강구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의 ‘세계 통과의례 페스티벌’이 10월의 하늘을 먼저 맞았다. 문화의 향기가 살아 오는 10월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10/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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