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의 밤' 지배하는 김두한

SBS '야인시대' 신드롬 일으키며 시청률 50% 육박

시청률을 근거로 한다면 2,750만명 정도가 월, 화요일 밤에 SBS에 채널을 고정시킨다. ‘야인시대’를 보기 위해서다. ‘야인시대’의 시청률이 50%(10월1일 방송분 48.3%)에 육박하니 인구 2명 중 1명 꼴로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셈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의 반응이 직격탄으로 날아드는 방송사 인터넷 사이트에는 ‘야인 시대’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방송 직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야인 시대’ 의 카페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올리는 시청 소감들, 출연진에 대한 원초적인 평가들이 사이트에서 소용돌이를 친다.

온라인을 벗어난 오프라인 세상의 열 감지기에 포착된 ‘야인 시대’의 열기 역시 온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또 하나의 우상으로 ‘야인 시대’에서 그리는 김두한이 부상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다가오는 김두한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부터 드라마 ‘동양극장’(2000년 방송)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김두한은 중심적 소재로, 또는 주변부적 소재로 활용돼 왔다. 그의 모습도 무식한 건달에서부터 독립과 애국이라는 기저에 의리의 개념을 버무린 협객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의 폭은 광대하다.

2002년 ‘야인 시대’의 김두한은 어떤 모습이며 수많은 사람이 왜 이처럼 환호하는 것일까. 드라마 제작진의 두 축인 연출자와 작가의 말은 김두한의 초상이 어떻게 그려질 지의 단초를 제공한다.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에 대한 무조건적인 자긍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유전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국의 염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다. 드라마에선 그의 무모한 소영웅주의와 돈키호테적인 면도 간과하지 않으려 한다.”(연출자 장형일PD)

“ 이 드라마에선 왜 시대는 김두한이라는 인물을 낳았으며 그는 왜 시대로부터 버림받았는가라는 역사의 이면을 배경으로 깔면서 김두한을 통해 사나이의 멋, 의리, 진실, 힘, 정의 같은 것들을 보여주고도 싶다.”(작가 이환경)

두 사람의 말은 앞으로 ‘야인 시대’에서 그려질 김두한의 모습을 쉽게 짐작케 한다. 100부작 중 유년기를 지난 청년기에 접어든 현재까지 방송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의도에 충실하게 김두한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김두한의 일생에서 가장 극적이라는 사카린 밀수 사건을 계기로 일으킨 ‘국회 오물투척 사건’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해 1부는 1920~1945년대까지의 김두한의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2부는 해방이후부터 1972년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기까지의 삶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시청률 50%대에 육박하며 김두한 신드롬마저 일으킬 조짐을 보이는 인기의 일등공신은 평소 드라마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성인 남성의 전폭적인 지지다. 물론 대중문화의 강력한 소화력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도 시청대열에 합류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야인시대’에 대한 청소년과 성인 남성들의 환호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성인 남자들에게 ‘야인 시대’의 인기 요인은 상투적인 분석이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이기도 한 남성 드라마라는 점이다.

1992년 MBC ‘질투’를 시작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트렌디 드라마는 10년 동안 브라운관을 지배하며 콩쥐와 팥쥐식의 현대판 두 여성의 선악 대결, 신데렐라식 성공을 꿈꾸는 여성 이야기가 유전자 변이를 거듭하며 여성 시청자들에게 철옹성 같은 인기를 얻었다.

대신 남성 시청자들은 드라마라는 영역에서 멀어져 갔다. 물론 드라마의 주 소비층이 10~50대 여성이고 이들을 겨냥한 여성작가들의 득세가 이 같은 현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야인 시대’는 모처럼 선 굵은 드라마가 남성 작가(이환경)에 의해 그려지면서 남성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성에 대한 욕망의 대리 분출

성인 남성층이 느끼는 ‘야인 시대’의 공감대는 상실된 것에 대한 반발 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현실속 남자들은 이제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를 바탕으로 한 남성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는 그냥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원자적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럴수록 남성 심리의 저변에는 상실된 남성성에 대한 그리움과 복원의 갈망이 있다. 바로 남성성의 상징이라는 의리와 주먹, 그리고 강력한 힘을 그려나가는 ‘야인 시대’가 남성들의 그리움과 갈망을 충족시켜 주며 보상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제작진이 방송 전 드라마 제목을 ‘야인시대’ 로 할지 ‘남(男)’으로 할지 고민하는 대목에서도 드러나듯 제작진이 충분히 의식한 부분이다. ‘야인 시대’의 인기는 조폭 영화가 남성들의 힘을 향한 뒤틀린 노스탤지어를 달래주는 효과로 인기를 얻은 것과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청소년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야인시대’ 의 시청자 대열에 합류를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행동하는 시비(是非)의 세대, 이성적 세대는 아니다. 좋고 싫음을 더 따지는 선호의 농도가 문제가 되는 감성세대다.

이들에게는 폭력도, 금기도, 윤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멋있고 화려하면 그만이다. ‘야인시대’에서 깍두기들을 하나의 주먹에 날려 버리는 김두한의 호쾌한 모습과 쌍칼(박준규)의 남자다운 최후가 멋있어 좋아한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청소년들에게 이야기의 주제나 메시지, 전개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이 밖에 세트의 완성도, 캐릭터에 맞는 연기자들의 캐스팅과 선 굵은 연기, 시원시원한 드라마 전개 방식 등 드라마 내적인 요인들도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영웅화ㆍ신화화 등 문제점도 노출

하지만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야인 시대’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의리를 명분으로 내세운 폭력은 어느 사이 정당성을 확보하며 폭력에 대한 가치판단 마저 흐리게 하고 있다.

때로는 코믹성으로, 때로는 더 큰 악을 응징한다는 적당한 명분을 바탕으로 한 포장으로 조폭영화가 질서와 무질서, 도덕과 부도덕, 선과 악의 구분마저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오류를 ‘야인 시대’가 되풀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부분마저 픽션이라는 이유로 드라마 소재로 동원해 김두한의 영웅화, 신화화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제작진이 드라마의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교육적인 효과를 생각한다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드라마는 픽션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에는 문제는 달라진다. 시청자의 다수, 특히 청소년들은 극중의 인물을 ‘친근의 환상’(Illusion of Intimacy) 현상으로 인해 실제 인물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작가 이환경은 5년여의 걸친 자료 수집과 고증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 학계에서 본격적인 조명조차 안된 부분들이 사실처럼 묘사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영웅부재의 시대에 영웅을 그리고 전통적인 남성성이 상실해 가는 시대에 남성성을 부활시킨 ‘야인 시대’ 가 트렌디 드라마 일변도의 브라운관 세계에서 건전한 대안으로 부상해 진정한 야인(野人)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지금까지 노출된 문제점을 얼마나 개선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 나가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배국남 방송평론가

입력시간 2002/10/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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