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살인이 서구패권주위의 근원?


■살육과 문명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 남경태 옮김/ 푸른숲 펴냄)

서구 문명은 어떻게 해서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을까? <살육과 문명>은 서구의 사상과 관습이 동양 등 비(非) 서구를 누르고 지구촌의 지도적 규범으로 등극한 비결을 전쟁에서 찾는다. 서구와 비 서구가 맞붙은 9개의 전쟁을 분석한 저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가 내린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서구의 살인 기술이 비 서구보다 우수했다는 것이다.

특이한 부분은 서구의 뛰어난 살인기술 혹은 전투력이 병력과 무기, 전략 전술 같은 인적 물적 군사적 우위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서구 특유의 전쟁 방식에 내재한 문화적 역동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관점이다.

저자는 서구의 자유로운 탐구 정신과 합리적 사고,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가치관 같은 전통적인 관습과 이념이 개인의 창의성, 우수한 조직과 규율, 강력한 무기, 전술의 응용과 유연성 등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제처럼 기원전 480년 그리스가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살라미스 해전에서 코르테스가 1521년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참혹한 전투, 태평양 전쟁 당시의 미드웨이 해전과 베트남 전쟁의 테트 공세까지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를 검토한다. 서구 우월주의 태도는 분명 ‘밥맛’이지만 전쟁의 배후로 문화적 측면을 파고드는 저자의 접근법은 나름의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기원전 216년 칸나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한니발이 이끄는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군에 참혹하게 패배한 로마군이 1년 뒤 같은 곳에서 대첩을 거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패배한 로마는 완전히 새로운 군단을 만들었지만 한니발은 승리했음에도 병력을 충원하지 못했다…로마가 그 재앙을 겪고서도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법치체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카르타고는 군주제와 전제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드웨이 해전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은 더욱 명료해진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거둔 유례없는 전과는 개인의 창의성에 의존한 오랜 전통의 소산이었으며, 이는 황제에 대한 복종, 사회에 의한 개인의 종속을 강조하는 동양적 정신과는 큰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재미는 있지만 기분이 나빠진다. 이 책의 메시지는 결국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창의성을 이어받은 서구가 비 서구를 이길 수밖에 없었으며, 서구는 영원히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패권주의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2002/10/14 14:3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