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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최고사령관= 대통령

[어제와 오늘] 최고사령관= 대통령

지난 주 ‘어제와 오늘’ 칼럼에서 소개한 로버트 히그스 교수가 “부시 대통령이 읽지 말아야 할 ‘무서운 책’”이라고 한 에리 올 코헨 교수(존스 홉킨스대 국제 대학원)가 쓴 ‘최고 사령관 : 전쟁중인 군인, 정치가들의 지도력’을 읽었다.

히그스 교수가 두려워 했던 것처럼 이 책은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 총리 등의 전쟁욕을 자극하거나 군지휘관과 정치가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 대통령, 대선 후보들, 그들의 안보 보좌관들이 민주주의 헌법 속에서 군통수권과 전쟁수행권을 가진 대통령이나 총리가 어떻게 군을 움직여 전쟁의 결과인 평화를 얻는가의 에피소드를 상세히 알려 준다.

특히 군 장성들에게는 전문직업군인으로서 전쟁을 수행 할 때 알아야 할 민간 정치가들의 전쟁에 대한 구상이나 철학을 알려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코헨 교수는 영관급 이상 장교가 수강하는 미국 해군대학에서 군사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군ㆍ민관계 속에 정치지도자와 군인 장성들이 펼쳐온 역사를 요약했다. 근대 군사학의 비조격인 폰 클라우제비츠는 “정치의 연장이 전쟁이다”고 했다.

코헨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전쟁은 정치가의 정책을 전쟁이란 수단으로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군대를 운용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동원 하는 것이다. 그게 민ㆍ군 관계다. 민주주의에서 행정부의 수반이 군 통수권을 갖고 군은 그의 조정, 명령, 개입에 따라 전략, 전술을 충성심과 절제 속에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탁월하게 전쟁을 수행한 민간 지도자는 누구였을까. 코헨 교수는 남북 전쟁을 치른 링컨, 제1차 대전을 영국, 미국과 함께 승리로 이끈 크레망소 프랑스 총리, 2차 대전에서 연합국에게 승리를 안긴 처칠 영국 총리, 그리고 1947~49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을 치룬 벤구리온 총리를 위대한 ‘최고 사령관’으로 꼽았다.

4명의 지도자는 모두 문민우위를 주장하는 군통수권자였다. 4명 모두 2~5명의 참모총장, 전선사령관, 위수사령관을 해임했다. 4명 모두는 장군들을 폄하하지 않았다.

코헨 교수는 4명의 개성을 상징적으로 표하고 있다. 5명의 참모총장을 해임시킨 링컨은 철저한 문민우위 주창자였다. 그는 말썽을 일으킨 장군에게 편지를 직접 썼다. 격려도 편지로 했다. 1864년 7월 워싱턴에 침입하려던 남부군 격퇴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점을 은근히 힐책하는 편지를 참모총장인 그랜트 장군에게 보였다.

“끝까지 남부군을 추적 하는데 동의 하지만 어떤 구체적 방법이 없소.” 그는 워싱턴 지구 위수사령관 교체를 지시한 것이다.

크레망소는 1917년 76세에 두번째로 총리가 되었다. 본래 의사였던 그는 신문사 사주였고 사회주의 우파였다.

그는 진지전이 되어버린 서부전선 진지를 나이든 몸으로 매주 한차례 이상 방문해 사병과 이야기를 나눴다. “군대는 시민들로 구성 되어있다. 다만 특별한 목적(승리)을 위해 제복을 입을 뿐이다. 회색이나 빨간모자(계급)를 썼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학도 양식이 최대의 진리인 점을 장군들은 알아야 한다.” 그는 알사스ㆍ로렌을 되찾고 독일이 소비에트식 사회주의국가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유럽 평화를 원했고 그렇게 실현했다.

처칠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왔고 종군기자로 현역 참관단으로 여러 전쟁을 경험 했다. 1940년 총리가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모든 광경을 보면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 국가의 운명과 함께 간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와 경험과 자신의 천재성과 끈질김으로 터득한 전쟁을 영국의 몰락에서 영국의 회복으로 전환키 위해서는 현재의 군 태세에 숫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기술, 보급 등 많은 위원회를 만들어 전문가를 참여시켰다. 1942년 11월 53사단 방문 때 부대 마크가 부착 않은 것을 보고 육군 위원회를 열었다. 상무성이 군복으로 800만 야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대마크용 8만야드를 아끼기 위해 생산을 중단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각의까지 열어 부대 마크를 연대 급까지 달도록 했다.

벤구리온은 1906년 20세 때 폴란드에서 영국령인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1차 대전 때 영국군에 참전했고 이스라엘 노동당 군사조직의 우두머리로 건국시 초대 국방장관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는 무력에 관한한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2개월이 걸리는 세미나를 통해 결론을 얻어 내는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그는 국방장관 내정자로서 1947년 유대국가 건설을 위한 1차 세미나를 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더 이상 아랍 국가들은 강도나 산적이 아니다. 그들은 신중해졌다. 우리는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그는 여러 의견을 듣고 종합 했다.

1953년 은퇴 뒤에 열린 2차 세미나에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랍이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전략이 수립되고 있다”며 대책수립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보다 그가 가장 경고 한 대목은 “이스라엘 안보의 최대의 적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지적인 나태다”라고 했다. ‘지적인 나태’는 비단 이스라엘에만 해당될까.

김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들, 그의 안보 보좌관들이 코헨의 ‘최고 사령관’을 일독 하기 바란다.

입력시간 2002/10/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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