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오데로갔나 동교동!!!”

암울했던 유신정권과 5공 군부독재시절,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갈망은 YS(김영삼 전대통령)를 중심으로 한 상도동계와 DJ(김대중 대통령)를 정점으로 한 동교동계의 민주투사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에 의한 서슬 푸른 공작정치 아래서도 꿋꿋이 반독재투쟁을 벌이는 의연함에 국민은 소리없이 박수를 보내곤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또 한번 군부정치의 연장기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국민은 두 민주세력에게 첫 문민정부 출범과 첫 정권교체라는 큼지막한 선물을 안겨줬다. 그 뒤에는 상도동과 동교동계라는 혈맹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국민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정권을 통째로 넘겨받은 상도동과 동교동계. 그러나 그들도 군부종식과 정치 민주화란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정치 현장에서 스러져 갔다. 5년간의 시차만 있을 뿐 두 보스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소멸의 길로 들어선다.

상도동계는 97년 대선에서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를 만들어 정권 재창출의 꿈을 다졌지만 일부는 이회창 캠프에 투항하고 나머지는 이수성ㆍ이인제 카드를 놓고 우왕좌왕하다 지리멸렬했다. 상도동계에 이어 집권한 동교동계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권노갑 전 의원이 구속되면서 구심점을 잃은 동교동계는 DJ정권의 지지도 하락과 함께 서둘러 각자의 살 길 찾기에 분주하다. 한화갑 의원이 당 대표이긴 하지만 오랜 정치적 동지인 동교동계들은 서로 시큰둥하다. 대표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서로 딴전만 피우는 양상이다.

비호남 출신 중 범 동교동계로 분류되던 인사들은 벌써 후보자단일화협의회(후단협)를 결성해 딴 배를 타고 있고, 원내 김옥두 이훈평 의원 등도 그저 관망하는 눈치다. 노무현 후보를 선출해 놓고도 후보 단일화를 명분삼아 한쪽은 지지자로, 한쪽은 반대파로, 나머지는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갈려 있다. 과거의 일심동체식 단합된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최근에 만난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이 동교동계의 현주소를 정리해 주었다. “지금은 동교동계가 다시 나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각자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요. 어쨌든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을 사람이 나서야 하는데…”

한숨 섞인 그의 심경 속에는 거대한 정치세력이 군부종식과 정치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한 뒤 묵묵히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회한이 담겨 있다. 그들의 퇴장과 함께 우리나라의 정치 선진화를 저해한 보스정치, 패거리정치, 지역정치도 물러갔으면 한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2002/10/18 11:13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