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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큰 목수 최기영

[우리시대의 巨匠] 큰 목수 최기영

"나는 세월을 되짚는 목수일 뿐"

“인간 문화재로 지정된 지 2년인데, 이런 자릴 벌여 놓고 보니 이젠 마음 먹고 제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욱 각별해지네유.”

최기영(58ㆍ중요무형문화재 제 47호)의 느릿느릿 은근한 충남 사투리가 밤색 점퍼 차림의 수더분한 매무새를 꼭 닮아 있다. 단단한 목질에서 세월을 건져 올린 몸집은 작지만 단단하다. 사원 복원, 문이나 창호 등 소목 분야 문화재의 복원에서 국내 제 1인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인솔 교사를 따라 고궁을 찾은 초등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첫물 든 은행나무 사이로 하얗게 부서진다.


문화재 복원 국내 1인자

10월 12일~20일 덕수궁 궁중 유물 전시관에서 펼쳐지는 문화재 기능인 작품 105점 중 맨 앞에 서서 구경꾼을 맞는 것이 최씨의 최근작 ‘5층 목탑’이다. 절멸 위기에 놓여 있던 백제 특유의 건축 양식인 하앙식 그대로 축소 복원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다.

그 모형탑은 부여의 백제촌 재현 단지 내에서 지난 2월부터 제작 중인 탑을 10분의 1로 축소한 높이 3.3m의 작품이다. 미국 알래스카와 독일 함부르크에서 들여 온 북양 적송의 나뭇결이 곱되 단단하다.

향후 7년을 예정으로 충남 부여시 규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업은 왕국, 사원, 선비촌, 일반 주택 등 모두 180여 호를 원형 그대로 재현 중이다. 이곳은 고전 한옥으로 이뤄진 군락촌으로 국내 최대의 것이 될 전망이다.

문화재 전문위원 등 학계와의 긴밀한 공동 작업 아래 이뤄지고 있는 이 사업은 역사의 패자라는 이유로 사라져 가는 백제의 해원 사업인 셈이다. 그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 47호 대목장으로서 대공사를 지휘해 오고 있다.

우리 시대의 큰 목수, 즉 도(都)편수의 보살핌을 바라는 곳은 경상 지방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경북 안동에 있는 국보급 건축인 봉정사 극락전의 해체 복원 사업이 2003년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또 지은 지 30년 지난 부산의 대한불교 조계종 한마음 선원에도 그의 손길이 가 있다. 희귀한 강원도산 또는 러시아산 적송이 자재로 쓰이고 있는 건축 사업이다.

10월 10일 부여의 공사장에 들렀던 그는 8일에는 오후 내내 경기 고양시 용두동 서오능(사적 198호)의 명릉(明陵) 앞 마당 대목수 선발 실기 시험장에서 노트를 들고 열심히 체크하고 있었다. 문제대로 나무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는 응시생 156명 사이를 오가는 그에게는 말 거는 것조차 결례였다. 대목 분야에서 뽑히는 사람은 겨우 20명이다. 8대 1에 달하는 뜨거운 경쟁이다.

덕수궁 대한문 이전 사업을 비롯, 창경궁, 논개 사당(장수), 대흥사(해남), 도갑사(영암) 등 호남의 고찰들 역시 그의 손길을 거쳤다. 월정사, 신흥사, 상원사 등 강원도 명찰의 보수ㆍ복원 사업에도 그의 손길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에는 정릉의 덕수교회 관사를 해체ㆍ복원하기도 했다. 민속자료 보존의 차원이었다.

“인간의 기능은 끝이 없쥬.” 자르고 못질하는 단순 기능인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일찍이 20여년 전 설계를 배웠다. 목칼로 기둥을 표시하고 창호지에다 먹으로 선을 긋는 설계 방식을 이수받아 6년만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신으로 현대 건축술까지 뗀 그는 펜, 트레이싱 페이퍼, 단면 상세도 등을 구사해 정밀한 도면으로 시작한다.

비슷한 이치로 그의 재능도 마를 줄 모른다. 1년 전부터 그는 책을 틈틈이 준비 중이다. 단행본이 아니라 모두 12권으로 구상하고 있다. 이미 제목은 ‘도편수의 길’로 정해 두었다. 참으로 합당한 옥호다. 한국 고전 건축술 가운데 나무를 재료로 하는 것은 모두 망라할 작정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 40년 동안 역사가 단절됐어요. 건축 문화 역시 그래요. 그 맥을 어떻게든 찾아 후손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것은 자기 시대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 지는 가장 그다운 방식일 지 모른다.

3~4년 뒤 갖게 될 출판 기념회 때는 모형 전시회와 작품전도 함께 펼칠 계획이다. 후배들이 책만 보면 다 만들 수 있게 해 놔야겠다는 신념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그 일에 20억원 가량 필요하지만 그는 국가기관 등에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치욕과 각고의 세월이었죠”

“나는 치욕과 각고 끝에 여기까지 왔어요.” 남 잘 때, 먹을 때, 쉴 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옛날에 일 배울 때는 하루 5원씩을 받고 했다”고 말했다. 코피가 터지도록 일 해도 5원. 겨우 담배 한 갑 될까 말까 한 돈이었다. “43년 동안 푹 자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톱과 망치를 애인 삼아 일요일, 휴일도 모르고 지낸 긴 세월이다. 얼마 전 시험장에서도 드러났듯이 경쟁이 치열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한의 세월은 그를 단련시켰다. 아버지가 8세 때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의부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그에게는 설움과 한뿐이었다. “배움이 얼마나 소중했는디유. 이 일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는 각오로 했으니께.” 세월이 흘러도 배움을 늦추지 않는 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 10일 부여행 길에 고대 건축공학 주남철 박사와 동행해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항상 공부에 메말라 있는 그에게 소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을 깊게 사귄다. 대부분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간신히 나온 대목 희망자 중 가장 오래된 제자는 그를 27년째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김종량(42)이다. 부여의 도편수로 백제촌 건립 공사에서 일하고 있다. 동향(예산) 사람이라 먹고 살기 힘들어 서울까지 올라온 그와 현장을 누비며 현재 일의 7, 8할은 전수했다고 한다.

인간문화재란 때에 따라서 실질적 기능의 여부보다는 너무 연로하다거나 올곧은 전통 보존의 차원에서 인맥과 계통에 따라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먼저 알아 보았다.

1988년 MBC-TV의 다큐멘터리 ‘인간 시대’가 그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을 시작으로 그는 각종 종교 관련물이나 명인(名人) 소개 프로에 가끔 등장했다. 2000년 공채 인간 문화재 1호를 기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문화재 관리에 대한 그의 말은 걱정에 가깝다.

“무턱대고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안 하느니 못 하쥬. 오히려 훼손만 할 뿐이니께.” 송진이 많이 함유돼 세월이 지날수록 단단한 건물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 일례로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1971년 복원했으나 송진이 적게 나오는 값싼 외국송(松)을 쓰는 바람에 뒤틀리고 말았다. 울화가 치민 그는 결국 사재를 보태 복원해 놓기까지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옛 건축물들이 세월의 마모 앞에 무력한 것은 당연한 일. 건설이나 도굴에 의한 붕괴, 훼손, 관리 엉망 등으로 우리 문화재는 곳곳서 신음중이다. 최기영과 제자들은 손과 발을 더 재게 놀려야 한다. “내가 뭘 하든 나는 목수일 뿐인께유.”

올해 초부터는 그 동안 미뤄 왔던 풍수지리학을 원로 지리학자들에게 개인 교습 형식으로 배우고 있다. 높낮이, 바람 방향은 물론 집의 격(格)까지 잡아 주는 것이 바로 도편수의 몫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실천하는 셈이다. 자신의 말대로 그는 일개 목수일 뿐인가?

장병욱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2/10/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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