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강원도 수재민돕기 콘서트' 감동의 무대

모두의 아픔을 보듬은 나눔의 사랑

“굉장히 행복해요. 공연을 한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최근 전 남편 편승엽과의 문제로 탈진 상태에 빠져 있던 가수 겸 MC 길은정은 울먹였다. 10일 저녁 이화여고 류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강원도 수재민 돕기 콘서트 ‘이 콘서트를 와서 보면 강원도가 웃어요!’ 공연을 마친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녀는 또다시 삶의 용기를 안겨준 1,000여 팬들의 큰 사랑에 한없이 행복해 했다.

길은정은 이 콘서트를 갖기 전까지 무척 힘든 나날을 보냈다. 1996년 대장암 수술이후 가장 힘들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 그 시발은 9월 12일 SBS TV ‘한밤의 TV연예’에서 불거졌다.

그녀는 자신의 인터넷 일기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전 남편 편승엽을 사랑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사랑한 적 없으면서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며 사과했다.

인터뷰 내용이 전파를 탄 뒤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한 2명의 여성과 함께 3인 공동기자회견에서 길은정은 ‘편승엽은 거짓과 사기행각을 멈추고 속죄의 길을 가라. 모든 피해에 대해 보상하지 않으면 법정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편승엽도 뒤질세라 세 여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사태는 연예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수재민과의 약속, 고통 잊은 행복한 시간

심신이 지쳐버린 길은정은 며칠간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강원도 수재민들과의 콘서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류관순 기념관 무대에 섰다.

“수해를 입은 고향 강원도를 바라보며 애를 태우는데, 어느날 신문에 실린 김진선 지사가 호소문을 읽고 저절로 눈물을 펑펑 쏟아졌어요. 그날 바로 강릉의 수해현장으로 내려가 넋이 반쯤 나간 수재민들과 부대끼다가 모금 콘서트를 열어 고통을 나눠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남편과의 문제로 콘서트 홍보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공연 1시간 전부터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몰려왔다. 초대권도 없었건만 화천 군민들이 버스를 대절해 올라오고 강릉, 대구, 광주등 전국에서 팬들이 찾아왔다.

미국 등 해외교포들은 티켓만이라도 구입해 주는 정성을 보내 왔다. 한인옥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부인과 강원도지사 부인 등이 공연장으로 찾아와 격려했다. 송창식, 김수철, 김태영,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선후배 가수들도 무보수 출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모델이 되었던 밴드의 오프닝 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시작으로 인터넷사이트 다음 행복카페의 길은정 팬클럽 회원들이 분위기를 띄웠다. 마르고 여윈 모습의 길은정은 공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태영, 송창식, 김수철 등이 무대를 내려간 뒤 그녀는 직접 통기타를 둘러메고 자신의 데뷔곡 ‘소중한 사람’과 ‘난 널’, 그리고 올리비아 뉴톤 존의 ‘LET ME BE THERE’ 등 추억의 팝송 레퍼토리로 관객들과 교감을 했다.

발라드 가수인 그녀가 빠르고 비트 강한 팝송 ‘Bad case of loving you’ 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이내믹한 율동을 곁들여 부르자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흔들었다.

공연 말미에 그녀는 “시끄러운 일로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오늘만큼은 즐겁게 노래하고 싶어요. 밝고 맑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요”라고 짧게 심경을 토로하자 객석은 “힘내라, 힘내라”는 함성과 박수로 격려했다. 마지막 곡으로 동요 ‘섬집아이’를 부를 때 그녀의 눈가는 회한의 슬픔과 팬들의 사랑을 확인한 기쁨으로 빨갛게 변해 있었다.

1983년 서울보건전문대재학시절 교내 팝 콘서트대회에서 자작곡 ‘아이야’로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선 길은정은 서울 무교동의 다운타운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KBS 라디오 ‘가위바위보’ 프로의 더블 MC로 발탁됐다.

가수 데뷔는 1984년 3월, 4인 가수의 옴니버스 앨범 ‘젊음집중’에 ‘소중한 사람’을 취입하면서 이루어졌다. 데뷔곡 소중한 사람은 젊은 층의 사랑을 받았고 이후 인기프로였던 MBC TV ‘영11’에 고정 출연하면서 ‘한국의 올리비아 뉴튼 존’으로 불렸다.

또 MBC인기 어린이프로 ‘뽀뽀뽀’의 진행자로, 84강변가요제의 MC로 활약하다 84년엔 MBC MC부문 연기상과 KBS 가사대상 동상(소중한 사람)을 거머쥐는 등 방송가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후 ‘가요톱10’ ‘정오의 희망곡’ 등 TV와 라디오 프로의 전문 MC를 맡았고 1988년 첫 독집 앨범 ‘사랑굿’을 시작으로 2,3집과 시 낭송집 ‘명동에서 홍대까지’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무대활동을 했다.

길은정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96년 일본진출을 위해 성인취향의 발라드 곡을 준비할 때였다. 청천벽력과 같은 대장암 선고에 그녀는 주저앉았고, 좌절감에 빠진 그녀에게 가수 편승엽이 다가왔다. 암에 걸린 길은정과 결혼을 발표한 편승엽의 순애보적 사랑에 대중은 큰 감동을 받았다.


시련 딛고 강한 집념으로 거듭 나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첫결혼, 이혼, 대장암 선고, 재혼, 수술, 항암 치료, 여성 상실, 하와이 요양, 다시 이혼… 가혹한 인생역정은 그녀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내몰았다.

첫 결혼에서 낳은 아들을 그리며 애완견과 외롭게 살았던 그녀는 암투병 생활을 일기형식으로 엮은 시집 ‘사랑하고 있습니다’를 2000년에 발표하며 재기에 나섰다. 이후 2000년 10월 불교방송의 ‘백팔가요’의 DJ를 맡았고 올 8월엔 노래시집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길은정의 재기를 과시했다.

최근 불거진 길은정ㆍ편승엽 사태를 보면서 팬들은 “6년간 숨겨온 마음이 오죽하겠냐. 이해한다” “서로 헤어졌으면 조용히 살지”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수재민 콘서트 공연 후 한 40대 여성은 “착하고 여리게만 보았던 길은정의 큰 용기를 보았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들텐데, 수재민을 돕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오랜만에 자신의 무대에 올라 자신의 노래를 부른 길은정. 그녀의 데뷔곡 <소중한 사람>은 바로 그녀를 진정 사랑해주는 팬들이 아닐까.

최규성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0/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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