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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즐겁다] 평창 오대산

[주말이 즐겁다] 평창 오대산

산정에 물드는 파스텔톤 그리움

오대산의 가을은 수수하고 깊은 맛이 있다. 수채화풍으로 번지는 주황색의 부드러움이 매력이다. 극상의 원시림 지대라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단풍코스와는 품격을 달리한다.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 사면이 아침 안개에 젖을 때면 공룡시대의 숲에나 든 것처럼 신비감을 준다.

오대산 단풍나들이의 자랑은 오프로드에 있다. 홍천군 명개리에서 산을 넘어 상원사를 거쳐 월정사로 빠져 나오는 이 코스는 다리품 팔지 않고도 오대산의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또 포장길이 아닌 어울렁 더울렁한 비포장길이라 옛길의 감흥에 젖기도 충분하다. 오대산을 향해 오르는 길 주변의 맑은 계곡과 아담한 폭포는 쉼터가 되기에 충분하다.

오대산 오프로드의 들머리는 홍천군 명개리. 명개리 일대는 삼봉약수를 비롯해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곧장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단풍숲길이 마음을 틔워주고, 폐부 깊숙하게 스며드는 공기는 머리를 맑게 해준다.


해발 1,100m까지 오르는 비포장길

길은 비로봉 발치 밑까지 파고든 후 산굽이를 돌아가며 고도를 높인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산은 멀어지고, 산이 끝나는 허공은 하늘과 닿아 있다. 다시 한 굽이를 돌면 금새 멀어진 산은 단풍의 바다가 되어 펼쳐진다. 이때쯤이면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의 산뜻한 이마가 머리를 내민다.

오프로드의 정점은 해발 1,100m. 오대산과 두루봉의 갈림길이다. 다시 급하게 요동치는 비포장길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상원사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상원사는 유구한 역사와 전설, 뛰어난 문화재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한 절이다. 보천과 효명, 두 신라 왕자가 1만의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성덕왕)가 문수보살상을 봉안한 이래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문수신앙의 진원지이다.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는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 문수보살을 만나 불치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세조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준 상원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하사하고 싶었다. 몇 달을 수소문한 끝에 안동 누문에 걸린 종을 찾아냈다. 이 종이 에밀레종보다 45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맑은 종소리는 천상에서 부르는 소리처럼 경쾌하고도 은은하다.

오대산에 드리운 새벽 안개를 밀치며 골짜기를 따라 길고도 긴 여운이 승무(僧舞)의 춤사위처럼 퍼져 나간다. 그 아름다운 소리는 어쩌면 동종에 새겨진 비천상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천상의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경쾌하게 하늘을 날며 공후와 생을 연주하는 비천상은 생동감이 철철 넘친다.

상원사에서 7km 내려오면 전나무숲에 들어앉은 부도전과 월정사가 반갑게 맞이한다.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접견하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얻어 귀국한 자장율사는 비로봉 중턱에 적멸보궁을 세운 2년 뒤 동대산 아래에 월정사를 세우고 팔각구층석탑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경내에는 팔각구층석탑을 중심으로 대적광전, 심검당, 삼성각, 대강당, 승가학원, 범종각, 용금루 등의 요사가 있다.


전나무숲에 둘러싸인 월정사

월정사는 울울장막을 친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말고도 전나무숲으로 한 겹 더 외피를 둘렀다. 일주문에서 월정사 지나 부도 밭까지 이어진, 1km의 진입로를 가득 매운 전나무숲길은 걷는 이의 마음을 참으로 포근하게 감싸준다.

한낮에도 어둑시니한 숲그늘을 이루고도 햇살이 숭숭 뛰어들어 습하지 않다. 장쾌한 기상으로 솟구친 등걸을 바라보면 몸도 둥실둥실 떠오를 듯이 가벼워진다.

월정사가 품은 가장 빼어난 보물은 단연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평양을 중심으로 유행한 다층 석탑으로 마치 촛불처럼 타오르는 모양이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지봉돌마다 매달린 풍경에선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체감률이 적은 편이지만 경쾌한 상승감이 느껴진다.

팔각구층석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은 꿇고 왼쪽 무릎은 세운, 토실토실 살이 올라 복스럽게만 보이는 석조보살상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 보살이야말로 월정사의 얼굴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약왕(藥王)보살이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조각은 강원도의 절에서만 볼 수 있다.


<길라잡이>

서울에서 명개리로 가려면 양수리-양평(6번 국도)-홍천(44번 국도)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른다. 홍천에서 양양으로 가는 56번 국도를 타고 가다 내면 율전리에서 창촌으로 가는 31번 국도를 이용한다.

창촌에서 명개리까지? 16km 거리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속사IC로 나와 운두령을 넘는다. 양평에서 홍천까지 44번 국도가 4차선으로 포장되어 홍천을 경유하는 것이 좋다. 돌아오는 길은 진부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오대산 드라이브는 11월 15일 이후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할 수가 없다. 봄ㆍ가을철 산불 방지기간과 겨울에는 통행을 금지시킨다. 따라서 단풍이 시작되는 10월 초순부터 말 사이에 찾는 것이 좋다.


<먹을거리와 숙박>

창촌에서 명개리로 가다보면 내린천가에 예쁜 민박집들이 많다. 맑은 강물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해 하룻밤 묵어 가기 그만이다. 율전리 살둔마을에 있는 살둔산장(033-435-5928)은 여행가들이라면 한번쯤 들렀던 곳이다.

진부와 월정사 입구에는 산채백반을 잘하는 집이 많다. 서울식당(033-332-6600)은 부일식당(033-335-7232)과 함께 산채백반 잘 하기로 손꼽는 집이다. 2대에 걸쳐 30여 년간 산채정식을 해 오고 있다. 더덕과 산채, 손두부와 된장찌게 등 스무 가지쯤의 반찬이 나온다. 산채정식 1만원.

김무진 여행칼럼니스트 badagun@hk.co.kr

입력시간 2002/10/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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