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세계여행-29] 말레이시아 시부섬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떠있는 나만의 파라다이스

페리를 타고 밝은 에메랄드빛의 바다를 한참 동안이나 달려 도착한 곳, 시부섬(Pulau Sibu). 랑카위나 팡코르 같이 두어 번 들어본 듯한 익숙한 섬 휴양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생소한 시부를 찾는 여행자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 섬에 도착한 뒤 맨 처음 머리를 스치는 의문이었다.

낯설고, 외진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시부에 머문 며칠은 꿈처럼 달콤했다. TV나 신문 같은 일상의 스트레스도 없고, 여행지에서 흔히 겪는 쇼핑에 대한 고민도 없다.

그저 한없이 주어지는 것은 시간, 뜨거운 태양 그리고 바다. 딱히 꼬집어 말할 만한 매력은 없지만 이미 중독되어 버리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의 한적한 휴양섬 시부다.


원시의 매력 가득한 낙원

시부는 말레이 반도 동해안에 떠있는 작은 낙원 같은 섬이다. 말레이시아의 다른 휴양지에 비해 알려지지도 않았고, 주변에서 다녀왔다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다. 원시적인 해변이나 숲이 전부일 뿐 볼거리라고 명함을 내밀 만 한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때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내기 힘든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원시적’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다. 자랑할 만한 것은 스노클링 즐기기 만점인 바다와 일부 스쿠버다이버들만이 아는 몇몇 다이빙 포인트들이다.

시부는 시부 텡가, 베사르, 코코스, 후종 등 네 개의 섬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섬 베사르(말레이어로 큰 섬이라는 뜻)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코코스와 후종은 조그마한 무인도로 주로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네 개의 섬들 가운데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은 시부 텡가(Sibu Tengah)이다. 섬에는 시부 아일랜드 리조트 외에 다른 시설물이나 인가는 전혀 없다. ‘섬 하나에 리조트가 전부’라는 사실이 독특하면서도 낭만적이다.

섬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서 바라보는 섬의 풍경도 보기 좋다. 아담한 섬에 오렌지 빛 지붕의 집들이 짙푸른 녹음에 들어앉은 정경이 평화롭다. 우리는 지금껏 높고 현대적인 빌딩을 갖춘 호텔에 익숙한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시부 아일랜드 리조트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 품에 정겹게 안겨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텔과 리조트의 차이가 이런 것이리라.

페리 터미널에 도착해 리조트 로비로 이르는 길은 열대나무와 꽃들이 수를 놓고 있다. 여행자들이 다다를 즈음 직원들이 나와 시부 아일랜드 리조트 송을 부른다. 흥겨우면서도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가 기분 좋다.

말레이 전통 복장을 입은 소녀가 금빛 가지에 달걀을 매달아 건넨다. 풍요와 다산을 불러들인다 해서 결혼식 할 때 하객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인데 여기서는 환영과 감사의 인사 정도로 읽힌다.


목가적인 샬레풍 리조트

로비와 레스토랑이 있는 메인 건물을 중심으로 바로 앞에는 야외 수영장과 테니스장 등이 있고 객실은 오른편으로 점점이 흩어져있다. 오렌지색 지붕에 나무로 쌓아올린 말레이 전통 샬레를 그대로 응용해 만든 객실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지붕 아래 두 개의 객실이 붙어 있고, 각 건물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디자인으로 언덕이나 비탈진 지형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모든 객실이 독립적이라 신혼여행을 온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공간이 될 듯 하다.

리조트를 산책하는 것도 제법 운치 있다. 산책로처럼 좁게 뻗은 길을 따라 가면 해변에 이른다. 섬에는 모두 네 개의 해변이 있는데 그 가운데 세 개가 리조트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방문을 열고 나와 조금만 걸으면 바로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다.

마지막 하나는 정글처럼 우거진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등산하듯 찾아가게 되어 있다. 등산이라고 하지만 사실 채 10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이다. 이 숨은 해변은 리조트에서 세워 놓은 바나나 잎으로 지붕을 엮은 파라솔 마저 한동안 내버려둔 탓인지 바람에 쓰러져 누웠다.

파도에 쓸려 온 산호 조각을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호는 세제를 푼 물에 담가 놓으면 새하얗게 때가 사라진다고. 이 네 번째 해변은 오후에는 물이 빠져 해변이 넓어지고 아침 녘에는 물이 들어온다. 파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조깅을 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객실 내부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넓은 침대와 욕실, TV, 미니바, 전화기 정도가 전부다. 마땅히 있어야 할 시계조차 없다. 어쩌면 시간 같은 것일랑 다 잊어버리고 편안히 원하는 대로만 지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하긴 이 같은 오지 섬에서 시간을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양한 해양스포츠 “하루가 짧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조용하기만 한 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리조트 내부 시설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내린 천혜의 조건인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신나는 스포츠를 즐기면 된다. 리조트의 넓은 야외수영장은 풀 사이드 바, 워터 마사지, 다이빙코너, 아이들을 위한 워터 슬라이드 등이 갖추고 있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세일링, 낚시 등을 할 수 있다.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열대의 태양을 즐기거나 조금 선선한 아침이나 해질 녘에는 발리볼 같은 활동적인 스포츠에 도전해 볼 수도 있다.

스노클링의 최적지는 코코스 섬이다. 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를 세우고 작은 보트를 타거나 직접 헤엄을 쳐서 해변에 닿을 수도 있다. 산호군락은 해변에서 몇 십 미터 떨어진 지점에 발달해 있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링 장비를 갖춘 다음 느긋하게 바다 속을 들여다보며 헤엄치다 보면 환상적인 수중세계를 만나게 된다. 물고기용 소시지나 빵을 조금씩 뜯어서 주면 수백 마리의 고기떼가 주변으로 모여드는 장관도 감상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하기에 좋은 포인트는 시부 텡가의 북쪽에 있는 리마 섬 주변에 많다. 포인트를 잘 아는 안내자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낚시는 시부 섬 앞바다 거의 전역이라고 할 수 있다. 시부로 들고나는 페리에서 보면 바다 한가운데 말뚝을 박아 올려 나무 집을 지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말레이어로 켈롱(Kelong)이라고 하는데 물고기를 잡는 오두막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켈롱들은 예전에는 어업이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여행자들이 찾아와 낚시를 하는 장소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와 똑같은 놀이를 가진 베사르의 어촌마을

시부 일대에서 흥미로운 곳 가운데 하나가 베사르 섬이다. 네 개의 섬 가운데 유일하게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해안은 물이 깊지 않아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목조 선착장을 만들어 두었다. 허술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운치 있는 나무 다리를 지나가는 동안 발 아래로는 숱하게 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게 보인다. 선착장 옆으로 해수욕장이 있고 간단한 해양스포츠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섬 사람들은 어업을 주로 하고 섬 안에는 야자농장도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지을 정도는 아니라서 생계 수단은 고기잡이다. 마을에는 작은 초등학교도 하나 있는데 흰 남방에 감색 반바지나 치마를 입은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이방인을 맞는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지켜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네 놀이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다섯 개의 돌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고, 바닥에 여러 개의 네모 칸을 그려놓고 돌을 던져 한발로 건너가는 식의 놀이도 우리가 어릴 적 놀던 것과 똑같다.

여러 개의 홈이 파인 나무판에서 구슬을 이리저리 옮기는 놀이는 언뜻 봐서는 놀이의 규칙도 알기 힘들고 보기에도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데 아이들은 정신 없이 놀이에 빠져든다.



☞ 항공편 시부로 가려면 말레이반도의 최남단 도시인 조호바루로 먼저 이동해야 한다. 인천에서 콸라룸푸르행 국제선을 타고 콸라룸푸르로 간 다음 조호바루행 국내선을 갈아탄다. 콸라룸푸르행 직항편은 말레이시아항공과 대한항공이 있으며, 토요일 제외 매일 운항하고 있다. 콸라룸푸르에서 조호바루까지 국내선으로 40분 정도 걸린다.

☞ 현지교통 조호바루에서 시부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탄중레만(Tanjung Leman)까지 이동한다. 약 2시간 걸린다. 탄중레만에서 페리를 타면 시부까지 45분 정도면 도착한다.

☞ 환전 달러로 먼저 환전한 다음 현지에서 말레이시아 링깃으로 재환전한다. 말레이시아는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1 미국 달러=3.76RM이다. 은행이나 호텔 카운터에서는 정확하게 환전해 주지만 상점이나 식당에서는 환율을 다르게 적용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 술문화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술집이나 술 마시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외국인 여행자들이 술을 마시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으며 시부 아일랜드 리조트 내에서도 양주, 맥주 등 모든 종류의 술을 구비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금주를 종교적 덕목으로 생각하는 무슬림들 앞에서 만취해서 실수하는 일만 없도록 신경 쓰면 된다.


글·사진 김숙현 여행작가

입력시간 2002/10/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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