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의경도 빽은 빽?

우리나라 속담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의지할 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아주 막가는 말로 풀이하자면 속칭 ‘빽’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빽은 개인이나 단체를 가릴 것 없이 아주 중요한 무형의 자산가치로 인정 받는다.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세상 천지 어디를 둘러봐도 손 벌릴만한 곳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아는 후배는 시간강사를 하며 가난한 가장으로서의 아픔을 토로하더니 얼마전 아버지로부터 일찌감치 유산 분배를 받아서는 그야말로 구질구질한 시절을 한방에 보내버렸다. 아이 유치원비를 걱정하던 후배가 아파트를 사고 남은 돈에 대한 투자 방향을 고민하는걸 보며 역시 든든한 빽의 막판 스퍼트가 주는 놀라운 도약에 그저 부러움이 들 뿐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 내에 의사, 경찰, 언론인이 한명씩은 포진하고 있어야 이 험난한 사회를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나 간호사말고 하다못해 청소 아줌마라도 알고 있어야 친절한 설명을 한마디라도 더 들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인걸 보면 이사회에서 아직은 빽이 통용된다는 것이 기정사실인가보다.

얼마전 지방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추돌사고가 난 차주인들이 대로 한복판에서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는걸 봤는데 참 가관도 아니었다.

“이게 어따 대고 오리발이야? 너 콩밥 좀 먹고싶냐? 내가 누군줄 알아? 이 지역 경찰청의 높은 사람이랑 트고 지내는 사이야.”

“웃기고 자빠졌네. 야, 나는 경찰청 본청에 아는 사람 있어.”

“그래? 난 청와대에도 빽이 있다.”

“청와대? 야, 난 백악관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

정말이지 다큰 어른들이 7살짜리 애들처럼 유치하게 싸우는데 아마 경찰이 조금 더 늦게 왔더라면 하나님에 해님, 달님까지 총동원 돼서 누구의 빽줄이 더 센가 결판이 나는걸 봤을 것이다.

연예인 A가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녹화 끝나고 여자 동료랑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이미 얼큰하게 취한 옆 자리의 남자들이 자꾸 여자에게 집적대며 거칠게 굴었다.

A는 애써 꾹꾹 참으며 취한 남자들을 달랬다.

“술 많이 드셨나본데 그만 하시죠.”

“너랑은 볼일 없어. 아가씨, 우리 나가서 한잔 더하자니까. 실물로 보니까 더 이쁘네”라며 여자를 붙잡고 늘어지자 A는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는데 어설픈 몸동작에 취한 남자들이 옳다구나 하고 늘어졌다.

“어, 너 사람 쳤어? ”

“치긴 누가 쳐요? 아주 생사람을 잡네.”

“증인 다 있어. 옳아, 이제보니 이놈도 TV에 나오는 놈이구만. 야, TV 나오면 사람 쳐도 돼? 당장 경찰서 가자.”

졸지에 경찰서까지 가게 된 A는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이런 일이 알려져 봤자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지는게 더 큰일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A는 마당발로 소문난 B에게 연락을 취했다. B는 금방 빼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 서너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아무런 연락도, 조치도 없었다. 다급한 A는 다시 B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형, 어떻게 된거야? 경찰에 아는 빽 있다고 금방 빼준다며?”

“너 아직도 있냐?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연락했는데.”

“정말 경찰에 아는 사람은 있는 거야?”

“그럼, 우리 동네 이동 파출소 의경이랑 내가 호형호제 하는 사이잖아. 일처리 확실하게 하는 놈인데…”

입력시간 2002/10/2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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