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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문화읽기] 명품신드롬 유감

[김동식 문화읽기] 명품신드롬 유감

명품에 대한 사회적인 열광이 가히 집단최면의 수준에 이르렀다. 유아들은 은으로 만든 딸랑이를 가지고 놀고, 일부 어린 학생들은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각종 부업전선에 아낌없이 몸을 던지고, 대학생들은 배낭여행 차림으로 나갔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차려입고 돌아온다.

직장인 명품족은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면서도 아르마니 양복을 입었다는 자부심으로 환한 미소를 짓고, 사이버 공간에서는 아바타 명품을 구입해서 자신의 분신을 꾸미느라 아우성들이다. 그뿐인가. 중장년층들은 백화점 VIP카드과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으로 자신이 한국사회에서 1% 밖에 안 되는 귀족에 소속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주요 신문들은 주말 섹션을 통해서 20, 30대 신흥귀족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그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방송 드라마에서는 극중의 성장배경과는 무관하게 명품으로만 차려입은 여배우들을 한없이 만날 수 있다.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는 경기의 부침과 무관하게 상품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상위 5%의 계층을 타깃으로 명품 마케팅을 극대화하고 있다. 심지어 택배회사는 명품을 운반할 때 보험에 가입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명품의 ‘신성한 가치’를 집 앞까지 고스란히 배달하고 있다.

따라서 신문, 방송, 제조, 유통, 물류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제반 분야가 명품이라는 기호(記號)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특권층의 과소비 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명품의 사전적 의미는 ‘훌륭하기 때문에 이름이 난 물건’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명품이라는 말은 고가의 해외 유명 브랜드를 지칭한다. 명품은 일본과 한국에 국한된 소비문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영어권에서는 럭셔리(Luxury Goods)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명품의 뉘앙스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럭셔리에 일상생활에서는 필요없는 사치품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반면에 명품에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소비문화의 상징체계가 반영되어 있다. 명품의 소비는 단순하게 오랜 전통을 가진 훌륭한 제품을 구입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의 상류층에 소속된 자기자신의 이미지를 구입하는 일이다.

명품 신드롬은 한국사회가 대량생산에 기반했던 생산중심의 자본주의단계를 벗어나 대중에게 잠재되어 있는 소비를 촉발시킴으로써 이윤을 창출해 가는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이 완료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명품은 상품이면서 상품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명품을 앞에 두고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따지는 것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일이다. 명품은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이며, 더 나아가서는 극대화된 기호가치(sign-value)이기 때문이다.

진품 페라가모 가방에서 로고가 떨어져 나갔다면 그 제품은 명품일까 아닐까. 절대로 아닐 것이다. 브랜드에 내포되어 있는 기호와 이미지를 소비할 수 없다면, 명품으로서의 가치는 제로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명품에 대한 소비는 상품에 대한 일반적인 소비가 아니다. 명품 구입 양상을 두고 합리적 소비 운운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를 감싸고 있는 명품 신드롬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된 처절한 승인투쟁이기 때문이다. IMF 이후 한국사회는 급격한 계급분화를 경험했고 현재는 계급의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부의 상징이었던 자동차·아파트·해외여행·레저·식도락·신용카드 등은 중산층의 경제적 표지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따라서 상류층의 입장에서는 중산층과의 경제적 문화적 구별짓기의 필요성이 제기 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이고, 결코 요란하지 않으면서 아는 사람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그 무엇. 다름 아닌 명품이다. 하지만 중산층의 문화적 대응도 만만치는 않다. 그들은 신용카드 장기할부나 인터넷 공동구매를 통해서, 보통 사람도 어느 정도의 출혈만 감수하면 한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명품의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소비는 경제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비는 자신의 문화적·경제적·사회적 정체성을 재생산하고 재구성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을 과시적인 소비로만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물신(物神) 숭배로 치닫고 있는 천민자본주의의 초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사람이 촌스러워서 그럴 것이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tan@empal.com

입력시간 2002/10/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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