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정치 철새들

해마다 이때쯤이면 철새들이 날아온다. 그래서 각급 학교 학생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철새도래지로 탐조학습이나 철새관광을 가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 정치권에서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쯤 철새들이 날기 시작한다. 이해관계를 따라 당적을 바꾸는 정치철새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치철새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우리 나라 정당이 정책과 이념을 가리지 않고 아무나 끌어 모으는 감자부대 정당(potato-sack party)이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철새정치인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 정치가 ‘질의 정치’가 아니라 ‘수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바른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하지 않고 의원숫자로 정국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수의 정치는 머리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배지만 달면 아무나 받아들이는 ‘덧셈정치’였다. 그러나 그 덧셈이 우리 국민에게는 ‘뺄셈’의 결과를 낳았다. 정치가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철새들은 먹이가 많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이동한다. 철새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붙이지만 본질은 이익 추구이다. 유엔 총회 의장을 지냈던 한승수 의원에 이어 민주당의 전용학 의원과 자민련의 이완구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두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통한 정치안정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후보에 줄서기를 통한 차기 총선 보장이 거스를 수 없는 이익의 추구”에 가깝다.

자기 당의 의원이 상대 당으로 당적을 옮기면 정치철새지만 반대로 상대 당의 의원이 자기 당으로 오면 ‘구국의 결단’이라고 부른다고 했던가. 민주당은 즉각 “한나라당의 집권욕이 빚은 정당파괴행위”라며 반발했지만 민주당이나 자민련이 한나라당을 비판할 자격은 별로 없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나라당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옮긴 의원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아직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철새들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불러들이는 한나라당의 행위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철새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의 적대세력을 끌어안는 포용력과는 다르다.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몇 달 째 제자리걸음인 이 후보의 지지도를 높이려는 얄팍한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

철새들은 한번 자리잡은 곳에 눌러 살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텃새와 철새의 차이다. 우리 나라의 철새 도래지 가운데 몇 곳에 최근에는 철새가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길 잃은 새들, 갈 곳 없는 새들만이 찾아온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까닭은 먹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좋은 먹이가 있는 곳이 발견되면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날아간다. 철새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옛 여권 출신이 많은 자민련이 흔들리고, 민주당에서도 특히 옛 여당에서 옮겨온 정치인들이 흔들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정몽준 의원이 창당을 주도하는 국민통합21에 참여하되 민주당적은 유지하겠다는 의원까지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노리면서도 텃밭의 먹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속셈인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했던가. 이완구 의원은 원래 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이 의원이 자민련으로 옮겨갈 당시 충청권에서는 김종필 총재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자민련이 약화되고 충청 지역에서 김종필 총재의 영향력이 줄어드니까 다시 한나라당으로 옮긴 것이다. 전용학 의원은 원래 16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민주당으로 옮겨가 공천을 받았고, 총선 당시 충청 지역에 분 ‘이인제 바람’의 덕으로 당선되었다.

전 의원은 민주당 경선 때 이인제 의원을 지지했다가 이인제 의원이 실패하자 이른바 반노·비노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다 최근 충청지역에서 이인제 의원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이회창 후보 지지도가 높아지니까 한나라당으로 옮긴 것이다.

의원들의 당적 바꾸기는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의 뜻을 거스르고,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짓밟는 철새정치인을 역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손혁재 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2/10/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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