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기업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경영학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를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경영학이 마치 장사치와 동의어이고, 술수와 기회만을 노리는 사람들을 기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아니라, 경영학은 어떻게 하면 기업이 원래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학문이다. 여기서 기업 원래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혼란이 일어난다.

답을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을 영어로는 ‘make money’라고 표현한다. 즉, 돈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자동차 회사는 뭘 만드는 회사인가? 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다.

전자회사도 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자동차를 만들고 전자제품을 만드는 본업을 잘 할 때 돈이 벌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돈 내고 살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야 한다.

즉, 정답은 바로 가치 창출이다. 누구를 위한 가치인가? 투자자, 종업원, 지역사회, 혹은 국가? 가치창출의 대상은 고객이다. 애초에 기업조직이 만들어졌을 때는 분명히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생겼을 것이다. 그걸 잘 하는 기업은 당연히 성공하고 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일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에 내 말대로 기업의 본래 존재 목적이 돈이 아니라면 비영리 기업이나 공기업은 더욱 원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공기업의 기관장을 아무나 데려다 앉히는 것은 한 마디로 아주 무식한 짓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대는 재물에 욕심이 없고, 오래 살 생각을 안 하고, 오직 승리하는 데만 신경을 쓴다는 가르침이 손자병법에 있다. 군사들이 재물에 관심을 두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 남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전쟁에 이길 수 없다. 성공하는 기업은 돈 벌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본업을 어떻게 충실히, 잘 수행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기업이다. 물론 그런 기업들은 돈도 잘 번다.

그리고, 경영학, 기업, 혹은 기업가들을 아래로 내려다 보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하고 싶다. 우리 중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데 죄책감을 느끼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조직이 어려워져 부하 직원들에게 봉급을 못 주고 자신의 역할을 다 못한다고 자살을 하는 일은 유일하게 기업하는 사람들 사이에나 일어나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그런가? 아무 말이나 해 놓고 지키지 못해도 자살은 커녕, 책임도 지지 않으며 한술 더 떠서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갖가지 주장으로 병풍의혹사건을 입증할 테이프가 있다며 세상을 시끄럽게 해놓고 정작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 뭘 하는지, 왜 가만히 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교수지만, 교수가 그런가? 도대체 우리 중에 누가 그런가?

18세기에 아담 스미스가 한 말을 기억하자. “유럽 모든 국가들 중에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상업적인데, 그들은 또한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다.” 한번 사기치고 치울 것이 아니고(그런 사람들은 기업가가 아니다) 영속적인 기업을 운영하려면 고객, 종업원, 투자자 등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다수의 기업들은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알아서 본분을 다한다. 요즘 신문에 등장하는 “기아차 이례적 세무조사, 현대차 정경분리 선언후 괘씸죄 의혹” “현대상선 4000억 의혹” 등과 같은 기사가 난무하는 나라에서 기업들이 지금 정도의 성과를 보이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기업은 국가경제를 받치는 중요한 대들보다. 기업들은 존경 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일반 사람들이든 정부든 기업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

김언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입력시간 2002/10/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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