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강건너 불 아니다] 칼 뺀 부시 "美 혼자라도 친다"

대 이라크 공격 강력의지 불구 국제적 반대여론에 주춤

올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 으로 이란 북한과 함께 이라크를 거명한 이후 9개월이 지났다. 의회로부터 베트남전 이후 가장 강력한 전쟁수행권을 부여받은 부시 대통령이 대 이라크 확전에 나설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간 수 차례 언급한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 발언의 강도로 미뤄볼 때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의 새로운 결의안 없이 미국 단독으로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면 할수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전여론도 갈수록 거세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후세인 대통령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사찰허용 의지가 어느 정도일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일방적 무력응징에 대한 반발여론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전쟁의 양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쟁수행권 부여로 날개 단 부시

부시 대통령은 10월 16일 의회 상ㆍ하원이 압도적으로 승인한 이라크 전쟁결의안에 서명해 후세인 제거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부시의 전쟁결의안 서명은 유엔의 새 이라크 결의안 채택에도 적지않은 압력으로 작용하리라는 게 중론이다. 이날자로 정식 발효된 부시의 전쟁 권한은 베트남전 이후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큼 파격적이다.

미국 단독의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대신 의회가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라고는 이라크 공격 전이나 공격 후 48시간 내 추가적인 외교노력이 미국의 안보를 보호할 수 없다는 점과 이라크 공격이 대 테러전쟁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회에 설명해야 한다는 게 전부이다.

일각에서는 일방적인 전쟁수행에 줄곧 반대해온 야당인 민주당의 내홍이 부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데 한 몫을 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내달 5일 치러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전쟁명분에 더 이상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딕 게파트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가 ‘당론’ 과 배치되는 타협에 나선 것이 계기이다. 차기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게파트 의원과 경쟁관계에 있는 톰 대슐 상원 원내총무는 게파트 의원이 주도한 하원의 전쟁결의안 승인을 상원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저지할 수는 없었을 것” 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를 전쟁으로 몰고 간다는 부시 정부의 전략은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이날 백악관에서 100여명의 민주ㆍ공화당 의원을 대동하고 서명식을 가진 부시 대통령은 “목표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최종적으로 충분하게 제거하는 것” 이라고 밝힌 데 이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대통령은 며칠, 몇 주는 기다릴 수 있지만 몇 달까지는 기다릴 수 없다” 고 말해 백악관 내 강경기류가 여전함을 분명히 했다.

“사담 후세인은 스탈린의 제자” “알 카에다는 서방공격을 위한 이라크의 전위부대” 등 정제되지 않은 노골적 반감을 끊임없이 드러낸 부시의 후세인에 대한 반감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안보리의 반미ㆍ반전물결

부시 정부의 강력한 전쟁의지와 각개격파식 외교담판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줬던 반전무드도 최근 유엔을 통해 확산되는 상황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에서는 프랑스가 반미의 총대를 맸다.

프랑스는 유엔사찰단에 전면적인 사찰권한을 부여하고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 이라크에 대한 무력응징을 다시 논의하자는 2단계 유엔 결의안 방식을 제의, 유엔사찰단과 무력응징을 한꺼번에 결의하자는 미국의 1단계 결의안에 정면 반기를 들었다.

외교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미국정부는 최근 프랑스와의 타협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혼란 속에 빠졌다. 러시아 중국이 프랑스에 가세했고 대다수 안보리 이사국들도 미국의 안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수행권에 서명한 16일 유엔에서는 비동맹운동(NAM)의 요구로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가 열렸다. 이라크는 유엔결의를 준수해야 하지만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은 반대한다는 게 주조를 이뤘다.

모하메드 알두리 이라크 유엔대사는 “미국이 유엔에 백지수표를 요구하고 있다” 고 비난, 미국에 대한 아랍권의 반감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미국이 특히 당혹스러워 하는 것은 러시아의 급속한 프랑스로의 밀착이다.

당초 러시아는 체첸반군이 암약하고 있는 그루지야에 대한 무력응징을 용인하고 이라크 서부 원유시설에 대해 갖고 있던 러시아 지분을 미국이 보장한다는 전제로 미국의 전쟁결의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설이 무성했다. 러시아가 이라크에 갖고 있던 80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도 미국이 대납해 주기로 했다는 분석도 제기돼 왔다.

그러나 유리 페도토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미국의 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프랑스의 제안이 러시아의 입장에 가깝다” 고 공언, 미국의 외교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러시아가 대미 강경입장으로 돌아선 데는 이라크에 대한 자국의 석유이해가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우디 아라비아(2,617억 배럴)에 이어 1,125억 배럴로 세계 제2위의 매장량을 갖고 있는 이라크는 러시아 경제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 주도의 새 이라크 정권이 수립될 경우 이라크의 원유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이로 인한 유가하락은 전체 수출의 40%를 석유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라크와 러시아의 석유수출 주요 시장이 다 같은 유럽이어서 타격은 더욱 크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라크가 하루 생산량을 150만 배럴에서 300만 배럴까지 늘린다면 현재 배럴당 30달러인 유가가 장기적으로 20달러까지 떨어져 러시아 석유산업이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인 18달러 선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미국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는 한 이라크 확전에 선뜻 찬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지부진한 미국 연합전선

유엔을 통하지 않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무력응징을 위한 주변국의 군 기지제공 등 ‘협조’ 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이 걸프전을 이끌 당시의 31개국 연합군에 비하면 아들 부시 대통령이 지금까지 모은 연합세력의 성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지금까지 무조건적 지지를 밝힌 국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염원하고 있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정도에 불과하다. 카타르가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 사용을 허가했으나 제한적이고, 지지의사를 밝힌 호주 폴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도 아직까지는 물리력이 동반되지 않은 ‘선언적’ 동참에 그치고 있다. 미국 최대의 맹방인 영국조차 의회와 행정부 일각에서 파병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해지는 추세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노벨위원회의 “카터의 수상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의미가 있다” 는 이례적인 성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부시 대통령을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반전세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황유석 기자

입력시간 2002/10/29 17:36


황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