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가을 골프의 두 얼굴

요즘은 날씨가 ‘너무 행복하다’. ‘너무 좋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행복하다’까지 말하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이 땅에 사는 골퍼들에게 요즘처럼 운동하기 좋은 때도 흔치 않다. 사계절이 뚜렷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지만 유독 골퍼들에게만은 꼭 그렇지 않다. 겨울이 되면 아쉽게도 클럽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철은 골퍼들에게 ‘황금의 계절’이다. 티없이 투명한 푸른 하늘, 온통 붉게 물든 단풍, 코끝을 자극하는 선선한 바람, 여기에 18홀의 그린에서 만날 수 있는 붉은 저녁 노을… 이 모든 것들이 ‘가을 골프’ 의 매력이다.

하지만 가을 골프에도 함정이 있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가을이 되면 그간 잘 맞던 아이언 샷이 아무 이유없이 ‘악성 훅’은 아니지만 약간 왼쪽으로 틀어져 날아가는 것을 종종 느낄 것이다. 그건 샷의 문제가 아니라 잔디가 여름보다 볼을 받치는 힘이 떨어져서 클럽이 미끄러져 나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럴 때는 스윙을 의심하지 말고 스윙을 한 템포 부드럽게 해주면 된다. 클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아이언 샷은 지표면에서 3~5㎝ 정도 떠 있는 상태가 가장 치기 좋다. 티를 꼽으면 볼이 잘 뜨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지만 가을에는 잔디가 누워 있기 때문에 이런 효과가 반감한다. 따라서 여름보다 스윙 템포를 천천히 가져 가면 효과적이다.

두번째 함정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다. 가을 바람은 은근히 공의 구질을 바꾼다. 따라서 잔디를 조금 뜯어 허공에 날려 바람의 방향과 크기를 살펴야 하다. 가을에는 바람이 안 부는 것 같아도 공이 떨어질 때 의외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싱글 골퍼로 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도 큰 변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번째 함정은 새벽과 낮 사이의 기온 차가 많이 난다는 점이다. 낮이 되면 필드가 마르기 때문에 같은 클럽을 잡아도 새벽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 기온 차가 거리를 늘려주는 것이다. 그럴 때는 비거리가 늘었다고 좋아하지 말고 한 클럽씩 짧게 잡아줘야 한다. 참고로 비거리는 주로 여름에 늘지 가을에는 잘 늘지 않는다.

특히 습도에 민감한 그린에서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가을에는 잔디가 힘이 없고 말라 있어 그린 위에서 여름에 비해 ‘라이’를 덜 봐도 된다. 그리고 여름보다 훨씬 잘 구르기 때문에 힘 조절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네번째 함정은 아이언 샷의 ‘디보트’다. 가을에 플레이할 때는 페어웨이든 그린 근처든 잔디 속이 건조해 빗자루를 쓰는 듯한 느낌으로 샷을 해야 한다. 잔디 결이 약해 여름처럼 디보트를 판다는 생각으로 찍어 치면 샷이 밀리거나 훅이 걸린다.

하지만 이런 함정도 가을 골프의 즐거움을 막지는 못한다. 봄부터 손에 잡히기 시작한 스윙 감이 이제 절정에 올랐고, 언제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가 나올지 기대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골퍼들에게 가을은 기대와 위험이 함께 도사리고 있는 계절이다.

입력시간 2002/10/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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