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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즐겁다] 밀양 재약산

[주말이 즐겁다] 밀양 재약산

만산홍엽 위에 펼쳐진 억새천국

마음속까지 붉게 물들이는 선홍빛 단풍의 계절, 가을이다. 단풍과 함께 가을을 대표하는 주인공은 억새다. 사색에 잠긴 시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피어난 억새의 자태는 보는 이들에게도 정숙함을 강요한다.

억새는 고요히 침묵하다 어느 순간 바람이라도 불면 일제히 일어나 한판 춤사위를 펼친다. 세상의 번뇌를 모두 털어 내겠다는 듯이 신명 난 춤판을 펼치며 물 속을 무리 지어 헤엄치는 은어 떼처럼 들판을 달려간다. 그 신나는 어깻짓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흥겨워지고 그 속으로 무작정 달려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가을의 두 정령, 단풍과 억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는 없을까. 억새천국으로 유명한 재약산(1,108m)이라면 가능하다.

경남 밀양시 재약산은 밀양시와 청도군 울주군 양산군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 산군이 빙 둘러 장막을 친 가운데 들어앉았다. 정상에 120만평의 억새밭이 펼쳐진 사자평고원을 머리에 이고 있어 한국 제일의 억새명소로 꼽힌다. 특히 표충사에서 사자평고원으로 가는 길은 황금색과 붉은빛이 어울린 단풍의 물결도 펼쳐진다.

산행은 표충사를 들머리로 흑룡폭포-층층폭포-재약산-사자평고원-천황산-서상암-표충사로 돌아오는 코스가 안성맞춤이다. 6시간쯤 걸린다.


표충사의 땀 흘리는 표충비각

표충사 매표소를 지나 시원한 숲 그늘을 지나면 절 마당이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일으켰던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신 후 대찰로 거듭났다. 경내는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구역과 부처를 모시는 사찰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웅전과 삼층석탑 등이 눈여겨볼 만하다. 표충사가 배출한 걸출한 선승인 효봉이 남긴 열반송인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천강(千江)에 비치니라”를 외며 절간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경내 한쪽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각도 있다.

표충사에서 표충교까지 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난 길을 걷는다. 10분쯤 가면 등산로는 계곡으로 묻힌다. 30분쯤 계곡을 따라 오르면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게 되고, 발아래 흑룡폭포가 가는 허리에 물을 싣고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40분쯤 오르면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층층폭포?나온다. 층층폭포에서 100m쯤 오르면 표충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따라가면 사자평고원으로 가게 되고, 등산로를 따르면 재약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출렁이는 억새바다

임도에서 벗어나 재약산으로 오르는 길에 폐교된 고사리밭등분교와 집터가 있다. 한때 사자평고원을 파먹고 살던 화전민들의 애달픈 삶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들이다.

고사리밭등분교에서 재약산 정상까지는 20분 거리. 이곳부터 억새밭의 장관이 펼쳐진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평야처럼 부드러운 고원에서 자란 억새의 장관은 오로지 감탄사만을 필요로 한다.

여인의 가슴처럼 마주보며 봉곳하게 솟아 있는 재약산과 천황산의 서쪽 사면으로 억새바다가 출렁인다. 억새의 수술에 걸린 햇살이 부서지는 광경에 취하면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재약산에서 천황산까지는 40분 거리. 20분은 내려가고 20분은 올라간다. 하지만 억새의 유혹에 빠지면 시간은 한없이 흐르기 마련이다. 천황산 정상에 서면 발아래 숲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표충사가 아련히 보인다. 북쪽으로 영남알프스의 맹주 가지산과 운문산이 드센 어깨를 벌리고 마주한다. 서쪽으로는 여전히 끝없는 억새바다다.

천황산 정상에서 하산은 바위구멍에서 찬바람이 솟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과 표충사로 내려가는 길 두 갈래. 내려가는 시간은 엇비슷하지만 표충사로 가는 것이 경치가 좋다.

천황산에서 표충사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면 산은 언제 그랬나 싶게 단풍의 물결에 휩싸이고 만다. 억새물결은 모두 산 뒤로 숨고 울긋불긋한 단풍터널의 연속이다. 40분쯤 내려오면 서상암. 이곳에서 샘물로 목을 축인 후 10분쯤 내려오면 금강폭포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금강폭포에서 표충사까지는 30분쯤 걸리며 계곡은 한없이 유순하기만 하다. 하산 길에 가끔씩 뒤돌아보면 천황산 정상부의 바위성채를 둘러싸고 붉디붉은 단풍의 바다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가을 속으로 빨려 들게 된다.

김무진 여행칼럼니스트 badagun@hk.co.kr

입력시간 2002/10/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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