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독과점적 세계화 정책의 허와 실


■세계화와 그 불만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송철복 옮김/세종연구원 펴냄)

이 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우선 저자의 경력 때문이다. 그는 1993년 대학을 떠나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아 정부 개혁을 주도했으며, 97년부터 3년 간은 세계은행 선임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던 시기에는 백악관에 있었고, 동아시아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금융위기 때에는 세계은행에 몸 담았다. 세계적 급변기에 이를 잘 살필 수 있는 핵심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IMF 사태는 한국 국민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IMF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각종 정책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논란이 있다. 때문에 세계화 추진의 중심 기구에 근무했던 저자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외환 위기 극복을 도운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저자의 세계화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 아니다. 자유무역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개별 국가들의 경제를 더욱 단단히 통합하는 세계화는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세계의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세계화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또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보다 더 높은 생활 수준을 획득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세계화가 개발도상국들, 특히 그 빈민층에게 미칠 수 있는 황폐화 효과를 세계은행에 몸 담고 있던 시절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 즉 세계화 진행에 큰 역할을 발휘한 국제무역협정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에서 가해졌던 정책들을 포함해 세계화가 운영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또한 믿는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세계화 자체가 아니라 그 관리 방식인 것이다.

저자는 IMF나 미국 재무부 등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집단이 내리는 정책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묻는다. IMF는 위기가 터지면 자신의 정책을 따르도록 되어있는 국가에게 그 정책이 미칠 효과를 고려하지도 않은 채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적절한 해결책을 ‘표준적’이라는 미명 하에 처방했다.

그 결과 IMF 처방은 성공한 횟수만큼 종종 실패하며 심지어는 실패의 빈도가 더 높을 때도 있다. 성공했을 경우에도 그 이득은 부유한 계층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 반면 빈민층은 이전보다 더 가난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념과 정치를 빌미로 내려지는 결정이 적지 않았고, 그런 정책은 문제 해결은 못했지만 권력자들의 이익이나 믿음에는 들어맞았다는 지적이다.

IMF는 고통을 수반하는 정책을 처방하면서 그것은 해당 국가가 성공적인 시장경제를 갖추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의 일부이며, 장기적으로 보면 더 큰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겪은 고통은 필요 이상으로 엄청나게 컸다고 저자는 반박하고 있다.

저자가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런 정책들에 대해 IMF내의 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토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정책의 결과를 보고도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종종 의문을 표시하지만 그들도 IMF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봐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다.

IMF가 제시한 각종 무리한 정책들에 대해 한국 관료들이 침묵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저자의 지적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결론은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세계화’다. 선진국 재무ㆍ통상장관들은 세계화를 대체적으로 하나의 경제적 현상으로 파악하지만, 개발도상권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활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로 훨씬 더한 것이어서 세계화에 대한 사고 방식 그 자체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 기구와 국제금융체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많은 문제들이 비밀주의적 관행에 따라 ‘막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어서 ‘정보에 대한 공개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투명성을 강조했던 IMF나 미 재무부가 가장 투명성이 낮은 축에 속한다는 위선적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슬펐다’고 저자는 썼다.

모든 일에는 여러 측면이 있고, 저자는 단지 자신이 목격한 사실에 대한 해석을 제시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다. 이 책이 지난 10년간을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입력시간 2002/10/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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