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체첸의 눈물과 세계의 눈

1994년 러시아가 연방에서 탈퇴하려는 체첸(자치공화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수도 그로즈니를 공습할 때의 일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한 러시아 특파원이 “체첸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다.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있으나 석유자원이 풍부한 전략 요충지이고, 피의 보복에 목숨을 거는 호전적인 부족이 살고 있고,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또다시 총칼을 들었고, 옐친 대통령에게 맞서다 93년 10월 탱크에 의해 밀려난(10ㆍ3 의사당 유혈사태) 최고회의 의장 루슬란 하스불라토프가 태어난 곳이고…”

“우리가 그 사람들을 얼마나 무서워 하는지 아느냐”

“…”

“아직도 시골에선 할머니들이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체첸 사람들이 잡아간다고 겁을 준다.”

우리는 넓디넓은 러시아 땅에서 용맹한 부족이라면 흔히 율 브린너가 열연한 영화 ‘대장 부리바’에 나온 코샤크족을 떠올린다.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가 니콜라이 고골리의 초기 작품인 ‘대장 부리바’는 16세기 우크라이나 코샤크족과 폴란드간의 치열한 전투 와중에 적장의 딸과 사랑에 빠져 부족을 배반한 아들을 처단하는 처연한 아버지상을 그렸다.

또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미하일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에서도 코샤크족은 거칠 것 없는 기마병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코샤크족 집안인 메레호프가(家)의 차남 그리고리가 1차 대전, 볼셰비키 혁명을 거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코샤크족의 투혼과 운명이 처절하게 그려진다.

두 작품은 가족과 사랑, 조국애를 테마로 삼고 있지만 밑바닥에 흐르는 키워드는 역시 폭력이다. 참혹한 전쟁과 적대감속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질러지는 국가권력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코샤크족에 비하면 체첸은 러시아의 문학작품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940년대 중반 소련 중앙정부에 저항하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체첸의 비극을 묘사한 ‘황금색 구름은 비쳤다’(1987년, 아나톨리 프리스타프킨)가 그나마 주목을 받는 정도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의식 속에는 체첸이 코샤크족보다 더욱 깊게 각인돼 있다. 러시아에 복속된 19세기 중엽부터 모스크바에 정치적 변혁기가 찾아올 때마다 늘 독립의 깃발을 높이 든 체첸 특유의 저항의식과 피의 복수극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네 할머니가 ‘호랑이가 잡아간다’거나 ‘(일본인) 순사가 온다’ 며 겁을 주었던 기억 속의 호랑이와 순사가 러시아에서는 체첸으로 연결되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체첸은 최근에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소련 붕괴와 함께 체첸은 특유의 단결력과 호전성으로 모스크바의 밤을 지배하는 ‘체첸 마피아’로 변했다. 톰 크렌시에 버금가는 영국의 베스트 셀러 작가인 로빈 무어가 쓴 ‘모스크바 커넥션’(1995년, 일요신문사)에는 전세계 테러집단과 연결해 밤의 제국을 꿈꾸는 체첸 출신 마피아 보스가 등장한다.

체첸의 상징은 사나운 늑대다. 체첸 국기에는 체첸의 4,200여 산봉우리를 상징하는 산과 달빛 아래 울부짖는 늑대가 그려져 있다. 또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군을 괴롭힌 체첸의 야전사령관 샤밀 바사예프는 ‘외로운 늑대’로 불렸다.

한때 현상금 100만 달러가 걸렸던 그는 러시아에겐 ‘공적 1호’였지만 체첸인들에겐 존경받는 ‘늑대’였다. 전쟁터를 종횡무진 내달렸고, 기회가 생기면 러시아로 나와 95년의 부됴노프스크 병원 인질극과 같은 인질극을 주도했다. 러시아군은 그를 수년간 추적한 끝에 지난 4월에야 사살할 수 있었다.

바사예프에 비하면 이번 모스크바 인질극을 주도한 모프사르 바라예프는 테러전의 애송이라는 느낌이다. ‘히트 앤드 런’ 전법으로 전 세계에 박해받는 체첸을 알렸던 바사예프와 달리 그는 ‘자폭’으로 배수진을 쳤다. 그도 러시아의 ‘강공’을 예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강공은 불행하게도 200여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예전 같았으면 러시아의 무모한 진압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을 테지만, 9ㆍ11 뉴욕 테러 사건 이후 달라진 국제기류를 반영하듯 국제 사회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체첸 반군의 인질극은 대부분 “함께 알라신 앞으로 가자”는 회교도들의 항전, 즉 종교전쟁의 성격도 띠고 있다. 그렇다고 문명충돌의 하나로 확대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수의 억압에 대한 소수의 저항이 폭력으로 나타난 전형이 아닐까.

문명의 공존이든, 다수와 소수의 공존이든, 화급한 것은 상대를 보는 이성적인 눈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에드워드 사이드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오리엔탈리즘’(1978년)에서 “서양은 동양을 공격적, 광신도적, 비합리적인 사람들로 보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머리 속에 박힌 “체첸 사람들이 잡아간다”는 두려움을 버릴 때 체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2/11/0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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