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비밀지키기와 누설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벌어진 국가정보원의 도청과 정보 누설 공방전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은 “도청은 미국 CIA(미국 중앙정보국)도 하지만 국익을 위해 한다. 하지만 현정권은 정권유지와 사적보복을 위해 도청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질세라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씨는 10월 27일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요원들의 비밀정보 누설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는 “국정원 일부 인사가 정치권 줄대기를 하는 바람에 국정원이 이 모양이 됐다.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대충 안다” 고 혀를 찼다.

미 CIA 국장(1966~1972년)을 지냈고 ‘비밀을 지킨 사람’(논픽션작가 토마스 파우어가 1979년 발간한 CIA의 비밀과 누설에 관한 책 이름)이란 별명을 듣는 리차드 헬름스가 22일(현지시간) 89세로 사망했다.

헬름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CIA와 대통령간의 관계에서 정보책임자는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정보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를 그렇게 돋보이게 하는 데는 지금도 86세 나이에 ‘전국공중 라디오 방송’(NPR)에서 주말 해설을 하고 있는 다니엘 쇼어가 기여했다.

쇼어는 작년 10월에 60여년의 방송기자 생활을 회고하는 특집방송 ‘아직도 방송을 하면서’를 진행하면서 헬름스와의 만남을 담담하게 전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직한 닉슨에 이어 대통령이 된 포드는 1907년 1월 CIA의 국내 불법활동을 조사한 록펠러 위원회를 만들었다.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뉴욕타임스 편집 간부들과 오찬을 가졌을 때 로젠탈 편집국장이 “무엇을 조사 할거냐”고 묻자 “살인 같은 짓이다”라고 스스럼 없이 말했다.

‘CIA와 살인’은 엄청난 뉴스였기에 백악관 대변인은 ‘보도관제’를 내렸고 뉴욕타임스는 이에 수긍했다.

그러나 그때 모스크바와 베를린 특파원을 지낸 CBS의 워싱턴 지국 소속의 쇼어는 이 ‘살인’발언을 전해 듣고 자기는 보도관제에 해당이 안 된다며 추적에 나섰다. 그는 당시 CIA국장 콜비와 인터뷰를 갖고 “1973년 이후 CIA는 모든 살인 관한 행위를 중지하라는 대통령 명령을 받은 후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쇼어는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모든 기사가 기피했던 몇몇 외국수뇌에 대한 CIA 암살개입이 이번 록펠러 조사로 확대될지 모른다”고 보도 했다. 포드는 의회와 함께 록펠러위원회가 CIA의 국내외 권한 남용에 대해 조사토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72년 닉슨에 의해 해임되다시피 CIA를 떠난 헬름스는 75년 4월 상원 청문회에 소환되고 이틀간의 증언후 쇼어를 만나게 됐다.

헬름스는 UP통신사의 베를린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히틀러를 인터뷰 할 정도로 침착하고 신중한 정보맨이었다. 그런 그가 쇼어를 보자 고함을 질러댔다.

“이 개자식아! 네가 바로 살인자다. 너는 남색가다. 살인자 쇼어라고 사람들이 꼭 너를 불러야 한다.”

헬름스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침입을 국가안보를 위해 CIA가 민주당을 도청한 것으로 은폐하려는 것을 거절하는 바람에 해임됐다며 이를 원통하게 생각해왔다. 그는 케네디 때의 쿠바의 침공, 존슨 때의 국내 반전 데모대 배후 조사 등에 대해서도 말했다. “나는 항상 그때 그 대통령만을 위해 일한다. 나에게는 오직 그때의 그 대통령만 있다”며 비밀서류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닉슨은 이 서류를 돌려주지 않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는 데 CIA를 이용했고 헬름스는 이를 거절했다.

헬름스는 쇼어가 외국수뇌 살인혐의 조사가 포드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말해 준 뒤에야 입을 열었다. 헬름스는 법정 모독, 의회위증 등 혐의로 76년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 달러를 선고받았다. 그는 의회 증언이나 재판에서 살인교사나 권력남용혐의에 대해 말했다.

“나는 CIA에 들어갈 때 비밀을 지킬 것을 선서했다. 그 선서를 지키기 위해 나는 비밀을 지키겠다.”

레이건 대통령이 82년 그에게 국가안보메달을 주자 그는 코멘트 했다. “이 메달은 내가 저지른 불법에 대한 면죄부다.”

쇼어는 76년 하원 윤리위가 배포를 금지시킨 파이크의원회 보고서(CIA의 불법행위에 대한 예증)를 보도해 의회 모독죄로 소환되었다. 그는 ‘왜 출처를 밝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누가 문서를 준 사람의 이름을 대는 것은 나 자신과 내 인생과 내 경력을 배반 것입니다. 옳은 일이 아니기에 이름을 댈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의회는 그를 고발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정보 요원들은 헬름스와 쇼어 이야기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11/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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