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민석 전 의원

"변절자 비판, 역사가 평가할 것"


386세대는 탈당 전 이미 정서적으로 분열…노 후보에 미안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당을 옮기게 됐습니다. 수구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내린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지요”

10월17일 민주당을 전격 탈당, 정몽준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통합 21로 둥지를 옮긴 김민석 전 의원은 10월 25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탈당은 후보단일화라는 대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지금은 당장 나를 철새니 배신이니 변절자니…라고 비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민주당에 남아 적당히 명분을 지키며 쉽게 가는 길보다는 감투정신을 갖고 한나라당을 이겨보겠다는 목표를 갖고 당을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선ㆍ후배에게 무척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며 “(본인 탈당과 관련) 모든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고 그러면 그들도 나를 이해해줄 때가 올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후보 단일화 위해 문 박찬것”


- 당적변경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수구세력인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소외돼 가고 있어요. 3김 정치가 끝난 우리 정치는 합리적인 중도노선의 정치세력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국민 상당수가 단일화를 희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노 후보는 원칙만 앞세우고 있어 사실상 단일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젠 현실적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1차적인 민심단일화에서 종국적인 후보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온 것입니다”


- 탈당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텐데.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고민이 많았죠. 먼저 당내에서 나를 아껴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디다. 그러나 판단에서 결단까지 지체되면 일이 성사되지 않습니다.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들었지만 대선승리라는 큰 틀에 기초해서 결정했습니다”


-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출마하며 상대적으로 노 후보 덕을 많이 본 편인데.

“재선 경력으로 시장선거에 나서 봤으니 노 후보 덕도 많이 보고 민주당 은혜도 많이 입었죠.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틈 나는대로 옛 동지들에게 전화해 해명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노 후보에게는 전화드리지 못했어요” (이어 노 후보께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곧바로 ‘당연하죠’라고 힘주어 말했다)


- 민주당내 386 세대들이 특히 비판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도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친구들에게 꾸준히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허인회ㆍ우상호씨 등과는 통화를 했는데 임종석 의원은 화가 많이 났는지 전화를 해도 통 받지도 않고 연락도 하지 않고 있어요. 서운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386 동지들은 본인의 탈당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쓴 웃음을 지며) 좋은 소리야 들었겠습니까.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욕먹을 각오를 갖고 가니 마음껏 비판하라고 말했습니다. 당분간 서로가 서운함은 감수해야겠지만 크게 보면 함께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퉈야 할 사이도 아니고 영원히 척을 질 것도 아니니까요”


- 부인인 김자영(전 KBS 아나운서)씨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내가 탈당 전날 밤 아내에게 통보하다시피 말을 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을 할 거라고요.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내 성격을 아니까 아내가 농담조로 얘기하더군요. 내일부터 집에 전화가 빗발칠 테니 전화를 팩시밀리 수신용으로 전환시켜야 되겠다고요” (그는 이 대목에서 또 한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 탈당까지의 과정이 궁금한데.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탈당하게 될 지 몰랐습니다. 전용학, 이완구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후 민주당 선후배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참석자들이 후보 단일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니 빨리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먼저 하겠다는 말이 없었어요. 식사를 끝나고 나오는데 국민통합 21의 한 당직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거기서 그가 입당제의를 강력히 해 오더군요. 그래서 딱 이틀간 고민한 끝에 결정했습니다. 정 의원은 입당 발표 전까지 만난 적도 없습니다”


민심이 날 움직이게 했다


- 신기남 의원은 김 전 의원 탈당에 대해 청와대 배후설을 주장했는데.

“(어이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정치생명이 걸린 중대한 일을 남이 시킨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배후가 있다면 변화하는 민심이겠죠. 재선의원으로 서울시장 후보까지 나갔던 정치인이 누구의 입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김경재 의원은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정 의원 밀어주기’를 놓고 항의하기도 했다.

“(김 의원의 행동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그랬겠지요. 박 실장이 정 의원을 미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득표전에 유리할 것이란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봅니다”


- 근거리에서 보는 정몽준 의원은.

“사람을 100% 알기란 힘든 일 아닙니까. 크게 봐서 대통령 후보의 자질이 있는가, 시대 흐름에 맞는 적임자인가가 판단의 중요한 요소겠지요


- 이번 대선은 어떤 구도로 치러지게 될 것으로 보는지.

“물론 두 후보의 단일화를 바라고는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 후보가 다투게 되겠지만 그 이전에 이회창-정몽준 의원의 양강구도로 압축될 것으로 봅니다”


- 노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고 정 의원이 떨어지면 그때 가서 민주당에 다시 돌아올 것이냐는 비판적 견해도 있습니다.

“내가 탈당해서 노 후보에 대한 후원금 액수도 늘었다던데, 역설적으로 보면 내가 도와준 셈이죠. (웃음) 기존 지지층에 대한 결속은 있겠지만 아마 노 후보가 정 의원을 제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정 의원의 지지도가 비록 지금 주춤하고 있지만 조정기를 거쳐 양강구도 속에 최종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한나라 집권 막기위한 정치적 결단


-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비난의 글이 빗발칩니다.

“사실 미련한 결단입니다. 점잖게 뒤편에서 민주당에 남아 있었더라면 명분도 있고 모양새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기회주의자처럼 한나라당으로 간 것도 아니고 선두도 아닌 정 의원 편에 선 것은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저 나를 걱정하는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할 따름입니다”


- 386 세대들의 표심이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내가 탈당하기 이전에 이미 386세대는 정서적으로 분열된 상태였습니다. ‘386은 곧 민주화 개혁세력’으로 통하던 시절에서나 일치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지 이제는 아닙니다. 30대의 지지도를 보면 노 후보보다 정 의원이 더 높게 나오고 있어요. 오히려 일부 정치인의 고립주의 노선이 세대분열과 개혁성향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가져다 준 결과라고 봅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1/01 16:12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