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신화의 종언] 민중과 고락 함께 한 민주화 적자시대

구세와 신세대 사이의 '낀 세대'로 잊혀질 가능성도

‘386 세대’란 말 그대로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쓰여지기 시작한 후 시간이 흘러 이미 40대가 넘어선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386 세대’는 ‘4·19 세대’, ‘6·3 세대’, ‘긴급조치 세대’와 함께 한 세대가 공유하는 독특한 그 무엇을 보여준다.

필자 또한 386 세대의 조건 가운데 1979년에 대학을 입학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조건은 공유한다는 점에서 크게 보아 광의의 386 세대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습의 절반은 세상에서 체험

386 세대에 대해 먼저 지적할 것은 이 세대가 갖는 시대적 조건이다. 1960년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바로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대와 전두환 정권의 시대에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를 보냈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성장만이 지상과제였고 정치적 억압이 강화된 이 시대는 우리 현대성의 명암이 극적으로 교차한 시대였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교련교육을 받으며 입시에 주력했던 이 세대가 정작 대학에 입학해서 만나게 된 것은 캠퍼스에 상주하던 사복 경찰들 아니면 뿌연 최루탄 가스였다. 이 세대가 민주화에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가질 수밖에 없던 것은 이미 예정된 경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세대이건 모두 자신의 젊은 시절을 특권화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1980년대 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독특한 체험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1979년 대학에 입학한 시인 기형도는 당시 대학의 풍경을 다음과 같은 노래한 바 있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그리고 졸업이었다.” 1980년대 초반의 우울한 캠퍼스 풍경을 전하는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세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강의실 안보다는 밖이 주요 학습의 체험장인 세대였다.

그리하여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등 암호와 같은 변혁이론을 공부하고 집회가 일상화된 대학시절을 보냈던 세대가 다름 아닌 386 세대다.

386 세대를 찬찬히 들여다볼 때 물론 ‘세대 내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7년을 분기점으로 이전 세대가 극단적인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다면 이후 세대는 6월 항쟁 이후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80년대 후반 학번 세대는 그 이전 세대보다 학생운동으로부터 더 큰 세례를 받았다. 강의실 밖에서 선배들로부터 변증법을 배우고 대중가요보다는 민중가요를 즐겨 부르며 저녁이면 학교 앞 술집에서 토론에 열중하던 것이 당시 대학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사회운동의 선봉에 서서 정치변화 촉구

하지만 이런 세대내 차이는 386 세대가 이전 70년대 학번 세대와 이후 90년대 학번 세대와 구별되는 ‘세대간 차이’보다 큰 것은 아니다.

1970년대 후반에 긴급조치 세대가 없지는 않았으나 70년대 학번 세대가 대체로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표되는 ‘청년문화 세대’였다면, 90년대 학번 세대는 대중문화와 개인주의에 익숙한 ‘신세대’ 또는 ‘X 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80년대 학번 세대는 한국의 민주화와 함께 고락을 경험한 세대이자 민주화의 적자 세대이기도 하다.

사회운동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386 세대는 서구의 ‘68 세대’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 1960년대 후반 ‘68 운동’을 이끌었던 68 세대는 자율·자치·연대를 이상으로 내세워 서구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추구했던 세대다.

이들이 주축이 돼 환경, 평화, 여성운동 등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일어났으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주의 이념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 68 세대의 특징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들만의 개성을 계속 간직해 왔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그 이념에서 서구 68 세대와 우리 386 세대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68 세대가 기존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모두 거부했다면, 386 세대는 대체로 전통적인 진보주의에 이념적으로 가까웠다.

이는 무엇보다 분단현실과 급속한 산업화라는 우리사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후 386 세대는 진보적인 정치세력과 사회운동의 핵심 지지집단으로 자리잡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부터 386 세대 안에서는 ‘비판적 지지냐, 독자후보 지지냐’를 놓고 이런저런 논쟁이 계속돼 왔지만, 대다수 386 세대가 크게 보아 진보주의를 선호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진보성향과 권위적 사고방식 공유

이런 386 세대의 성향은 종종 이후 세대인 신세대와 비교되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듯이, 신세대는 딱딱한 사회과학보다는 흥미있는 대중문화를 선호하고, 사회적인 이슈나 관심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생활을 중시하는 세대다.

386 세대가 보기에 신세대가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이기주의적인 세대라면, 신세대가 보기에 386 세대는 진보주의적인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세대다. 진보적 성향의 386 세대는 스스로 권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신세대가 보기에 386 세대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는 권위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386 세대가 이제 어떤 분기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한편에서 386 세대는 여전히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으며, 특히 정치권과 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대체로 ‘운동권 세대’답게 진보와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386 세대는 한 가정의 중심으로, 조직의 중간간부로 기성 시대에 편입돼 가는 중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런 이중적인 성격은 이들 대다수로 하여금 급진적 개혁보다는 온건한 개혁을, 분노와 저항보다는 합리적 대안을 선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386 세대의 경향은 앞으로 쉽게 변화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386 세대의 경험은 세대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연속성을 갖는다기보다는 오히려 단절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미 그 일부는 40대에 들어선 386 세대가 향후 우리사회의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이들이 과연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세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낀 세대’로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사회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그에 비례해 세대간 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세대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한 민주주의 성취가 과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386 세대의 가장 큰 자산이 ‘민주화 세대’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소망적 가치의 하나다.

따라서 386 세대가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이에 헌신하는 한 이들의 역할과 의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실현가능한 민주주의를 전체 사회와 생활세계에서 어떻게 성취하는냐가 386 세대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이며, 그 결과에 따라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이뤄질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사회학

입력시간 2002/11/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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