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아요"

솔빛별 가족 두번째 세계여행

1997년 온 가족이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솔빛별 가족’이 11월 초 다시 세계로 간다.

미국 캐나다 케냐 등 27개국을 탐험했던 97년에 이어 두 번째로 떠나는 온 가족의 세계여행이다. 1년 일정으로 97년에 땅을 밟지 못한 대양주ㆍ남미ㆍ아프리카ㆍ북유럽ㆍ인도ㆍ중국 등지를 탐험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솔빛별 가족의 세계여행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다. ‘딸 셋을 데리고 1년 간의 세계여행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가다니! 애들 학교 공부는, 여행 경비 마련은 어떻게?’ 애들 손 붙잡고 가족 모두가 휴일 나들이 떠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영화 속 얘기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면서요? 여행도 많이 다녀본 사람이 더 깊은 묘미를 발견할 수 있어요.”

엄마 노명희(40)씨는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 바로 참교육”이라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첫 여행 때는 맏딸 예솔이가 초등학교 4학년, 한살 어린 쌍둥이 자매 한빛, 한별이가 3학년이었다. 이제는 엄마 키를 훌쩍 뛰어 넘는 165~167cm까지 자란 대견한 딸들. 당시에는 너무 어려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드넓은 세상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시야 넓혀주는 것이 참교육"

“가족이라고 모두 속속들이 다 잘 아는 게 아니잖아요. 모든 걸 떠나서 온 가족이 1년 동안 함께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아빠 조영호(45)씨는 ‘세상 구경’보다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여행에 대한 설레임은 달콤하지만, 준비는 수월찮다. 1차적인 문제는 여행 경비 조달이다. 다섯 식구 비행기 요금에, 하루 세 끼 365일 식비 등 들어가는 돈이 상당할 터이다. 예상 비용은 약 1억원. 현재 살고 있는 일산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자금을 빼내 여행을 간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걸림돌이다. 중학교 1ㆍ2학년인 아이들의 학교 교육은 그냥 1년 쉬기로 했다. 어찌 보면 참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솔빛별 가족은 이번 선택에도 후회가 없다. 아니 자신만만하다. 돈은 여행을 다녀와서 벌면 될 것이고, 학교 진도는 1년 뒤로 미루면 될 것이다. 대신 더 큰 수확을 안고 돌아올 생각이다.

솔빛별이 6mm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올 ‘디지털 문화탐험’이 그 야심작(?)이다. 솔빛별은 올 초부터 서울시립 청소년정보문화센터, 문화연대 등의 영상편집ㆍ시나리오 습작 과정을 들으며 기본 준비를 다져왔다.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영상작품으로 만들 작정이다.

“단순한 방랑이 아닌 ‘취재 여행’인 셈이에요. 세 자매가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든다는 게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거 같아요.”

솔빛별은 디지털 영상작품을 통해 각자의 특기를 살리고자 한다. 진솔하게 글을 잘 쓰는 막내 한별(13)이는 작가로, 활달한 성격의 다재다능한 둘째 한빛(13)은 연출가로, ‘탤런트’란 별명처럼 예쁘장한 외모가 돋보이는 맏언니 예솔(14)이는 진행자로 참여한다. 기자 출신의 아빠와 작곡가인 엄마는 이들의 재능을 꽃피워줄 든든한 후원자다.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솔빛별 가족의 삶에도 규칙이 있다. 가족 구성원의 일은 언제나 대화와 토론으로 풀어나간다. 이번 세계여행 또한 온 가족이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작은 원칙을 갖고 있다.

“식구가 많다보니 음식을 놓고 다툴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정해진 원칙이 있죠. 예를 들어 사탕이 4개면 아버지를 제외한 네 사람이 먹고, 사탕이 3개면 세 자매가, 2개면 엄마 아빠가, 1개면 아빠가 드시는 식이죠.”


"의지를 기르고 돌아오겠다"

가훈도 재미있다. 기본어는 ‘미래는 ( )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이고, 괄호 부분은 항상 상황에 맞게 새로운 수식어로 채워나간다. 처한 상황에 맞게 ‘협동해서’ ‘용기있게’와 같은 다양한 수식어를 괄호 안에 넣어 참신한 가훈을 만드는 것이다.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개발해나가는 솔빛별 가족.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보다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키우고 싶다”며 “험난한 세상을 더불어 헤쳐나갈 수 있는 의지를 기르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동화같은 제주생활기 책으로 펴내

솔빛별 가족은 첫 세계 여행에서 돌아온 1999년 1월, 돌연 제주도로 이사를 가서 2년 여를 보냈다. “세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보다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이들 가족의 낭만적인 제주도 생활이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똥개라도 넌, 찾아올 수 있겠지?’라는 기발한 제목의 생활기다.

제목의 ‘똥개’는 제주도에서 솔빛별 자매가 아꼈던 개인 ‘바람’이를 지칭한 것. 일산으로 이사한 뒤 헤어진 바람이를 그리워하며 붙인 제목이다.

구성도 독특하다. 대표 집필자가 없이 가족 모두가 글을 쓰고, 편집을 했다. 가족 일기를 바탕으로 편집장 격인 엄마가 재구성을 했다. 출판사도 ‘솔빛별’이란 이름으로 등록을 하고 직접 펴냈다.

이 책에는 솔빛별 가족이 2년 동안 그림 같은 마을인 제주도 애월에 머무르면서 겪었던 얘기들이 꼼꼼하게 담겨있다. ‘이쁜이 문구’ ‘기쁜소리사’ ‘왔구나 그릇’ 등 이름도 재미있는 애월 마을의 구석구석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정겨운 이웃들을 떠올리는 대목에는 마치 수십년을 살아온 이웃 같은 따스한 교감이 느껴진다.

세속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이들의 천진난만한 삶의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넓고 넓은 바다를 네 명의 소녀(?)들이 휘젓고 다니는가 하면, 개 거북이 닭 토끼 등 총 33마리의 동물로 ‘동물의 왕국’을 만들기도 했다. 애월 바닷가에서 어설픈 강태공 흉내도 내고, 텃밭을 가꾸어 직접 재배한 채소를 먹으려는 야무진 꿈을 꾸다 실패도 맛봤다. 낯선 환경 속에서 특유의 천진함으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신선하다.

“제주도의 삶은 우리 가족이 내적으로 성숙해지는데 큰 도움을 준 값진 시간들이었다”고 솔빛별 가족은 강조한다. 이들 가족의 “늘 새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 발 물러서 바라보는 삶의 넉넉한 ‘여유’를 전한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1/01 19:03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