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TOWN] 한 영혼을 사로잡은 중독된 사랑


'중독'
(감독 박영훈 주연 이미연 . 이병헌)

제목에서부터 왠지 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영화 ‘중독’은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이병헌이 주연한 예전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환생’이라는 것을 프레임으로 잡았다면 이번에는 ‘빙의 현상’을 프레임으로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두 작품 모두 이병헌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영화 ‘번지…’ 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던 이들은 ‘중독’에 어떤 기대를 하게 만들 것이다.

귀신이 씌이는 현상을 ‘빙의’라고 한다면 영화 ‘중독’은 좀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독’은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씌워 느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 뒤 사랑 이야기의 형태로 주물러 모양을 내는 형식으로 이뤄져 사랑의 애틋함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빙의 현상으로 뒤바뀐 사람과 나누는 사랑. 그야 말로 오감, 육감까지 총동원해 딜레마에 빠진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은 어찌 보면 애틋하다 못해 처절한 느낌마저 녹아있다.


진정 귀신이 씌였는가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빙의가 아니더라도 그것과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보았을 법도하다. 가령 입장이 바꿔 버리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이 영화는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는 운명적인 절묘한 타이밍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형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고와 동생의 사고가 같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시작은 이렇다.

우선 은수 역의 이미연, 은수 남편 호진 역의 이얼, 그리고 호진의 동생 대진 역의 이병헌이 함께 평범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대진이 카레이스 결승에 출전하게 된다.

나머지 둘은 극구 반대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집을 부려 카레이스에 출전하고, 거기서 그만 사고로 의식을 잃게 된다. 그 순간 다른 장소에서 형 호진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데 그는 거기서 목숨을 잃고 만다. 형은 죽고 동생은 의식 불명에 빠진 채로 일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여기까지 보면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대진 이병헌이 어느 날 깨어나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대충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겠구나 하고 짐작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환자가 깨어나 ‘빙의’된 엉뚱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짐작했던 뒷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흥미 어린 호기심으로 바뀐다.

이야기의 전개는, 역시 환자가 깨어나면서 들기 시작하는 관객들의 기대 섞인 호기심을 실감나는 연기와 스토리로 관객과 공감을 이루면서 조심스럽게, 또 지루하지 않게 진행된다. ‘빙의 현상’이 과연 저들에게 어떤 일들을 일어나게 할까 라는 관객들의 의문은 영화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풀리고, 영화 제목이 왜 ‘중독’인지도 알게 해준다.

이 영화는 거의 같은 시기에 개봉된 1999년작 일본 영화 ‘비밀’과 같이 소재로 ‘빙의 현상’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표절논란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실 여부는 개봉된 후 사람들이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빙의 현상’에 의해 흥미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상황은 누구나 한번쯤, 특히 수많은 시간을 작품 구상에 투자하는 작가라면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이야기 전개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므로 뚜껑을 열기도 전에 표절이다 아니다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 하다. 중독’을 제작한 박영훈 감독도 “소재는 같을 지 몰라도 전혀 다른 구상에서 출발하는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라고 못을 박았다.


“지독하게 사랑하는 영화다”

박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에 대해 “지독하게 사랑하는 영화다”라고 소개한다. 그는 ‘301 302’ ‘산부인과’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등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하는 등 12년 동안 충무로에서 실력을 다져온 신인 아닌 신인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각종 장비와 화면의 구성 등 각종 셋팅에 섬세하게 신경 쓰는 것이 프로다운 모습을 엿보인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세트는 총 2억여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 졌는데, 호진의 작업실, 은수의 침실과 거실, 카레이서 대진의 차고 등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박 감독의 섬세함 때문인지 각 인물의 느낌을 그대로 녹여놓은 듯한 각 공간은 딜레마에 빠진 그들의 ‘지독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배우들은 흔히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최선을 다해서 좋은 작품을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좋게 그리고 재미있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구요… 재미있습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는 말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곧잘 한다.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 중에서 공감이 가는 말은 이미연과 이병헌이 자신들의 역을 소화하기가 힘들어 무척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연기 활동 중에 가장 힘든 표현이었다고 할 정도니 그 느낌을 잡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간다.

슬픈 감정, 애틋한 감정, 믿기 힘든 상황에 대한 갈등과 답답함… 그것을 표현하는 표정과 몸짓 등을 연기할 때 죽은 사람에 대한 그것과는 달리 상상하기도 힘든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 해야 하는가를 놓고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비단 그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면서 그 느낌이 전달되기 때문에 그 노고를 이해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이들이 ‘중독’을 본다면 나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되리라 본다.

그리고 강력한? 전라의 베드신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주위의 예상을 뒤집고 15세 이상 이라는 등급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그만큼 영혼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랑이 볼 만한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랑을 잃고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지만, 그것을 다시 찾아가면서 그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을 서서히 인정하면서 점점 그 사랑을 확인하고 빠져들게 되는 그것. 이것이 바로 영화 ‘중독’에서 전달 받을 수 있는 중독의 느낌이 아닐까. “치명적임과 지독함이 다른 멜로 영화와의 차이점”이라고 강조하는 박영훈 감독의 첫 작품 ‘중독’을 주목해 보자.

윤지환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2002/11/01 19:1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