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이트] '테크노의 여왕' 이정현

야성이 물씬 풍기는 털옷에, 야생동물의 발톱을 치렁치렁하게 목에 건 원초적인 모습. ‘테크노의 여왕’ 이정현(22)은 전에 없이 옅은 화장과 자연스러운 밝은 갈색 머리가 인상적인 ‘야생녀’로 돌아왔다.

10월 24일 KBS ‘뮤직뱅크’를 통해 8개월 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무대에 선 그는 “떨린다”는 소감과는 달리, 밀가루와 진흙 등을 몸에 덕지덕지 바르는 즉석 ‘보디 페인팅’ 안무를 펼치는 등 ‘깜짝 쇼’로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무대에 오르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정말 신나게 잘 놀아야지’ 하는 생각만 들어요.” 신들린 듯한 ‘열정’은 데뷔 초기의 모습 그대로다.

4집 ‘I love natural’를 발표한 이정현은 전보다 와일드(wild)하면서도 성숙해졌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원초적인 매력이 신무기다. 새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인공적인 모습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갈망이 내내 그녀를 이끌었다고 한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음악은 역시 ‘테크노’다. “테크노 음악은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느낌이 있어요. 사람들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는 데 최고죠.”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트랜스적인 성향을 가미, 한층 세련된 맛을 전한다.


테크노와 전통음악과의 접목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국내 전통 음악과의 접목이다. 타이틀곡 ‘아리아리’의 제목은 전통 민요 ‘아리랑’에서 따왔으며, 가사 또한 떠나가는 연인에 대한 한 맺힌 원망을 담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테크노 음악에다 전통 음악을 덧붙인 실험적인 기법이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쉬운 멜로디와 가사로 구성돼 대중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곡이다.

서브 타이틀곡인 ‘달아달아’에서는 전통 민요 ‘파랑새’의 가야금 연주로 신선한 감흥을 주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로 시작되는 정몽주의 ‘단심가’ 시구가 나오는 동명의 곡에서도 전통의 색채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전통 타악기 소리들이 앨범 전체를 감싼다. 이례적으로 발라드는 포지션의 안정훈이 작곡한 ‘선플라워’(sunflower) 단 한 곡이 삽입됐다.

이정현은 이번 앨범를 통해 전통 음악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일깨우고 싶었단다. “우리나라 전통 음악이 얼마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음악인 줄 아세요? 외국 친구들에게 국악 CD를 틀어주면 다들 깜짝 놀래요. 단순하면서도 한(恨)이 서려 있어요. 너무 자랑스러운 음악이예요.”

전통 음악에 매료된 그녀는 앨범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가야금과 창을 직접 배웠다. 가야금은 이제 스스로 ‘진도아리랑’을 연주할 정도의 수준. “시간적 여유도 없고 손에 물집도 잡혀 고생하고 있지만 너무 재미있다”며 “꾸준히 배워볼 생각”이라고 했다.

가창력을 높이기 위해 창도 배웠다. 겨우 8~9회 밖에 개인지도를 받지 않았는데 효과가 무척 컸다고 놀라워한다. “창을 배운 뒤로는 종전에 6시간 걸려 진행했던 녹음 분량을 단 1~2시간 만에 끝냈어요. 신기할 정도로 배에 힘이 생기고 집중력이 높아졌어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맛에 살아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맛에 산다”는 그녀를 사람들은 ‘신들렸다’고 말한다. 이정현은 자신의 그러한 ‘끼’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유치원 때도 길을 가다 흥겨운 음악이 들리면, 사람들이 빤히 쳐다봐도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의 춤을 미친듯이 췄다”고 고백한다.

학창시절에는 소풍이나 수학여행 등에서 빠질 수 없는 인기 스타였다. “팬 레터를 숱하게 받았어요. 심지어 제가 노래할 때 우는 학생들도 있었죠.” 15세 때 영화 ‘꽃잎’으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된 것도 이러한 광대 끼를 눈 여겨 본 고교 교사의 권유 덕분이었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서 갔더니 ‘꽃잎’ 오디션 공고를 보여주셨어요. ‘너 한 번 나가보라’고 하셨죠. 그때 참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잠시 망설였어요. 강력계 형사로 항상 총을 차고 다니시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연기 경험이 전무했음에도 3,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당당히 캐스팅됐다. 집안에서도 예상 외로 수월하게 영화 출연 허락을 받았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한때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던 이정현은 실제로 자신을 아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제가 무척 복(福)이 많은가 봐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

정식 앨범은 10월 말경 출시된다. 내년 초에는 데뷔 후 첫 콘서트를 계획중이다. 4집 앨범을 내놓자 마자 벌써 5,6집 구상에 들어갔다. 그 작은 몸에 웬 에너지가 그렇게 충만한지….

연기에 대한 애정도 크다. 중앙대 영화과 98학번인 이정현은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며 “먼 훗날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당차게 말한다. 불꽃 같은 정열이 느껴지는 테크노 시대의‘만능 엔터테이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1/01 19:25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