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조폭 전성시대

어린 남자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대개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대통령이라던가 경찰관, 소방관, 과학자 등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별히 남녀의 구분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유전자적인 특성상 강한 힘이 느껴지는 직업군에 저도 모르게 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어린 꼬마라도 부드러운 남자보다는 힘이 넘치고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경찰이나 소방관 등에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매혹을 느끼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요즘 아이들은 마치 친구의 이름을 불러대듯 ‘긴또깡’이라는 이름을 연신 외쳐댄다.

요즘 우리 사회의 문화적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야인시대’일 것이다. 긴또깡이니 쌍칼이니 구마적, 신마적 따위의 족보를 뚜르르 꿰며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인시대’를 즐겨보는 이땅의 노소 남자들에게 물어보라, 왜 그토록 야인시대를 즐겨보냐고…답은 오직 한가지 ‘멋있어서…’이다. 드라마의 전개과정이나 픽션과 넌픽션 사이의 애매하고 황당한 줄타기가 말도 안 된다는 상식적인 비판은 할 필요도 없이 오직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진한 사내 냄새를 풍기면서 의리와 따뜻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주연과 조연들이 차고 뛰고 날아 다니는 만화같은 액션을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서 바라본다.

드라마가 끝나면 그들의 의협심이 담긴 말투와 액션동작을 흉내내고 친구들끼리 서로를 긴또깡, 쌍칼로 부르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아이들은 알까? 사실 그들이 우리나라 조폭의 원조라는 것을...

어느새 조폭은 우리의 안방까지 점령하고 말았다. 영화에서 강하고 다정하고 현명하며 의리있고, 거기다 웃기기까지 한 조폭이 우리의 이웃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이제는 긴또깡이라는 추억의 상품으로 포장돼 우리의 안방까지 안착했다.

그들이 난폭하고 두려운 조폭이라는걸 깨닫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저 멋있는 형님, 위계질서를 잘 지키는 의리있는 아우 정도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아이들이 ‘나도 커서 형아처럼 조폭 될래’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어쩌면 조폭들이 단체를 결성해서 자신들의 고유 이미지를 너무 베껴낸다고 저작권 등의 소유권 내지는 우선권을 들고나와 막대한 판권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연예인 A군이 겪었던 일이다. 밤늦게 술을 마시다가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가만히 보니 그 지역 건달들이었다. A군과 같이 있던 사람들은 다들 누렇게 떠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A군은 인상 험악한 건달들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니들 00형 알어?”

“네? 00형님이요? 저희들이 모시는 형님인데요.”

“나 00형하고 호형호제 하는 사이야. 니들이 잘 모르나본데 00형이 내 뒤 봐주고 있어.”

그러자 험악하던 분위기는 일시에 뒤집어져서 건달들이 새파랗게 질려서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을 갔다. 나중에 A군은 이렇게 실토를 했다.

“내가 그런 조폭을 어떻게 알겠어? 사실 그때 너무 무서워서 이제 죽었구나 했는데 순간적으로 전에 신문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다룬 기사가 생각나더라구. 그때 조폭 계보도가 실렸었거든. 심심해서 계보도를 외워둔게 이렇게 도움이 될줄이야…”

몇해 전, 가깝게 지내던 B와 지방에 내려가게 됐다. B의 지방행사가 있었는데 유람삼아 같이 내려간 내게 B가 말했다.

“내가 거물 하나 소개시켜줄게. 너 000파 라고 알지? 거기 보스 00형이 나하고 친하거든. 내려오면 꼭 자기 보고 가라고 하더라. 나한테 무지 잘해줘. 너도 인사시켜줄게.”

소문으로만 듣던 조폭의 두목급을 만난다는 생각에 은근한 걱정과 기대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먼저 들어간 B가 얼떨떨한 얼굴로 돌아왔다.

“야, 00형이 없댄다. 아침에 학교(여기서 학교라 함은 교육부가 아닌 법무부 관할의 일명 ‘큰집’ 임을 밝혀둔다) 가셨다는데… 어제밤에 통화할때도 괜찮았는데…거 형님도 참…”

입력시간 2002/11/0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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