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는 왜 배신의 칼을 뽑았나

"현대전가 주가 조작 정몽준 후보 관여" 폭탄발언, 진위놓고 사활 건 공방

“내가 말한 것을 가볍게 보면 혼난다. 그냥 말장난으로 넘기려고 하면 정몽준 후보는 물론 정씨 집안까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정 후보는 가장 타격이 적은 것에 대해 검증을 받는 것이 좋다. 정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며칠 더 지켜보겠지만 계속 허튼 소리를 하면 나도 감정이 폭발할 수 있다.”(10월29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지금 와서 이 전 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정 후보가 관여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인간 이익치’를 접해보면 그가 얼마나 이기적인 성격의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이 전회장은 검찰조사 당시 반성문 50장을 제출했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자랑을 엄청나게 했다. 심지어 이 전회장은 자신의 심복인 박 모 현대증권 상무가 범죄사실을 다 인정했는데 이를 부인하다 대질신문을 벌이고서야 무너졌다.”(한 검찰 간부)


이 전회장 “국정조사 증언 용의” 자신감

대선을 앞둔 정권 교체기 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내일 다시 적으로 변하는 ‘배신의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최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폭로한 정몽준(MJ) 국민통합21 대선후보의 현대전자 주가 조작 연루 설은 대권 향방을 쫓아 적을 옮겨 다니는 ‘정치 철새들’과는 또 다른 ‘기업 오너와 가신의 감정적인 정면대결’로 정ㆍ재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 후보의 향후 지지율 변화추이에 따라 양측의 공방전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이들은 내다보고 있다.

일본에 체류중인 이 전 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국정조사가 열려 나를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부르면 그 때 귀국하겠다”며 “지금까지 증거의 20% 정도를 제공한 것일 뿐 상황에 따라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모두 공개할 수도 있다”고 밝혀 추가 폭로 가능성을 짙게 드리웠다.

그러나 이 전회장이 귀국 후 추가 폭로에 나설 가능성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전회장은 현재 2건의 형ㆍ민사 소송에 걸려있는 상황이다. 2000년 9월 현대를 떠나기 전에 불거진 소송 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 형사소송이 3심에 계류 중이다.

이 전회장은 지난해 1월 항소심에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또 정 후보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측이 현대전자 보증문제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현대증권ㆍ전자 법인과 함께 개인으로 걸려 있다.

현대중공업이 2,454억원의 배상을 요구한 이 소송은 현재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1심에서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에 대해 3대 7의 배상 판결을 내려 이 전회장과 현대증권ㆍ전자는 총피해액의 70%인 1,718억원을 공동 배상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있다. 현대증권은 배상액의 절반인 859억원을 납부했지만 이 전회장과 현대전자는 아직 배상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이 귀국할 경우 현대중공업은 859억원을 모두 내놓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다. 설상가상으로 현대전자 양모 이사가 1996년 박노항 전 원사에게 800만원씩을 건네고 이 전 회장의 둘ㆍ 셋째 아들을 카투사 등에 입대 시킨 사실이 밝혀져 이 전 회장은 수배대상에 올라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귀국과 동시에 사법처리는 물론 전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를 맞고 있어 이 같은 ‘험로’를 감수한 채 귀국할 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MJ측 “이익치는 형제의 난 원흉”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2000년 경영권 확보전이 치열했던 ‘왕자의 난’ 당시 이 전 회장 등 가신들이 정몽헌 회장과 MJ사이를 갈라놓았다”며 형제를 이간시킨 ‘원흉’으로 꼽았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대주주가 되지 못한 MJ는 형제간의 갈등으로 중공업의 경영권 승계가 어려운 입장이었고 실제 정 회장측은 계열사를 통해 중공업 지분 매수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경영진들은 MJ에게 정몽헌 회장을 만나 화해할 것을 주문했지만 이 전 회장 등 측근들이 가로막아 번번히 실패했다고 이 인사는 전했다.

이 사태는 결국 MJ가 정 회장 집을 삼고초려 한 끝에 형제가 만나 화해하며 마무리됐다. MJ는 이후 형인 정 회장에게 “이익치를 멀리하라”고 수 차례 조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회장과 MJ간의 공방전은 대선이 막바지에 가까울수록 한층 치열한 열기를 뿜어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권의 후보단일화가 MJ측으로 향하며 그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그리지 않을 경우 이 전회장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현대 오너일가와 가신의 정면대결’ 2라운드는 여권의 후보 단일화 구도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11/08 13:23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