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로잘리드 러셀 영화 3편

로잘린드 러셀 (Rosallind Russell, 1908-1976)은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주연 배우로 활약한 여배우지만, 선이 고운 고전 할리우드 여배우와는 거리가 멀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걸걸한 음성, 큰 키로 성큼성큼 빠르게 걸으며 팔 동작도 아주 크다. 한치도 지지 않는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말솜씨에다 유머 감각도 풍부한 낙천적인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따라서 러셀의 출세작으로는 커리어 우먼이나 상류 사회를 휘젓는 사교적인 인물로 분한 코미디가 많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4번이나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는 못했다.

러셀이 출연한 대표작 3편이 DVD로 출시되어, 우리에겐 낯선 러셀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1940년 작 ‘연인 프라이데이’ (12세, 콜럼비아)부터 감상해 보자. ‘연인-‘의 원 제목은 ‘His Girl Friday’다.

우리말 번역이 엉뚱한데, 로빈슨 크루소의 유일한 말 상대였던 프라이데이에서 따온 것이므로 ‘여비서’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걸작으로 꼽히는 ‘연인-’은 빠르고 재치 있고 지적인 대사를 주고 받으며, 엎치락 뒤치락 소동 끝에 남녀가 해피 엔딩에 이르는 영화 장르를 대표한다.

1920년대 말 브로드웨이 히트 무대극 ‘더 프론트 페이지’가 원작인 ‘연인-‘은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살인을 빼곤 뭐든 했다”는 신문사를 무대로 하고 있다. 유능한 여기자 힐디 존슨(로잘린드 러셀)이 “여자로만 살고프다”며 마마 보이 같은 보험원 브루스(랄프 발라미)와의 재혼을 선언한다.

전 부인이자 최고 기자인 힐디의 재혼을 막기위해 모닝 포스트지 편집장인 월터 번스(케리 그란트)는 힐디의 기자 정신을 부추긴다. 월터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정열을 끄지 못한 힐디는 뻔히 알면서도 월터에 술책에 넘어가 특종 전쟁에 다시 뛰어든다.

케리 그란트와 로잘린느 러셀이 탁구 시합하듯 쉴새 없이 쏘아대는 빠르고 재치 있는 대사 연기는 지금 보아도 현란하다. 원 씬 원 컷 촬영이 적지 않은 연출을 감안해 보면, 이들의 발음 기관이 특수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과 속도의 대사를 소화해 낸다.

‘여인들 (The Women, 15세, 워너)은 여성 영화에 능했던 조지 쿠커 감독의 1939년 작으로, 단 한 명의 남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총 출동시켜 남녀 평등 의식으로 높아져 가는 여성의 지위 욕구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그늘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토로한다.

미국 최 상류층 여성들의 일상 묘사가 재미있고, 머리는 물론 몸매 관리 헬스실까지 있는 미용실 풍경, 그리고 흑백 영화지만 화려한 패션 쇼 장면만은 컬러로 처리하여 여성 관객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영화는 동물에 빗댄 등장 인물과 배우 소개로 시작된다. 메리(노마 쉬어러)는 일과 가정 모두 성공한 여성으로 친구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근데 메리의 남편이 천박한 백화점 여점원 크리스탈(조안 크로포드)에게 빠졌다는 소문이 나고, 메리의 수다스런 사촌 실비아(로잘린드 러셀)가 이를 확인하러 나선다.

모튼 다스코트 감독의 1958년 작 ‘앤티 메임’(Auntie Mame)은 143분 동안 로잘린드 러셀의 선이 큰 연기를 맘껏 볼 수 있는 영화다. 남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떠안게 된 자유분방한 상류 사회 여성이 조카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러셀은 매 신마다 화려한 의상을 갈아입으며 활달한 연기를 보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1/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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