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노래 30년 추억의 숨결이 고스란히

'양희은 30 I LOVE' DVD… 원숙한 음악세계 담은 기념비적 영상소프트

오랜만에 근사한 가요 DVD 한 장을 만났다. 최근 발매와 동시에 인터넷 쇼핑몰의 DVD 판매

순위 ‘톱 10’에 진입한 포크가수 양희은의 DVD다. 그 동안 조용필, 나훈아, 이미자, 패티김, 조영남, 하춘화, 문주란 등 중견 가수들이 자신의 영상 소프트를 발매해 추억의 올드 팬과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 왔지만 대부분 기대 이하였다는 점에서 양희은 브랜드는 더욱 돋보인다.

“가요 DVD는 살 만한 게 없다"며 외면해 왔던 젊은 AV 애호가들과 중년의 가요 팬들은 “모처럼 좋은 음질과 화질로 추억을 되살려 주는 가요 DVD”라며 대표적인 포크가수 양희은의 첫 영상소프트에 만족감을 표명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발매된 대부분 가요 DVD들은 외국의 뮤직 DVD와 비교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조악한 품질의 소프트들로 팬들의 외면을 받아 왔다. 최첨단 음향인 DTS 가요 DVD도 작년에 GOD가 포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올해 들어 서태지를 시작으로 이은미, 윤도현 밴드 등 DVD 컨셉으로 탄생한 젊은 가수들의 DTS 가요DVD들이 출시되면서 상황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지만 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포크계열의 가요 DVD는 찾아보기 조차 힘들었다. 지난 봄에 발매되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고 김광석의 DVD가 작은 관심을 불러모은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양희은 30 LIVE’ DVD는 예상외의 성공을 거둘 조짐이다. 2001년 8월31일~9월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양희은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의 첫날 콘서트 영상을 담은 이 DVD는 한층 성숙해진 양희은의 음악을 보여준다.

2002년 DVD속의 양희은은 1971년 선 머슴애처럼 청바지, 청난방, 청색 운동화, 그리고 생머리에 통기타를 들고 나왔던 첫 모습처럼 여전히 화려한 외모나 의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시적인 김민기의 곡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기존의 낡은 사랑타령을 짓밟아버리는 힘차고 절제된 노랫가락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다.


양희은의 모든 것 담겨

당초 5월에 발표 예정이었으나 무려 다섯 달이나 발매가 지연된 것은 제작을 지휘한 양희은의 음악 스승 김의철과 도종회 킹 레코드 녹음 부장의 고집스런 일념 때문이었다.

“이전의 가요 DVD와는 차별되는 기념비적인 DVD를 남기자”는 고집은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오소링 기술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국내 제작 여건과 DVD 컨셉을 갖고, 기획 콘서트가 아닌 TV용 영상으로 고품질의 뮤직 DVD를 제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또 제작한 비디오 영상을 하이텔 AV 마니아들인 ‘아디사모’회원들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 속출했다. “콘서트 감상을 저해할 만큼 멘트가 너무 많고 음향과 영상이 너무 밋밋하다”, “데뷔 30년을 기념하는 양희은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해서는 자료적 가치가 있는 옛날 영상을 발굴해야 한다”, “라이브 콘서트 DVD에 어울리는 현장감이 감도는 입체 음향을 만들어야 한다. 이전의 가요 DVD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등등

두 사람은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재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부족한 악기연주 영상을 다시 촬영하고 양희은의 첫 발표 곡이 수록된 음반 재킷들과 30년 전의 동영상 기록을 찾아 나섰다.

5개월의 가시밭길은 만족할 만한 사운드 구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양희은의 골수 팬을 자처하는 도 부장은 “멀티 촬영이 되지 않은 방송용 화면이고 조용한 포크 공연이라 록 콘서트처럼 현란함은 없다. 하지만 클래식처럼 깊이 있고 화장하지 않은 소녀처럼 꾸밈없이 탄탄한 음악을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요즘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리어(뒤) 스피커 쪽에서도 악기 소리를 내 사운드가 뒤로 퍼지게 하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스피커 거리까지 재어가며 악기소리를 넓히는 믹싱 작업을 했고 음악이 훼손될까봐 기획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인코딩 작업을 마쳤다”고 말했다.

자신의 공연 DVD를 받아든 양희은은 “원래 내 꿈은 가수가 아니었지만 30년 넘게 꾸준히 노래를 하고 있다. 하지만 노래 근처에서 계속 서성일 뿐 노래를 하면 할수록 그 실체를 깨닫기가 점점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노래를 멈추지 못한다. 어쩌면 노래를 그만두기 위해 노래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처음 세상에 내놓는 영상 라이브 음반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참여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만족해 한다.

DVD에는 그녀가 “만 번도 넘게 불렀다”는 모든 국민의 애창곡, 김민기 작곡의 ‘아침이슬’과 소리꾼 김소연과 함께 국악과 포크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세노야’ 등 주옥과도 같은 20곡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가톨릭 폴리포니 남성합창단과 함께 장중한 분위기를 살리면서 가슴 뻐근한 감동을 안겨주는 70년대 금지곡의 대명사 ‘금관의 예수’가 최초로 공식 음반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70년대 양희은의 흑백 공개 방송 화면과 함께 지지직거리는 LP 원음을 들려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추억의 아련함과 더불어 양희은 목소리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보너스로 수록된 양희은의 프로필과 28장의 중요 음반 재킷과 수록 곡이 소개된 앨범, 그리고 그녀의 개인 사를 엿볼 수 있는 28장의 미공개 사진도 볼거리다.

오프닝은 양희은의 1971년 데뷔 앨범 ‘아침이슬’부터 현재까지 12장의 주요 앨범 재킷 퍼레이드로 시작되고 김민기와 함께 한 청개구리홀 노래 장면 등 추억의 스냅 사진들이 앨범을 넘기듯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하얀 목련’을 시작으로 그녀의 30년 농익은 음악여행에 동승하게 된다.


뛰어난 사운드 해상도 등 고품격 DVD

양희은 DVD의 특이한 점은 일상적인 5.1 채널의 분리가 아닌 힘찬 보컬의 재현을 위해 메인 스피커를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센터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아닌 통기타 소리가 흘러나오더라도 당황하지 마시길 바란다.

전체적인 사운드의 해상도와 분리도는 이제까지의 가요 DVD와는 확실히 차별성을 둘 만큼 탁월하다. 양희은의 정성스런 노래들과 김의철의 고품격 클래식기타 선율을 깨끗한 영상과 함께 감상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은 뛰어난 가요 DVD 탄생이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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