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삼류의 자존심에 갈채를…

방송일 외에 나는 요즘 모교의 대학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졸업하고 나서 십몇년만에 다시 찾게 된 모교를 드나들 때면 언제나 감회가 새롭다.

나의 예상대로 학교나 주변을 둘러싼 동네 분위기는 예전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호프집,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이던 밥집, 헌책방 등등은 이제 온전히 내 기억 속의 골목에만 남아 있었다. 마치 스무살의 신입생처럼 그런 설레임으로 골목을 훑어보던 내 눈을 단번에 잡아 끄는 가게가 있었다.

십몇년전의 그때처럼 여전히 작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가게였지만 상호가 그대로였다. 탁자가 서너개 정도만 있는 작은 술집이었던 그 가게가 여전히 그 자리에, 마치 어렸을 적 친구가 내 얼굴에 남겨놓은 조그만 상처자국처럼 그대로 있었다. “어, 어…”하는 당황과 어이없음과 그리움이 아주 짧은 순간에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시간에 쫓겨 그대로 지나쳤다가 강의가 끝난 후, 대학원생들이 한잔 하자는 제의를 옳다구나 받아들이며 나는 주저 없이 그 가게로 향했다. 약간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게문을 열었더니 세상에나 그때의 주인 아저씨가 그대로 있었다. 메뉴도 그대로였다.

아나고회와 멍게, 해삼, 소라였고 옛날에는 없던 광어회가 추가되어 있을 뿐이었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광어회가 2만원이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횟집에서도 9,9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광어회가 그 초라한 가게에 어울리지않게 2만원이라는 사실에 나는 의아했다.

“여긴 광어가 왜 이렇게 비싸?”

내 물음에 학부 출신인 조교가 소곤거렸다.

“구천 구백원짜리 광어회는 다 중국산이래요. 근데 저 주인 아저씨는 ‘중국산 광어에 내 칼을 댈수 없다’면서 2만원 받잖아요. 뭐 같잖은 자존심이라고 재수없다고 씹는 학부 애들도 있는 모양이예요.”

나는 순간 크게 소리쳤다.

“이야, 멋있다.”

그랬다. 나는 그 주인 아저씨의 고집이 너무 멋있었다. 중국산 광어에 자신의 칼을 들이댈 수 없다는 그 퉁명스러운 고집이, 타협하지않는 직업적인 자존심이 그렇게 위대해보일 수가 없었다. 거칠고 무뚝뚝한 주인에, 결코 깨끗하지도 않은 작은 술집에서 나는 오랜만에 기분좋게 취할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자신이 정한 규칙을 꼬박꼬박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게 주인도 2만원짜리 보다는 9,900원짜리 광어를 팔면 주머니가 얄팍한 손님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지도 모르고 매상이 오르는 실질적인 이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자부심과 고집이 철없는 일부 학생들의 야유를 받으면서도 결코 굽혀지 않고 있다.

성인 나이트클럽에 가면 반라로 춤을 추는 쇼걸들이 있다. 주의깊게 보면 쇼걸들은 팔동작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면 동작도 화려해보이면서 체력의 소모도 최소화할 수 있다. 기계적으로 성의없이 팔동작만 되풀이하는 쇼걸과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추는 쇼걸은 단박에 차이가 난다.

어느쪽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워보이는지는 금방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춤을 추는 쇼걸을 보면 음탕한 눈빛으로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삼류 쇼걸도, 허름한 횟집의 칼잡이도 나름대로의 속깊은 자부심이 있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이탈하지않고 당당하게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멋있고 아름다워보이는 이유다.

연예계에서는 눈앞에 훤히 드러나는 이익에 따라 소신도 버리고 인간적인 얽힘도 단번에 쳐내고서는 너도나도 새로운 쪽의 문을 두드려대는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소신이고 연기철학이라고 주장하면 딱히 할말은 없다. 그래도 내 눈에는 소위 스타라 불리는 그들보다는 삼류 횟집의 퉁명스러운 칼잡이 아저씨가 더 멋있어 보인다.

입력시간 2002/11/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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