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한국과 세계적 재즈 뮤지션들

조지 밴슨 등 세계적 재즈뮤지션 내한공연

11월의 바람에 깊어 가는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세계적 뮤지션들의 다양한 공연이 재즈의 옷을 입고 한국의 늦가을 서정에 동참한다.

8년만의 재림이다. 1994년 이래 두 번째 내한 무대를 갖는 프랑스 여가수 파트리샤 카스(36)는 한결 원숙해진 목소리로 세월의 공백을 메꾼다. 1999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마이클 잭슨과 그의 친구들’의 서울 공연 당시 함께 내한해 노래 불렀던 것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샹송의 여왕 파트리샤 카스

‘제 2의 에디트 피아프’, ‘샹송의 여왕’이라는 칭호는 과장이 아니다. 1998년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을 가리는 프랑스 여론 조사에서 그녀는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 분야에서 5위로 뽑혔다.

지금까지 발표한 10개의 앨범 중 두번째 앨범 ‘삶의 풍경들’은 재즈, 블루스, 록, 팝 등을 고루 혼합해낸 작품으로 프랑스의 각종 가요상을 석권한 출세작이었다.

절망보다 깊은 우수, 사랑보다 처절한 고독, 유혹보다 감미로운 속삭임의 가수가 바로 파트리샤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프렌치 팝이라는 깃발 아래 경박한 엔터테인먼트가 돼 가고 있던 샹송의 전통은 다시 활짝 피었다. 콧소리 섞인 매력적 보컬은 재즈 보컬을 무색케 한다.

분명, 그녀의 본류는 재즈가 아니다. 그러나 샹송과 팝을 통달한 가수가 블루스의 세계를 거친 뒤 최근 들어서는 재즈까지 선보이는 그녀는 재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파트리샤의 국내 인터넷 동호회 도메인(cafe.daum.net/patricia)에는 ‘중학교 때부터 이 공연을 기다려 왔다’는 등 그녀의 무대를 기대하는 사연들이 즐비하다. 11월 17~18일 세종문화회관대강당.


민중의 재즈 피아니스트

64세의 나이에 한국을 처음 찾는 재즈 피아니스트 칼라 블레이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뜨개실 뭉치를 뒤집어 쓴 듯한 펑크 헤어, 광기에 사로잡힌 눈매, 중성적 의상 등 외모만으로도 그녀는 우리의 일상에 충분히 충격적이다.

재즈를 살롱에서 끄집어 내, 격렬한 현대사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그녀는 외양 못지 않은 충격을 선사했다. 예술과 사회의 상투적 관계 맺기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제 3세계 민중혁명을 지지하는 ‘해방 오케스트라(Liberation Orchestra)’에서 작ㆍ편곡자로 참여한 것은 그녀가 일약 주목 받게된 계기였다.

존 매클러플린, 돈 체리, 찰리 헤이든 등 진보적ㆍ전위적 재즈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그녀는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13’ 등으로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클래식적인 선율, 서커스 음악처럼 묘하게 들뜬 분위기 등 여러 음악적 요소를 한 데 녹여 만든 음악적 조형물은 전례 없던 것이었다.

동시대를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재즈적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블레이의 음악성은 조금도 사그라 들지 않았다.

21세기 국가주의를 빗대는 ‘National Anthem’과 ‘Anthem’, 미국 국가를 재즈적으로 연주해 최근 미국의 독주를 겨냥한 ‘Whose Broad Stripes?’ 등은 재즈가 어떻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지 좋은 답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Hip Hop Les Trois Lagons’는 힙합적 요소를 적극 도입해 우리 시대의 유행 음악을 끌어 안는다. 11월 15일 오후 8시 LG 아트 센터.


매혹의 보이스 로라 피지

네덜란드에는 히딩크만 있는 게 아니다. CF, 영화, 드라마에서 나오는 매혹적 허스키의 주인공 로라 피지(47)도 온다. 1999년, 2001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이다.

신보 ‘The Very Best of Laura Fygi’ 발매 기념 무대다. 이번 무대에서 그녀의 최상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2001년 12월 발표한 앨범 ‘Change’의 홍보 무대도 겸한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우루과이에서 보낸 그녀는 언제나 라틴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재즈에 보사노바, 맘보, 차차차 등 라틴 음악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국제적 명성은 그녀가 1993년에 발표한 첫 번째 앨범 ‘Bewitched’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여 왔다. 로라 피지 하면 국내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가 수록된 앨범이기도 하다. CF 삽입곡으로 쓰이고 있는 덕택이다.

앞서의 두 내한 무대에서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던 그녀가 이번에도 그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11월 16일 울산 현대예술관측의 요청으로 울산 공연을 먼저 갖고, 19일 현대 기아자동차 아트홀에서 내한 일정을 끝낸다.


재즈 기타의 거목 조지 벤슨

여걸들의 행진에 기타의 거목 조지 벤슨(59)이 동참한다. 1960년대에 두각을 나타낸 이후, 연주와 보컬을 넘나들며 눈부시게 변신을 시도해 왔던 그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다.

찰리 크리스천과 웨스 몽고메리 등 재즈 기타 계보의 뒤를 잇는 정통파이지만, 그에게는 대중적 엔터테이너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만큼 스스로가 시대와 대중의 요구에 민감하고, 또 그에 따른 자기 변신에 게으르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동년배 뮤지션들이 하나 둘씩 현역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 지금, 그는 아직도 큰 무대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게다가 30대의 연주를 무색케 하는 빠르고 예리한 기타 솜씨를 접하게 된다면, 연륜이 쌓이면서 더욱 깊어지는 재즈 특유의 매력을 느끼기 족하다. 1999년에 치러졌던 첫 번째 내한 공연에서도 그의 기타와 보컬은 건재를 과시했다.

그가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처음으로 잡은 것은 1969년 동료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만든 ‘The Other Side Of Abbey Road.’. 같은 해 비틀스가 발표한 ‘Abbey Road’를 재즈로 패러디한 재기발랄함이 돋보였다.

이어 1976년의 ‘Breezing’이 그 해 그레미상에서 최우수 레코드상, 최우수 연주상, 최우수 기술상 등을 휩쓸더니, 1977년에는 ‘In Fight’, 1978년에는 ‘Weekend In LA’가 연속 히트했다. 대중적 인기가 새삼 확인된 것은 1982년 ‘Give Me The Night’로, 이 한 장의 앨범은 최우수 재즈 보컬, 최우수 리듬 앤 블루스상 등을 안겨주었다. 이번 공연은 11월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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