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보는 2002 대한민국 정치

검증 안된 광고 홍수에 혼란만 가중 "물건은 많지만…"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그것도 한번 들이면 무슨 대단한 이변이 있지 않는 한, 4년 간 대내외적으로 나를 대표해 온갖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하고, 나라 곳간 열쇠를 통째로 맡을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요모조모 살피며, 각종 매체(광고?)를 통해 알려진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고, 진짜 말처럼 행동하는지 확인하고, 또 지금껏 부각되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없는지, 한 나라를 대표할 인물로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부적절한 곳(하자)은 없는지 헤집어 보는 일인 선거는 쇼핑과 참 많이 닮았다.

제품이 팔리기 위해 각종 매체의 광고에 등장하는 것이나 표 하나를 얻기 위해 평소 하지 않던 일까지 하며 ‘그림 만들기’(일종의 허위 광고 아닌가?!) 작업에 열중하는 대선 후보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쇼핑을 통해 내 집과 내 경제규모에 꼭 맞는 냉장고를 얻듯이, 선거를 통해 내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통령을 얻는 것 역시 쇼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 그럼 냉장고부터 하나 사 볼까

집 안에 있는 가전 제품들이 하나, 둘 대형화하기 시작한 지 꽤 된 지금 달랑 두 식구 살림일 게 뻔한 신혼살림집에도 세탁기며 냉장고는 경제사정에 비춰 살 수 있는 최대치를 들여놓으려 한다. “이왕 살 거 처음에 좀 힘들어도 큰 걸로 사서 오래 쓰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아요?”

실제로 불과 2,3년 전 내 후배가 결혼에 앞서 냉장고를 고르며 한 말이다. 이런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으니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바꿀 의향이 아니라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한 10년은 너끈히 쓸 냉장고를 사기 위해 각종 인터넷 공동구매, 경매 사이트를 도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대리점과 전자제품 할인마트까지 두루 섭렵하며 각 제품의 사양과 모델, A/S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써 본 사람들의 사용 후기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그 다음엔 직접 매장에 나가 진열되어있는 제품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냉동실은 몇 칸이고, 외형에 비해 실제 냉장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살피는가 하면 집 안의 어느 위치에 어떻게 들여놓는 것이 주거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다각도로 제품의 효용성을 따지고 확인한다.

내 주머니에서 피 같은 ‘내 돈’이 나가기 전까지의 여정은 이렇듯 결코 짧지 않다. 물론 제품에 대한 광고를 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으나 실제로 내가 사야 하는 시점에서 광고란 새로 나온 제품의 이름을 알려주는 정도일 뿐, 광고만을 보고 내 지갑을 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번엔 본격적으로 대통령을 쇼핑해보자!

우선 그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다. 그래도 하나, 내게 꼭 맞는 ‘맞춤형 대통령’을 한번 골라보자고 독한 마음먹고 덤벼보지만 얼마 못 가 지쳐 떨어진다. 온라인에 올라있는 공식사이트들을 통해본 정책이란 것들이 국민에게 어떤 혜택을 줄 건지 알 수가 없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말은 또 왜 그리 어려운지! 오프라인 매체나 공중파 방송들은 좀 낫겠지 싶지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냉장고를 살 때, 제품 사양 중 모르는 말이 나오면 항시 대기하고 있는 판매원이 땀을 흘려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광고카피들은 한글 다 아는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의 잔치로, 국민 대다수를 ‘식맹(識盲)’(글을 읽고도 그 의미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으로 만들어 버리곤 그만이다.

어디 그뿐인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상외의 인물들이 속속 후보등록을 하고, 누구랑 누가 한 지붕 밑으로 들어간다느니 만다느니, 누구랑 놀아야 남는 게 있을지 뻔히 보이는 속계산을 하며 물을 흐려 국민들의 판단력까지 흐려놓는다.

현재까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의 숫자만도 무려 13명이나 된다는데 이 가운데 대체 누구에게 내 곳간의 열쇠를 통째로 맡길 것인가.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적어도 내 집에 들일 냉장고를 고르는 여정의 몇 곱절 더 많은 정보수집과 검증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쯤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해서 더러는 이쯤에서 그냥 포기하고 싶다.


누가 되도 다 그게 그거더라!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상의 아줌마들 놀이터인 <줌마네(www.zoomanet.co.kr)>에서 아줌마들의 깐깐한 솜씨로 대통령을 쇼핑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무엇보다 종이가 동이 날 정도로 찍어낸 다양한 정보량에 혀를 내둘렀고, 그 다음은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에 화가 났다.

“이런 정책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찍어내는 거지?” (K씨, 32세)

“정책들을 실현하겠단 자신들의 약속을 제대로 검증 받고 싶다면 적어도 선거 1년 전에는 정책 자료집이 나와야하는 거 아니야?”(L씨, 33세)

아줌마들은 혼란에 빠졌고, 결국 ‘이거 1년 동안 공부해도 다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선술집에 앉아 남들 하듯이 정치논평 한 쪼가리씩 읊어대지만 돌아서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잘 살아 남는 일이 더 급한 남편들을 둔 이 땅의 평균치 아줌마들이 해독할 수 없는 말들의 잔치판에서 아줌마들은 현란한 광고카피(매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걷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냉장고를 살 때처럼. 그리고 이 땅에서 평균치의 삶을 사는 자신들에게 가장 소용이 닿을 제품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첫 작업이 바로 자신의 소리(욕구)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올해 10월 5일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각 팀별(각 후보별로 3, 4명의 아줌마들이 팀을 이루고 있다)로 해당후보의 자료수집과 계속되는 토론과정을 거치며 자신들의 욕구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11월9일 현재 권영길, 노무현 2명의 후보를 만나는 과정에서 아줌마들은 지금껏 몇 명의 대통령을 선택했으면서도 아직 ‘제대로 된 자기기준’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아울러 1개월 넘게 구매를 위해 연락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미루고 있는 정몽준, 이회창 두 후보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물건’(후보 )은 많다. 그리고 소비자는 자신이 원할 때,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쪽에 더 강한 구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될 놈 밀어주자!’(요즘 뜨는 제품 사라고?!), 구관이 명관(역시 냉장고는 OOO가 최고다!?) 따위의 검증되지 않은 ‘찌라시’가 수도 없이 날아드는 지금, <줌마네> 아줌마들이 몸으로 부대낀 ‘대통령 쇼핑’을 통해 우리는 ‘누가 가장 나의 욕구를 잘 대변해 줄 것인가?’하는 기준을 하나씩 만들어 볼 수 있다.

그리고 ‘내 욕구’에 귀 기울이며 고민해보자. 대통령쇼핑이 냉장고 쇼핑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한다면 문제 아닌가.

양은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11/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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