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산국

가을의 길목을 잡고 있노라니 그 생각만으로도 국화꽃 향내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하늘대던 코스모스에서 이 가을이 시작되었던가! 생각이 가을의 흥취에 깊이 젖어 들기 시작하자 산길에서 주어 깨물던 밤과 그 속껍질의 떫은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생밤의 아삭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밤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면서 어디에선가 퍼져 오던 산국의 은은한 향기에 취해본다. 지금쯤 마을마다 집집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어 달고 있던 감나무는 서리를 맞으며 껍질을 말간 빨간 빛으로 만들며 떫은 맛을 단맛으로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풍광을 아우른 그 푸른 하늘은 또 어떤지.

산국은 말 그대로 산에 피는 국화이다. 전국 어디서나, 높은 산언덕이든, 산자락이든 어느 곳엘 가도 볼 수 있는 우리와 친근한 꽃이다. 산길에서 만난 산국 한 송이를 꺾어 코끝으로 가져가면 이 가을의 청량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 싶다. 멀리는 일본과 만주에까지 있다.

여러해살이 풀인 산국은 보통 키가 무릎높이까지 커서 꽃을 피우지만 다 자라면 어린아이 키만큼 크기도 한다. 잎은 국화 잎과 비슷하지만 좀 더 많이 갈라져 있다. 꽃은 좁은 우산모양의 꽃차례에 여러 송이의 꽃들이 모여 피는데 노란색 꽃잎이 진하고 선명하여 더욱 보기 좋다.

산국과 아주 비슷하지만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는 식물이 있는데 바로 감국이다. 모든 특징이 산국과 거의 같지만 꽃의 지름이 20cm 정도 되어 더 크다. 그래서 흔히 감국을 국화, 이에 비해 꽃이 작은 산국을 개국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남쪽에서는 감국을 보기가 쉽고 중부지방에서는 산국을 만나기가 더 쉽다.

국화속은 학명으로 크리산티멈인데 라틴어로 황금색 꽃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도 산국의 이 아름다운 노란색은 국화를 대표하는 색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하다. 재미있는 일은 북한에서는 우리가 산국이라 부르는 식물에 산국과 감국이라는 이름을 함께 적용하여 쓰고 있고 우리들이 감국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국화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식물은 똑같은 계절에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거의 같은 특성을 가지고 피어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분하지 않고 야국, 황국, 야산국, 야국화 등으로 부른다. 한방에서도 그 약효나 용도를 동일하게 쓰고 있다.

약으로 이용하려면 가을철 꽃이 필 무렵 꽃차례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쓰는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울 때, 열을 내리거나 독을 제거할 때 사용한다. 눈물이 나는 병에도 쓴다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이 가벼워지며 쉬 늙지 않고 위장이 편안하며 오장을 도와 사지를 고르게 한다고 적혀 있다.

민간에서는 기침에 효과가 있어 가을에 꽃을 따서 말려 두었다가 한 숟갈씩 끊는 물에 넣어 달여 먹기도 한다. 술독을 없애는 데도 좋아 꽃 몇 송이를 달여 마시면 술이 깨고 머리가 맑아 진다니 한번쯤 시도해 볼 만 하다.

산국은 식용으로도 이용이 가능한데 어린 순을 삶아 물에 우려서 나물로 쓰기도 하고 좋은 꽃을 시월쯤 채취하여 술을 담가 그 향기를 즐기기도 하였다. 어디 향기와 풍취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이뿐이랴. 국화차, 국화전도 좋고 꽃을 말려 베개 속에 넣고 자면 머리가 맑아 져 단잠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혹 가을을 보내지 못하고 가을 병을 않고 있는 이가 있다면 산국의 노란 꽃 빛과 서늘한 향기를 친구로 권하고 싶다.

입력시간 2002/11/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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