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레이어로 사는 욕심쟁이 의사

정혜신 이지함 피부과 원장 “피부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꿈꾼다”

청담 이지함 피부과 정혜신(35) 원장은 삶의 긴장을 즐기는 사람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광고모델로, 방송MC로, 또 때로는 신문 칼럼니스트로 종횡무진 활동하는 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뭔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긴장이,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걸 방지해 준다는 정혜신 원장은 일에 대한 욕심과 애착이 무척이나 많다.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에 피부과 전문의로,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은 것이 그렇고, 전공 외의 분야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게다가 최근에는 <피부에 말을 거는 여자>(소담출판 펴냄)라는 책을 내고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체계적인 피부정보 책으로 펴내

“대분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대부분 불확실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정보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박피가 좋다라고 한마디 하면, 정확한 사전지식이나 자신의 피부상태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시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나 막상 진료를 해보면 굳이 박피까지 필요 없는 환자도 많습니다. 그럴 경우, 환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가장 알맞은 치료방법을 찾아가는 게 우리 같은 전문의들이 할 일이죠.”

정혜신 원장이 책을 쓰게 된 이유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에 대한 동경은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단순히 미적 기준에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건강을 전제로 한 아름다움은 피부관리사나 미용전문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피부과전문의인 정혜신 원장의 책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피부과는 엄연히 의료영역지만 최근 5년경부터 ‘뷰티산업’과 맞물리면서 그 영역이 모호해지고 있다. 피부관리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고, 전문의가 살펴야 할 영역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의의 시각에서 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주고 싶어 책을 내게 됐다고 정혜신 원장은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개의 전문서적들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똑 떨어지고 깍쟁이 같은 예쁜 이미지와 달리, 그냥 평범한 ‘동네 아줌마’임을 자처하는 정혜신 원장은 책을 통해 특유의 입담으로 피부 트러블에 관한 이야기를 수다 떨 듯 늘어놓는다.


환자들 체험과 사례로 쉽게 설명

이 책에서는 기미나 주근깨 심각한 여드름성 피부, 처진 피부 또는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각종 피부과적인 문제들에서부터 여성지를 들추면 한 장 건너마다 도배하고 있는 보톡스나 콜라겐, 레이저치료, 박피술 등 전문적인 피부 트러블의 치료법까지 환자들의 체험과 사례를 들어가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단지 일반 미용이나 피부관리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조건 좋아진다는 식의 선동이나 주입이 아니라 피부과적이건, 심리적이건 치료를 전제로 한 질환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심각한 질병 수준의 피부병이나 심한 흉터, 보기 흉한 여드름 자국, 만성이 된 안면홍조 등을 제외하고는 굳이 피부과를 찾을 이유가 없다”고 정혜신 원장은 전한다. 자신의 피부타입을 파악하고 있으면 가볍고 손쉽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곧 정혜신 원장이 주장하는 ‘피부독립’이다. 피부질환은 단순히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내용들이 담겨있다.

특히 책 중간중간에 녹아있는 정혜신 원장의 일과 삶에 대한 태도는 삶을 소비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병원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환자들을 돌보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때론 얼굴에 난 뾰루지 치료보다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고 격려해 주는 게 더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문제는 자연스럽게 치유되기도 하니까요.”

정혜신 원장의 이런 생각은 이지함 피부과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40대 남성들을 위한 피부관리 제안에서도 드러난다. 자신감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 자신을 가꾸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는 생활수칙이 관건이라고. 건전하고 건강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결국 피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달리듯 살아온 삶, 부지런함이 경제적

“기회가 닿으면 뭐든지 하고 싶어요. 매일 반복되는 환자진료만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거든요, 진료 외의 다양한 경험은 긴장을 주죠. 재미있기도 하고… 기회가 있다면 요리도 좀 배우고 싶고, 미술사도 공부해 보고 싶어요.”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이후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다는 정 원장의 하루하루는 남들이 평균보폭으로 걷고 있을 때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력질주 해 온 시간의 연속이다. 전문의로 환자들을 돌보는 일 이외에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역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물론 일 욕심 많고,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 정 원장은 시간을 쪼개어 자신을 연마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정혜신 원장은 본인의 경쟁력은 ‘부지런함’과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거기에 한가지를 더 꼽자면 끊임없이 ‘단점을 보완하려고 애쓰며 살아온 과정’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보완하는 삶.

이는 정혜신 원장이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변화를 추구하는 삶의 뒷심이 되어주었다. 지난 여름 모교인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전공과는 거리가 한참 먼 언론학 석사과정을 마친 것도 그런 생각의 발로였다. 시간을 쪼개 전공공부를 하는 일이야 그렇게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테지만 광고나 의대에서 이과공부만 하며 치우진 균형감을 찾고 싶어 홍보와 광고를 공부했다는 것.

그런 욕심이 밉지 않아 보이는 걸 왜일까. ‘과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정혜신 원장에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한 말이 될 것 같다. 정혜신 원장이야말로 스포츠에서나 혹은 시대가 요구하는 성실한 ‘멀티플레이어’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명희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11/15 15:19


주간한국